멜란히톤 선생님께_장수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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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5. 01. 21. 
멜란히톤 선생님께

| 번역 장수민 목사, 칼빈 아카데미 원장 |

 

“주님께서 그어 놓으신 선, 느슨하게 여길 수 없어”

 

내용: 루터에게 보내는 자신의 편지와 논문을 멜란히톤이 먼저 읽어 본 후 그 자신의 의견을 보내줄 뿐만 아니라, 기회를 보아 루터 박사에게도 의견을 물어봐달라는 부탁.

 

 

먼저 이 경건하고 고귀한 젊은이가 왜 저의 부탁에 따라 선생님을 찾아뵙게 되었는지부터 간략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복음을 접할 수 있는 특권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신성모독으로 가득한 가톨릭의 의식 절차를 아직도 행하고 있는 사람들이, 여전히 자신의 잘못을 모르는 척 시치미를 떼고 있는 행동을 비판하는 프랑스어 논문을 발표하였습니다([복음의 진리를 아는 신실한 사람이 교황주의자들 틈에 있을 때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다루는 소논문]). 

 

선생님께서는 분명 제가 그 문제에 대해 너무 엄격하게 접근하고 있다고 하실 테지요. (중략) 그러나 문제 자체가 저들에게는 혼란스럽기 때문에 선생님과 루터 박사님의 확신을 얻을 때까지는 그 점에 있어서 아직 의구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그들은 선생님께서 저보다 관대하실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기 때문에 일부러 선생님께 조언을 구하고 있지는 않은지 걱정이 됩니다. 그 동기가 무엇이든 간에 선생님께서 진정으로 옳다고 생각하시는 방향으로 신실하고 온전한 조언을 주실 것이라고 저는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들이 요청하는 바에 따라 적절한 사람을 선생님께 보내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제가 결론 내리기로는 선생님께서 직접 저의 견해가 어떠한지 정확하게 아시고, 그렇게 생각하게 된 근거들에 대하여 모르시면 안 되기 때문에 특별히 라틴어로 번역한 저의 소고를 보내드립니다([니고데모파 제군들이 본인이 너무 심하게 엄격하다는 하소연에 대한 존 칼빈의 유감]). 

 

이러한 일을 자처하는 것이 어떻게 보면 주제 넘은 것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수고스럽겠지만 선생님께서 저의 동료의 입장에서 그 논문들을 검토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선생님의 고견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있고, 또 그렇게 하는 것이 마땅하며, 따라서 선생님께서 허용하시지 않는 어떤 일에 착수한다는 것 자체가 꺼려집니다. 

 

물론, 선생님께서는 매우 관대하시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여러 가지 행동에 대해 가급적 용인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주님께서 그어 놓으신 선에 있어서는 절대로 느슨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선생님께서 모든 사안에 있어서 저와 동조해 주시기만을 바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매우 주제넘은 일이겠지요. 

 

혹은 저를 위해서 선생님 자신의 자유로운 판단을 유보하시는 것을 바라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수고스러우시더라도 저의 견해를 한 번 꼼꼼히 읽어봐 주시기를 부탁드리는 것입니다. 
만일 선생님과 저의 견해가 완전히 일치하여 자그마한 토씨 하나라도 다른 부분이 없다면 그것이야말로 더 이상 바랄 여지가 없겠지요. 하지만 선생님께서는 저를 기쁘게 하는 것보다는 선생님의 올바른 판단을 계속 이끌어 나가는 것이 더 좋을 것입니다. 

 

제가 선생님을 대할 때 얼마나 마음을 터놓는지는 선생님께서도 잘 아실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마땅히 유지해야 할 존경의 선을 넘어서려는 뜻도 진정 없습니다. 저에 대한 선생님의 친절과 선의 안에서 제가 무엇을 할 수 있고 없는지는 선생님과 함께 지내면서 겪었던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존 칼빈 드림.

 

 

해설: 칼빈은 1543년에 [복음의 진리를 아는 신실한 사람이 교황주의자들 틈에 있을 때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다루는 소논문]을 써서 프랑스에서 교회 개혁 신앙에 접한 사람들이 겪고 있는 양심의 위기를 다루었다. 
그러자 파리에서 앙뚜안 퓌메(Antoine Fum e)가 칼빈의 논문이 자신을 비롯하여 프랑스의 많은 니고데모파 사람들을 근심시켰던 기본적인 입장들이 얼마나 많은가를 지적하는 편지들을 보내왔다. 이들은 자신들이 경비를 부담할 터이니 과연 루터와 멜란히톤도 같은 생각인지 물어보자면서 칼빈에게 두 사람을 만나러 갔다 오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칼빈은 당시로서는 왕복 40일이나 걸리는 여행에 시간을 낼 여유가 없었다. 따라서 1545년 1월에 그는 대신 편지를 써 인편으로 보내면서 방금 저술한 [니고데모파 제군들이 본인이 너무 심하게 엄격하다는 하소연에 대한 존 칼빈의 유감]을 동봉하여 검토해 줄 것을 부탁했다. 
여기에서 칼빈의 입장은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 더욱이 칼빈이 니고데모파를 비판하면서 날린 결정타는 그들이 자신들을 ‘니고데모파’라고 주장하는 명칭 자체를 아예 인정하지 않겠다고 한 점이다. 칼빈은 니고데모의 옷자락 아래 숨을 권리가 그들에게는 없다고 단언한다. 그들은 어느 모로 보아도 니고데모에 비할 바가 못된다. 
칼빈에 따르면 니고데모는 처음에 무지한 상태에서는 예수님을 밤에 찾아 갔으나 후에는 사도로서 예수님의 장례식장에서 자신의 믿음을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즉 니고데모는 박해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프랑스의 니고데모파들은 니고데모의 진정한 추종자들이 아니었다. 
칼빈은 이들을 비판하기를, “니고데모에게 호소하는 사람들은 한 가지 점에서는 그와 닮았는데, 그것은 그들이 그리스도를 장사 지내기 위해 애쓴다는 점이다”라고 했다. 
칼빈은 1549년에 본서의 두 번째 판을 라틴어로 내면서 제목을 [거짓 니고데모파에게 주는 변호](Excusatio ad Pseudo-nicodemos)로 바꾸었는데 멜란히톤, 부써, 그리고 피터 마터의 승인을 받아 출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