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思想)과 양심(良心)의 자유_조석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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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思想)과 양심(良心)의 자유 

| 조석민 목사, 에스라성경대학원대학교 신약학 교수 |

 

 

“개인의 자유는 완벽한 주권을 행사하는 것이어야”

 

사상과 양심의 자유란 각 개인의 판단이나 가치관으로서의 확신을 외부에 표명하도록 강요당하지 않을 자유와 양심에 반하는 행위를 강요당하지 않을 자유를 의미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19조는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갖는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 헌법은 1948년 7월 17일에 제정되어서 금년이 제헌절(制憲節) 62주년 되는 해이다. 우리 헌법에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는 규정이 별도로 명문화 되어있지 않지만 양심의 자유 속에 암시되어 있다는 폭넓은 해석을 수용하고 있다. 

 

양심의 자유는 첫째, 양심상 결정의 자유, 즉 자신의 도덕적, 논리적 판단에 따라 무엇이 옳고 그르다고 확신할 수 있는 자유이다. 이것은 한 개인의 내적 작용이기 때문에 어떠한 경우에도 제한될 수 없는 절대적 자유이다. 따라서 양심상의 결정과정에 국가권력이나 타인이 관여하여 그 결정을 방해하거나 일정한 양심상의 결정을 하도록 강요할 수 없다. 
둘째는 침묵의 자유, 즉 양심상의 결정을 외부에 표명하도록 강요받지 않는 자유이다. 침묵의 자유는 개인의 기본 권리로 어느 누구도 강제할 수 없다. 침묵의 권리를 물리적인 억압으로 강제하는 것이 일상화되면 가장 비인간적이고 잔인한 폭력인 고문(拷問)도 대의명분(大義名分)이란 옷으로 치장하고 교묘하게 등장한다. 

 

오랫동안 단어조차 잊어버렸던 ‘고문’이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수도인 서울에서, 그것도 양천경찰서 경찰관 다섯 명에 의해서 실제로 발생했다는 소식이 얼마 전 보도되었다. 현 정권의 인권의식 수준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참혹한 인권침해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고문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합법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피의자나 피고인을 굴복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모든 것이 고문일 수 있다. 

 

사상과 양심의 자유는 천안함 사건과 관련된 민군합동조사단(이하 합조단)의 발표와 관련해서도 보장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천안함 침몰의 원인을 북한 어뢰로 지목한 합조단의 발표를 믿거나 믿지 않는 것은 한 개인의 양심과 사상의 자유에 해당한다. 천안함 사건은 종교가 아니다. 국가는 천안함 사건과 관련된 내용의 발표를 국민에게 믿도록 강요할 수 없다. 

 

합조단 발표 당시에 의심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의심하다 보면 끝이 없다, 믿을 수 없는 게 아니라 믿고 싶지 않은 게 더 큰 문제”라고 말했다. 하지만 합조단의 발표 이후에 천안함 사건의 ‘결정적 증거’에 대한 문제 제기는 이제 ‘의혹’ 수준을 넘어선 것 같다. 왜냐하면 발표의 내용이 과학과 상식에 의해 부정당하고 있고, 합조단의 발표 내용도 이미 여러 차례 번복되었기 때문이다. 

 

사건 발생 초기 이명박 대통령도 “부인할 수 없을 정도의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증거” 제시의 필요성을 언급했듯이, 천안함 사건은 과학이어야 복잡하게 꼬인 문제를 풀 수 있다. 더욱이 천안함 사건과 관련하여 합조단의 발표를 믿지 않고 의심하면서 다른 가설과 이론을 제기하는 사람들을 법으로 다스리려는 것은 국민의 기본권인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억압하는 일이다. 

 

천안함 사건이 이제 국내의 발표를 거쳐서 카나다에서 개최된 G8 정상회담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논의를 끝으로 출구를 찾아 빠져나오려는 듯하다. 한반도의 평화를 유지하려는 노력이 천안함 사건의 조속한 해결로 이어져서 이 땅에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 다시없기를 기대하며, 이 사건의 발표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불법적으로 억압하는 일 또한 없기를 소망한다. 

 

예수께서 자기를 믿는 유대인들에게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2)고 말씀하셨다. 인간에게 주어진 자유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참된 빛을 나타낸다.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말씀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자신을 가리켜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고 하셨고,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요 8:36)고 말씀하셨다. 

 

사람들이 자유의 가치를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고 있느냐가 그 사람의 삶의 질을 결정한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의 종 된 상태에서 해방되어 자유로운 삶을 얻었기에 우리는 감사하며 다른 이들의 자유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인간의 자유는 종교라는 이름으로 속박되어서도 안 된다. 이런 현상을 우리는 이단 종교의 모습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 한 개인의 자유는 타인과 관련되지 않으며 해를 끼치지 않는 일, 온전히 자기에게만 책임이 돌아오는 것에 대하여 완벽한 주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사상과 양심의 자유가 오늘날처럼 신장되지 못했던 중세시대와 종교개혁 시대에 개인의 자유는 종교라는 이름으로 억압되었다. 이것을 잘 보여주는 한 사례가 슈테판 츠바이크(Stefan Zweig)의 책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에 잘 나타나있다. 이 책의 부제(副題)에서 보여주듯이 그 내용은 종교개혁 당시 카스텔리옹(Sebastian Castellion)이 세르베투스가 산채로 화형당한 일에 대하여 칼빈의 독재와 폭력을 고발한 것이다.

 

제네바에서 신정국가(神政國家)를 건설한 칼빈의 종교적 권력에 맞서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옹호하며 관용을 부르짖은 인문주의자 카스텔리옹의 역사적 사건은 독재를 되돌아보는 거울로 삼을만하다. 오늘날 교회 안에 종교라는 이름으로 폭력과 독재를 사용하여 개인의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구속하는 일은 없는지 심각하게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이다.

 

“진리를 구하고 자기가 생각하는 대로 그것을 말하는 것은 절대로 범죄가 아니다. 아무도 어떤 신념을 갖도록 강요당해서는 안 된다. 신념은 자유다”라고 외친 카스텔리옹의 말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관용하지 못하고 잘못된 사람으로 몰아세우는 오늘의 현실에서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