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평(公平)과 정의(正義)_조석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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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평(公平)과 정의(正義) 

< 조석민 목사 (에스라성경대학원대학교, 신약학교수) >

“손해 보더라도 정직해야 한다는 신념 잃지 않아야”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면서 한 가지 소망한 것은 공평과 정의가 물같이 흐르
는 세상을 조금이라도 맛보는 것이었다. 

무한 경쟁 부추기는 사회

공평(impartiality)이란 어느 한 쪽에 기울지 않고 공정한 것을 뜻하며, 정
의(justice)란 진리에 맞는 올바른 도리를 의미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
간들에게 보여주신 성품의 한 부분이며, 동시에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나타나
야 할 덕목 가운데 하나이다. 
아직도 공평과 정의에 대한 소망의 불씨는 희미하지만 여전히 꺼지지 않았
다. 이런 소망의 불씨를 우리 그리스도인들 모두가 함께 보여줄 수 있기를 
기대하는 마음이 간절하기 때문이다. 물론 세상 속에서 공평을 찾는 일은 쉽
지 않다. 세상이 공평하지 않기 때문이며, 많은 사람들이 입으로는 공평을 
말하지만 가진 자들과 
기득권자(旣得權者)들 대부분이 공평한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공평과 정의가 물같이 흐르는 세상을 소망하는 
것이다. 
새로운 정부가 시작되면서 사회의 거의 모든 분야에 약육강식(弱肉强食)의 
동물적 무한 경쟁 사상이 도입되었다. 무한 경쟁 시대가 되면서 공평은 한 
낱 무릉도원을 꿈꾸는 자의 액세서리가 되고 말았다. 모든 것을 경쟁이라는 
렌즈로 들여다보는 세상에서 공평은 더 이상 현대 사회에 어울리지 않는 단
어처럼 보인다. 실력과 능력 있는 사람들이 대우를 받아야 하고, 그런 차등
(差等) 대접을 정의로운 것으로 이해하는 세상이 되었다. 
이와 함께 정의는 이 세상에서 더 이상 환영받는 단어가 아닌 것처럼 보인
다. 왜냐하면 정직하면 항상 손해 보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 세상은 정의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이기는 것이 정의라고 이해한다. 분명히 세상에 존재하
는 것은 눈에 보이는 힘과 여러 종류의 권력이며, 그런 힘과 권력은 공평과 
정의를 위하여 사용되기 보다는 불의를 정의로 착각하는데 오용되고 있다. 
이런 모습을 구체적으로 보여준 한 가지 실례가 삼성 그룹 사건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고백으로 촉발된 삼성 그룹의 수사는 이건희 전 회장
을 경영권 불법승계 혐의로 기소하고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 벌금 1천 100
억 원을 선고하였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기소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그
를 사면하였다. 그를 사면한 이유에 대하여 정부는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와 대한민국 경제 회복이라는 국익 차원의 관점에서 결정한 것이라고 밝
혔다. 
하지만 2010년 2월 7일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윤리위원회는 이건희 IOC 
위원에 대하여 앞으로 5년 동안 IOC내 어떤 위원회에도 참여하는 권리를 중
지시키는 징계를 결정하였다. IOC에서 할 수 있는 최고의 징계인 제명을 제
외한 가장 강력한 징계이다. 
대한민국의 경제 회복이 죄인 한 사람의 특별사면으로 가능할지에 대한 문제
는 예외라고 할지라도, IOC로부터 징계를 받은 그가 2018년 평창 동계 올림
픽 유치에 성공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우리는 공정하고 정직하며 반칙과 
특권이 있을 수 없는 것이 올림픽 정신임을 다시 되새겨야 할 것이다.
결국 삼성 재벌의 비리를 공개한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고백은 이제 역사 속
에서 사라
지게 될 운명이 되었다. 삼성 비리와 관련된 결과는 결국 “혹시
나”에서 “역시나”로 끝나게 된 것이다. 자신의 양심고백으로 1년여 동안 
나라를 소란스럽게 한 김용철 변호사가 최근에 <삼성을 생각한다>라는 책을 
출판하여 그 동안의 일을 정리했다. 
그는 이 책에서 “아이들에게 ‘정직하게 살라’고 권해도 불안하지 않은 사
회가 되면 좋겠다고 피력했다. ‘정직하게 살면 손해 본다’는 생각이 현명
한 것으로 통하고 ‘손해 보더라도 정직해야 한다’는 생각은 순진한 어리석
음으로 여겨지는 사회에서,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고 배운 아이들이 커가
는 일을 차마 지켜볼 자신이 없다”(p. 447)고 한다. 그는 이 책을 쓴 이유
를 “삼성 재판을 본 아이들이 ‘정의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이기는 게 정
의’라는 생각을 할까봐 두려워서”(p. 448)라고 밝힌다.
구약 성경은 “공평과 정의를 행하는 것은 제사를 드리는 것보다 여호와께
서 기쁘게 여기신다”(잠언 21:3)라고 말한다. 공평하게 행하는 것은 세상 
속에서도, 교회 안에서도 드러나야 할 윤리 덕목 가운데 하나이며 정의를 행
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의 일상적인 삶 속에서 나
타나야 한다. 하나님께 예배
(제사)를 드리지만 공평과 정의를 일상의 삶에서 실천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가증한 종교 의식일 뿐이요, 심판을 자초하는 일이 될 것이다. 
공평과 정의를 행하기에도 부족한 우리의 물질과 시간인데, 강남의 도시 한 
복판에 거대한 예배당 건축 계획을 발표하고 모든 성도들을 ‘거룩한 땅 밟
기’와 ‘성전 건축’으로 몰아가는 S 교회 모습을 보면 씁쓸하기만 하다. 
과연 그렇게 거대한 예배당 건축이 공평과 정의를 행하는 것보다 하나님께
서 기뻐하실 일일지 의심스럽다. 예배당 건축에 앞서 ‘거룩한 땅 밟기’와 
‘성전 건축’ 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마치 세계 선교와 한국 교회를 위
하여 거룩한 일을 시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려는 모습을 보면 할 말을 잊
게 한다. 
‘거룩한 땅’은 이 세상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S 교회는 예배당 건축 부지
가 마치 거룩한 땅인 것처럼 성도들을 호도하며, 오늘날의 예배당이 구약 성
경의 ‘성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부르고 있다. 
S 교회 예배당 건축에 대하여 지역 내의 여러 크고 작은 교회들과 적지 않
은 사람들이 걱정과 우려 속에서 건축에 대한 부
정적 의견을 표출하고 있
다. 공평과 정의는 힘의 균형이 깨질 때 이루어 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힘의 균형 깨질까 염려돼

세상의 소금과 빛인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영역에서 공평과 
정의를 실천하는 한 해가 되기를 다시 한번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