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疏通)의 부재(不在)_조석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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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疏通)의 부재(不在)

“정책을 반대하는 목소리에도 관용할 수 있어야”

조석민 목사_에스라성경대학원대학교 신약학교수

소통(mutual understanding)이란 “막히지 아니하고 잘 통하는 것” 또는 
“뜻이 서로 통하여 오해가 없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소
통이 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막힌 것이 있거나, 뜻이 서로 통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결국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단절, 즉 영적 죽음
을 의미한다. 

소통 부재는 영적 죽음 유발해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단절은 인간의 일방적인 행동이나 태도 때문인 경우
가 대부분이다. 인간의 일방적인 행동이나 태도는 하나님 앞에서 죄지은 인
간의 단적인 모습일 뿐이다. 하나님은 항상 인간을 향하여 소통의 문을 열어
놓고 있지만 사람들은 열려진 그 문을 보지 못하고 자신의 일방적인 방법으
로 하나님과 소통하기를 원한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소통의 
부재는 전적으로 인간의 책임
이다. 
인간이 하나님께 귀 기울여 듣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하나님을 인정하
지 않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인간의 몸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의 관계에 대하여 “나와 아버지는 하나”(요 10:30)라고 말씀하시며 진정
한 소통이 무엇인지 보여 준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소통을 위하여 사람들
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며 그 뜻에 귀 기울일 때 소통은 이루어질 
수 있다.
소통의 문제는 종교적 상황뿐 아니라 이 사회의 중요한 화두(話頭)가 되었
다. 물론 종교적 소통의 문제와 사회적 소통의 문제는 차이가 있는 것이 분
명하다. 하지만 소통이란 본래 의미 자체는 크게 다르지 않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 소통의 문제가 자주 입에 오르내리며 특히 ‘소
통의 부재’를 안타까워하는 목소리가 크다. 하지만 소통의 부재를 해결하
기 위한 정부의 진정한 노력은 보이지 않고 일방통행식의 태도만 보여주기
에 실망스럽기만 하다. 
왜 이 정부는 국민들과 원활한 소통을 하지 못하는 것일까? 경향신문의 최
근 설문 조사에 의하면 “우리 사회의 소통을 가로막는 가장 큰 원인”으로 
“반대 의견에 대한 관용 부족
”을 가장 많이 지적했고, 진보와 보수 세력 
사이의 이념 문제도 소통을 가로막는 원인 중 하나로 대답했다. 결국 진보
와 보수 세력들의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는 일방주의”가 소통의 부재를 가
져오는 주요 원인이란 분석이다.
우리 사회의 소통을 가로막는 중요한 장애물 중 하나는 반대 의견에 대한 관
용 부족과 이념 문제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 깊숙이 배어 있는 “승자 독식주
의” 사상이다. 우리 사회는 승자가 독식(獨食)하는 정치체제가 받아들여지
고 있고, 이런 정치체제 아래에서 소통은 미덕이 아닌 불필요하고 거추장스
러운 것이 되고 만다. 
누구든지 정권을 획득하는 세력이 상대방 진영을 철저히 배제하며 편 가르기
에만 몰두할 때 소통은 이루어질 수 없다. 이런 정치 현실속에서는 승리를 
위한 일사불란(一絲不亂)한 소통, 즉 일방통행만이 있을 뿐이며 소통을 목메
어 부르짖는 목소리는 일방통행식 소통속에 묻혀버린다. 
이와 같은 일방 통행식 소통 현상은 권위주의와 맞물려 힘을 얻으며, 소통
의 부재를 키우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이것을 의식하지 못한다. 이런 현상이 
현재 우리 정치 사회 현실에 나타나고 있어서 
답답하기만 하다. 소통의 부재
를 체감(體感)하며 진정한 소통을 원하는 국민들과 권위주의에 뿌리내린 일
방 통행식 소통에 익숙한 정부가 평행선을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소통의 부재는 이 나라의 정치 사회 현실 속에서 뿐 아니라 이제는 교회 안
에서도 예전보다 드물지만 쉽게 볼 수 있어서 안타깝다. 목회자가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의 귄위를 입으로 말하지만 자신의 권위를 더욱 드러내며 일방
적인 태도로 성도들을 대할 때 이미 그 교회에서 목회자와 성도들의 소통은 
단절되고 일방통행만 있을 뿐이다. 
소통의 부재를 해결하지 못할 때 소통을 위한 두 당사자의 갈등은 깊어지고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소통의 부재를 해결하기 위하여 가장 필요한 것은 
반대 의견에 귀 기울이는 관용이다. 어떤 문제에 대하여 자신의 입장만이 정
답이라고 주장하고 상대방의 의견을 듣지 않고 배척할 때 소통은 단절되기 
때문이다. 
목회자는 교회 안의 다양한 목소리를 진심으로 들어야 하고, 더욱이 그 모
든 다양한 목소리가 하나님의 음성일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을 때 소통
은 시작될 수 있다. 정치 사회적인 문제에 있어서도 정답이 
없는 것이 어쩌
면 정상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서로 자신의 주장만이 옳다고 고집하며 반대
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을 때 소통은 이루어질 수 없다. 
소통의 부재를 해결하기 위하여 정부는 국민들의 다양한 목소리에 귀 기울어
야 하며 현 정부의 정책을 반대하는 목소리에도 관용할 수 있어야 할 것이
다. 반대 의견에 대한 관용 부족의 원인은 자신이 없고 자존감이 약할 때 자
주 나타나는 현상이다. 
소통의 부재를 가져오는 권위주의적 태도는 자신의 약점과 단점에 대한 비판
을 수용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것을 감추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기 때문이
다. 권위주의적 태도는 소통을 위한 독약이다. 승자독식주의 태도 역시 진정
한 소통을 위하여 청산해야 할 우리 정치의 과제 가운데 하나이다. 
소통의 부재를 해소하기 위하여 상대방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귀 기
울일 필요가 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듯 일방통행식 소통과 권위
주의적 태도는 사람들이 원하는 원활한 소통을 가로막을 뿐이다. 더 이상 
이 땅에서 편 가르기로 소통을 막는 일이 없기를 소망한다. 

권위주의적 태도가 소통 방해해

이 나라
의 정치 사회속에서 또한 교회에서 원활한 소통으로 막힌 담이 허물
어지고 숨통이 트여서 두 팔을 하늘 높이 뻗어 올리는 계절이 속히 오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