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철거민 참사와 그리스도인의 시각(視覺)_조석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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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단상<21>

용산 철거민 참사와 그리스도인의 시각(視覺) 

조석민 목사_에스라성경대학원대학교 신약학교수

“종교의 사사화(私事化)가 바로 타락의 지름길”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에 살아있는 인간의 생명보다 귀한 가치는 없다. 
천하보다 귀한 생명이기에 예수 그리스도는 그 귀한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하
늘로부터 이 땅에 오신 것이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이 사실을 믿고 있으
며 오늘도 한 생명을 귀하게 여기며 살아간다. 

사람의 생명은 천하보다 귀해

그런 귀한 생명이 이번 용산 철거민 농성 현장에서 경찰의 무리한 강제 진
압 결과, 원인이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은 화재로 경찰관 한 명을 포함하여 
모두 여섯이나 처참하게 사라졌다. 경찰은 화재로 죽은 농성자들의 신원을 
확인한다는 이유로 가족의 동의도 없이 부검을 했는데, 죽은 사람의 몸에서 
나왔다는 한 장의 서류는 불에 그슬리지도 않았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한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그리스도인
으로서 농성자들의 
죽음은 단순히 사회를 향하여 불법을 행사한 대가로 이해하면 되는 것인가? 
교회 밖에서 일어난 일에 대하여 너무 깊이 개입하지 않아야 하기에 정부의 
공권력이 다스리도록 놔두면 되는 것인가?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일이 남의 일이고 사회의 한 구석에서 일어난 일이기
에 더 이상 상관하지 말고,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믿고 섬기면 되는 것인
가? 이 세상에서 교회와 목회자의 역할은 이런 일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
는 것이기에 이런 일들에 대하여 침묵하며 지나가면 되는 것인가? 
용산 철거민 참사를 바라보며 교회와 신학이 현실을 외면할 수 있는지 자문
하게 된다. 동시대를 살아가면서 교회와 세상의 역사는 서로 다른 궤도를 달
리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은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며 소망하고 부
단히 노력한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는 것은 교회 안에서 뿐
만 아니라 우리의 현실 사회 속에서도 동일하게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풀어 해설하며 삶에 적용하는 설교 속에서 현
실을 외면하는 것은 위선이다. 
용산 철거
민 참사와 관련하여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은 2월 2일 저녁 7
시 서울 광화문 청계광장에서 시국미사를 열고 ‘용산 참사’의 진상 규명
과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의 처벌을 요구했다. 불교계는 2월 5일 ‘용산 참
사 희생자를 위한 시국법회’를 조계사에서 진행하였다. 시국법회의 위원장
은 ‘사람이 죽었다. 무력도 불사하는 정부의 개발 정책이 부른 예고된 죽음
이었다. 생존권을 외치는 힘없는 국민을 마치 전쟁터의 적군 대하듯 공권력
을 남용한 결과다’라고 경찰의 과잉진압을 비판했다. 
용산 철거민 참사를 바라보는 우리 개신교 그리스도인의 시각은 무엇인가? 
그리스도인이 같은 궤도를 달리는 역사의 현실 속에서 자신만의 안전과 평안
을 지키기 위하여 역사를 외면한다면 훗날 그 책임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교회의 공적 책임은 역사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
가 이 땅에 드러나도록 힘쓰는 것이다. 용산 참사의 본질은 국민의 기본권
을 가볍게 여긴 정부의 천박한 인권의식에 뿌리를 두고 있기에 통치자와 권
력자들이 철저히 책임지도록 예언자적 정의의 목소리를 발해야 한다. 목회자
가 예언자적 
양심의 소리를 발하지 않으면 돌들이 소리 지를 것이다. 
하나님이 햇빛과 비를 만인에게 골고루 내려 주시듯이 하나님 안에서 교회
와 세상은 결코 분리될 수 없다. 다만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기독교를 사적 
영역으로 만들어 자기 종교화한 사람들에게만 교회와 세상은 분리되어 있
다. 
그리스도인이 사회에 대한 공적 책임이 있고, 기독교가 현실 문제에 대하여 
역사적 책임 의식을 갖고 있다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외면할 수 없을 것
이다. 하나님의 나라 안에서 성속(聖俗)을 구별하지 않듯이, 기독교 세계관 
속에서 교회와 세상은 이분법적으로 구별되지 않는다. 
교회의 목회자들과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성전 안에 가두어 
두려고 했던 잘못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바울은 아레오바고에서 아덴 사
람들에게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
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행 17:24-25)라고 말했다. 
하나님을 예배당 안에 가두어 두려고 하지 않아야 하며 기독교를 교회당 안
에 가두어 두고 사유화(私
有化)해서는 안 된다. 종교의 사사화(私事化)는 
곧 타락의 길이기 때문이다. 기독교가 역사에 대한 책임을 외면하고 현실에
서 일어나는 일에 관심을 갖지 않으면 이미 기독교의 사사화는 시작되었다
고 말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은 예배당 건물을 유지하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이루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자기 예배당 
건물이나 교회의 부속 수양관, 교회의 공원묘지 등을 유지하기 위하여 힘쓰
느라고 세상을 바라볼 수 없을 때 종교의 사사화는 이미 시작된 것이다. 
복음의 능력은 어두운 세상 속에서 찬란한 빛으로 비춰질 때 드러난다. 예수
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
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
을 돌리게 하라”(마 5:14-16)고 하셨다. 

교회는 용산 참사 기억해야

세상의 빛된 그리스도인들은 용산 철거민 참사를 분명히 기억하
며 어두운 세
상을 밝게 비취는 사명을 책임 있게 감당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