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말씀과 성령과의 관계 _김수흥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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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잡히는 교리강좌<16>

예수님의 말씀과 성령과의 관계

김수흥 목사·합신 초빙교수

“성령님은 예수님의 말씀을 성도들의 삶에 적용하시는 분”

예수님은 요 3:1-5에서 중생하게 만드는 말씀의 역할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지 않고 성령님의 역할에 대해서만 언급하신다. 예수님은 사람이 천국에 가
기 위해서 성령으로 거듭날 필요가 있다고 역설하신다. 

말씀과 성령이 역사하는 
중생의 사역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
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신다(3:5). 예
수님은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그런가하면 야고
보는 약 1:18에서 그리고 베드로는 벧전 1:23에서 중생은 말씀에 의해서 일
어난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말씀과 성령과의 관계는 어떠한가. 다른 점도 있고 같은 점도 있다
고 말씀한다. 그렇다면 말씀과 성령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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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말씀과 성령님은 존재론적으로 다르다. 예수님의 말씀은 예수님의 
뜻과 행위를 계시하신 반면 성령님은 삼위 중 제 3위(位)이시다. 다시 말해 
예수님의 말씀은 그의 의지를 사람들에게 알리시는 수단이고 성령님은 예수
님의 말씀을 성도들의 삶에 적용하시는 분이시다(고후 13:13). 
사 59:21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은 서로 다르다고 말씀한다. “여호와
께서 또 이르시되 내가 그들과 세운 나의 언약이 이러하니 곧 네 위에 있는 
나의 영과 네 입에 둔 나의 말이 이제부터 영원하도록 네 입에서와 네 후손
의 입에서와 네 후손의 후손의 입에서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사 
59:21). 
방금 기록한 장절을 보면 여호와께서는 성령님을 성도들에게 두시고 또 그
의 말씀을 성도들의 입에 영원히 두신다고 약속하신다. 다시 말해 여호와께
서는 성도들에게 주실 성령과 또 성도들의 입에 두실 그의 말씀을 구별하고 
계신다.
이점에 관하여 캘빈은 사 59:21을 해설하면서 성령과 말씀을 구분하고 있
다. 그는 주장하기를 “그(하나님)는 교회로 하여금 ‘말씀’과 ‘성령’으
로 만족하도록 분부하신다. 이는 마치 하나님의 약
속에만 매달리는 것이 큰 
행복인 것처럼 말이다”고 주장한다. 
달라스 신학교 주해교수인 말틴(John A. Martin)도 역시 성령과 말씀을 구분
한다. 그는 “메시아께서 심판하러 오실 때 그는 그의 영을 믿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부으실 것이고 그의 말씀을 그들 속에 스며들게 하실 것이다”라
고 주장한다. 
이 주장에 동조하여 그로간(Geoffrey W. Grogan)은 “성령과 말씀은 하나님
에 의해서 교회에 주어진 ‘두 언약들’이고 교회에 서약하신 두 가지의 
‘은사들’이다”라고 말한다. 
벌코프(Hendrikus Berkhof) 역시 성령과 말씀을 구분한다. 그는 “성령은 말
씀 밖에서도 역사하실 수 있으나 전파된 말씀은 성령의 역사 없이는 효과가 
없다. 전파된 말씀이 효과가 있다면 그것은 성령님의 추가적인 역사 때문이
다”라고 말한다. 
말씀은 성령님이 쓰시는 도구이다. 벌코프는 “말씀은 성령의 도구이다. 그
러나 말씀에 매인 분은 아니시다. 그리고 말씀은 자동적으로 역사하시지 않
는다. 말씀은 성령을 사람들의 마음에 가져다주고, 성령은 말씀을 마음속으
로 가져간다”라고 주장한다. 
영(Edward J Young)도 역시 성령과 말씀
은 서로 다른 것이라고 말씀한다. 그
는 “언약의 내용이 위로부터 내리신 성령님과 이스라엘의 입에 둔 말씀이 
영원히 그들로부터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데서 발견된다”고 말한다. 
이에 동의하여 리델보스(J. Ridderbos)는 말하기를 성령님은 말씀과 다르다
고 말한다. 그는 “언약의 내용은 성령과 여호와의 말씀의 언약이라”고 주
장한다. 이 점에 있어서 영국 브리스톨 트리니티 대학 전임 교장 모티어(J. 
Alec Motyer)는 “내 성령(My Spirit)과 내 말씀(my words)은 각각 주님의 
생명과 주님의 진리이시다”고 말한다.
투쎄인트(Stanley D. Toussaint)는 주장하기를 사마리아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성령을 받기 전에 사도들을 기다렸다(행 8:14-17)고 하면서 그
는 “아마도 사도들이 예루살렘 교회로부터 올 때까지 하나님께서 성령을 내
리시는 일을 억지하신(withholding) 일의 가장 중요한 면은 분쟁을 막으시려
는 것이었다. 유대인과 사마리아 사람들의 분쟁에 대한 자연적인 경향 때문
에 베드로와 요한은 사마리아 신자들을 공식적으로 교회 안으로 환영하는 것
이 중요했다”고 설명한다. 
렌스키(R. C. H. Lenski)는 빌
립의 사역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
마리아 사람들이 두 사도(베드로와 요한)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성령을 받을 
필요가 있었다고 설명한다. 렌스키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누가가 사마리아가 말씀을 받았다고 쓴 것은 과장이 아니다. 이 말은 ‘모
든 사마리아’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유대인과 구별되는 사마리아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이다. 말씀은 유대인들로부터 사마리아 지역으로 간 것이다. 이
것이야말로 아주 의미 있는 발전이었다. 
바벨론으로부터 귀환한 후 이 두 민족 사이에는 하나의 큰 간격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다리가 놓이고 있었다. 그것은 사도에 
의해서가 아니라 집사들 중 하나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것은 확실히 사도들
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 그들은 가장 중요한 두 사도를 빌립에게 보냈다. 
그들이 전달해야 하는 생각은 모든 신자들은 그들이 유대인 신자이든 사마리
아 신자이든 한 몸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나를 이루어야 하는 것
은 베드로와 요한의 사명에 의하여 이룩된다. 

말씀과 믿음을 통해 함께 하시는 성령

그런데 교회를 하나 되게 하는 것은 성령
이시다. 성령께서 말씀과 믿음을 통
하여 모든 신자들 안에 거하실 때 그들은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영적으로 한 
몸이 되고 또 말씀의 중요한 사역자들인 사도들과 영적으로 한 몸이 되는 것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