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답게 사는 것_ 딤전 6:18 조병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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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수의 목회편지(124)

하나님답게 사는 것_ 딤전 6:18

조병수 교수_합신 신약신학 

“사람답게 사는 것 넘어 하나님처럼 살아야”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에 대한 초기 기독교 교부들의 사색은 깊은 우물에 두
레박을 내리듯 한없이 깊었고, 그들은 그런 사색을 통해서 성육신 신학을 굵
은 가래떡처럼 뽑아냈다. 거기에서 기독론은 말할 것도 없고 장엄한 구원의 
이론이 선명하게 형성되었다. 아마도 성탄의 의미를 찾는 데 압권은 아들을 
내주신 하나님의 행위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성육신 신학 굵게 세운 교부들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하나님이 역사를 통틀어 보이신 최대의 선행이
다. 하나님은 아들을 주심으로써 죄로 말미암아 철저하게 난파하여 비참하
게 가난한 인간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셨다. 성탄은 인간을 향한 하나
님의 극한 자선이며, 하나님의 올인(다 걸기)이다. 그러므로 바로 여기에 하
나님의 성품이 가장 높게 표현되었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
내신 것은 하나
님의 하나님다움의 절정이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를 통하여 부자들에게 주는 권면에서 하나님다운 삶을 요
구하고 있다. 사도 바울은 부자들이 꼭 그렇게 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같
은 말을 두 번씩 반복한다. 이것은 굉장한 강조이다. 첫째 짝은 “선을 행하
다”와 “선한 사업을 많이 하다(선한 사업에 부요하다)”이다. 둘째 짝은 
“나누어주기를 좋아하다”와 “동참하는 자가 되다”이다. 
사도 바울의 권면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첫째 짝에서도, 둘째 짝에서도 앞의 
요구보다 뒤의 요구가 더 강해진 것을 느낄 수 있다. 사도 바울은 아주 간단
한 점층법을 사용해서 부자들이 하나님의 심정을 가지고 멋지게 살 수 있는 
길을 알려주었다.
사도 바울은 부자들이 무엇보다도 선행을 추구하기를 권면한다. 이것은 소극
적인 면에서 보면 신자들이 악행을 멀리해야 한다는 요구이다. 신자들은 악
을 멀리하고 선을 가까이 해야 한다. 악행을 거절하지 않으면서 선행을 추구
하는 것은 서로 모순적이어서 아예 말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선을 행하라는 사도 바울의 권면은 이런 소극적인 차원을 넘어 삶 
그 자체가 선행이어야 
한다는 적극적인 요청을 담고 있다. 어떻게 보면 신자
는 선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선으로 사는 것이다. 신자에게 선행은 삶의 일
부가 아니라 삶 그 자체이며, 일이 아니라 삶이다. 하지만 사도 바울의 권면
은 이보다 더욱 강렬하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는 신자들이 선
한 사업에 부요하기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선행이 증가되고 확대되기를 요청하는 것이다. 재물에 부요하기 위해
서는 투자를 해야 하듯이, 선행에 부요하기 위해서도 투자를 해야 한다. 신
자는 자동적 선행에서 능동적 선행으로 전진해야 한다. 이렇게 사도 바울은 
선행의 개발과 진흥을 권면하고 있다. 
또한 사도 바울은 부자들이 나누어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권면한
다. 재물을 무조건 움켜쥐고만 있는 것은 신자의 삶이 아니다. 성숙한 신자
는 깨끗하게 벌어서 아름답게 나눈다. 따라서 신자에게는 정직한 수입도 중
요하지만 박애적인 지출도 중요하다. 이것은 신자가 평소에 나누어주는 삶
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사도 바울의 권면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그
것은 연약한 사람들의 삶에 동
참하라는 것이다. 나누어주는 것이 물질에 관
련된 것이라면 동참하는 것은 인격에 관련된 것이다. 물질적인 구제는 있지
만 인격적인 관계가 없다면 크게 잘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물질을 나누어줄 뿐 아니라 연약한 사람들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
는 것이 요구된다. 
선을 행하는 것 그리고 선한 사업에 부요한 것, 나누어주기를 좋아하는 것 
그리고 동참하는 자가 되는 것, 이것은 하나님의 성품을 고스란히 따온 것이
다. 하나님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어 성육신하게 하심으
로써 이런 성품을 절정에 다다르도록 보여주셨다. 

신자들은 하나님의 성품 닮아야

만일에 신자들이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요하며, 나누어주기를 좋아하
고 동참하는 자가 된다면,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절친한 친구가 되는 것이
다. 그것이야말로 사람보다도 못한 삶을 추구하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처럼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목적하는 것은 사람답게 사는 것이 아니라 하
나님답게 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