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사회의 질병과 교회의 역할
< 김영규 목사 >
·개혁주의성경연구소장
·뉴욕과학아카데미(NYAS)
·미국과학 진흥협회(AAAS)
·미국화학학회(ACS) 초청회원
“생활수준 향상으로 높아진 정신질환 퇴치에 교회가 관심 가져야”
오늘날 교회가 이웃을 진정 돕는 일은 쉽지 않은 것 같다. 그 이유 중에서 현대사회에서 이웃을 돕는 일은 교회에게 경제적인 부담이 큰 경우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예를 들어 장기적 안목에서 남복통일을 그 목표로 해서 교회가 북한 사회를 돕는다고 해도 너무 많은 분야들에서 도와야 하기 때문에 연합활동이 약한 한국교회로서 경제적인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선교지에 있는 다른 나라들의 이웃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도 국가적 위상에 비해서 교회들의 경제적인 능력이 극히 약해진 상태에서 도울 수 없는 형편이 되어버린 현 모습도 안타깝다. 더구나 주변의 약자들을 돕는 일도 생활수준이 높아져서 그런지 도와주어도 도운 것 같지 않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미국의 경우를 보아도 국가 보건원에서 세계를 대표하는 의학약품 생산회사들과 협조하는 질병치료제 개발에 있어서 동조협약을 맺을 때, 개발이 어렵고 경제적인 부담이 큰 질병들은 그 개발 목표로부터 어쩔 수 없이 탈락하는 현상에 대해서 우려하는 지적이 많을 정도이다.
그렇게 탈락한 질병 중에 정신분열병(Schizophrenia) 치료에 대한 지원이 탈락한 사실에 대해 싸이언스(Science) 잡지도 그 우려를 지적하였지만, 특별히 그런 우려를 반영한 네이쳐(Nature) 잡지의 특집이 주목되고 있다.
정신분열과 같은 질병은 현대사회에 와서 더 많이 퍼져 선진국병이라는 오해를 살만큼 잘 사는 나라들에게서 더 많이 발생하는 질병이 되었다. 교회 안에서도 그런 환자들을 만날 때 종종 오해되어 되어 마치 귀신을 쫓아낸다고 함으로써 그 질병을 키우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극히 주의해야 할 질병이다.
그 원인조차 알 수 없고, 일상생활에서 결혼문제나 직업문제나 학교생활 중에서 자신에게 닥친 급격히 변화된 사건들로 인한 충격에 의해서 스트레스를 받아 나타나는 질병이기 때문에 그 질병에 대한 징후들을 미리 발견하기조차 쉽지 않다. 또한 초기 징후들도 일상생활에서 잘 구별되지 않다가 조금씩 그 징후들이 나타나는 질병이라서 사회 전체나 공동체들의 주의를 요하는 질병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주변에 그런 환자들이 있다 할지라도 약 50퍼센트만이 치료를 받고 있으며 그 나머지는 방치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대략 219개 정도의 치료약들이 개발이 되었다 할지라도 FDA에서 인정하는 치료제는 겨우 8개 정도에 불과할 정도로 치료제가 없다는 것도 문제이다. 그렇게 인정이 되는 치료제들일지라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는 정도로 그 효과가 부정적이고 오히려 부작용이 많다는 것이다.
그런 치료제라도 쓰지 않고 그대로 방치한 상태로 방치하면 심한 경우에 환각과 환상이 생겨서 망상에 빠져 남을 오해하거나 행동에 문제가 생기기 쉽다. 특히 어릴 때는 생각과 말에 있어서 일치하지 않거나, 비논리적인 미묘한 징후들이 성장하여서는 거의 80퍼센트의 환자들이 헛소리를 듣고 자신의 의지가 원하지 않는데도 헛말들이 튀어나와 중얼거리는 현상 때문에 스스로 고통을 당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주변의 시선으로부터 피하여 숨게 되는 현상 때문에 그 치료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 치료가 되어도 부작용으로 잠도 잘 못 자고, 여전히 남은 우울증과 대인 기피증으로 인하여 여전히 사회생활에도 적응하지 못하며, 힘이 없고 불안해 하거나 자신과의 싸움 때문에 다른 것에 대해서 무관심하게 되고, 자학과 함께 돌출 행동들로 인하여 가족과 사회 전체에 대한 변수들로 작용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합병증들보다 자살로 죽는 확률이 13배나 높다는 것이다.
더구나 이 질병은 다른 합병증들과 함께 빨리 성장하게 만들어서 비교적 젊은 나이에 죽거나, 이러한 징후들이 뇌의 퇴행성으로 나타나는 일이 많아져서 전체적으로 사회적 부담이 큰 질병이 되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 질병의 시작이 환경적 요인들에게 더 많다는 것이다. 유전적 요인들도 감안하여 연구되고 있지만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영양결핍, 감염, 비타민 D 결핍, 출산의 기후조건 등의 환경적 요인들도 크다는 것이다.
그렇게 사회 전체로 볼 때 누구에게도 닥칠 수 있는 질병이고, 사회로부터 보호되지 않으면 치료시기를 놓치기 쉽기 때문에 좋은 가족관계, 평안한 학교생활 및 이웃에 대한 배려가 있는 사회 환경들이 그런 질병들의 확장을 막을 수 있는 경제적인 가장 좋은 대안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교회는 없는 것보다 나은 치료제들을 주는 것보다 더 중요하게 그런 징후들의 조기 발견에 기여할 수 있고, 사회로부터 그런 환경적 요인들을 제거할 수 있는 기회가 많으며, 지적활동치료(cognitive behavioural therapy)에 직접 관여할 수 있는 여건들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창조와 그 이후 세계 질서가 하나님의 참된 기적 역사이라고 판단하고, 마치 무슨 기적을 일으킬 것처럼 내세우지 말고 이웃들에게 가장 쉽고 가장 절약이 되는 수단들을 통해서 도움을 주고자 하는 노력들이 지금의 교회 형편에 가장 알맞은 방법이 될 것이다.
좋은 사람들을 찾기 힘들고 사회가 더 부패하여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움직임이 클수록 교회가 일할 것이 오히려 많아지기 마련이다. 성경의 가르침대로 그렇게 이웃들을 도와 그들로 하여금 정도로 가게 하는 것이 지금 우리 교회에 필요하지 않는지 스스로 묻게 된다.
현대 사회가 더 진행될수록 혹시 교인들의 수가 줄어간다 할지라도, 교회가 하는 일들은 더 많아졌다는 점을 명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