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수의 목회편지(83)_네게 듣는 자_딤전 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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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수의 목회편지(83)
딤전 4:16

네게 듣는 자

조병수 교수_합신 신약신학 

청중이 있다는 것은 즐거움 그 자체이다. 눈빛이 총명하게 빛나면서 귀를 기
울여 들어주는 사람들이 있을 때 말하는 사람의 기쁨은 헤아릴 수가 없다. 고
개를 끄떡이며 노트 위에 열심히 받아 적는 사람들을 보면 말하는 사람의 목
소리는 저절로 높아진다. 
한 마디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서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그렇지, 그렇지 연발
하는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사람은 준비하지 않은 것까지 토해낸다. 마침내 
거기에는 폭발할 것 같이 뜨거운 열기가 끓어오른다. 그런 자리에서는 말하
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혼연일체가 되는 현상이 일어난다. 듣는 사람은 말하
는 사람의 생각을 알기에 웃으면 함께 웃고 울면 함께 운다. 

청중과의 교감에 보람느껴

이 때문에 말하는 사람에게는 듣는 사람에 대한 책임이 있다. 물론 말하는 사
람이 자기 자신에 대한 책임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은 말할 필요가 
없다. 말하는 사람은 
자신의 말에 책임을 져야 한다. 이것은 디모데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목회자에게는 더욱 절실한 문제였다.
디모데가 자기 자신에 대하여 가져야 할 책임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특히 구
원에 관한 것이었다. 이 때문에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네 자신을 구원할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디모데가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는 자로서 자기 자신
에 대하여 책임을 지지 못한다면, 특히 자신의 구원에 대하여 책임을 질 수 
없다면, 그가 얼마나 많은 말을 할지라도 그 모든 말은 허사가 되고 말 것이
다. 그것은 공허한 씨부렁거림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디모데가 자기 자신 뿐 만 아니
라 그의 말을 듣는 사람들에 대하여도 지대한 관심을 가질 것을 권면한다. 하
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의 책임은 자기 자신에게서 끝나지 않고, 그의 말을 
듣는 사람들에게까지 확대된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권면하면서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할 것이
다”라는 말을 덧붙였다. 이렇게 하여 사도 바울은 디모데가 하나님의 말씀
을 듣는 사람들에게 지대한 관심을 가질 것을 촉구하였다. 디모데는 그
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해야 해야 한다. 디모데는 말로 끝나는 말을 해서는 안 된
다. 디모데의 말은 반드시 듣는 사람들을 구원에 도달하게 해야 한다.

최종 관심은 구원에 이르는 것

그러면 이런 일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사도 바울은 이것을 이루기 위하여 
친절한 조언을 주었다. “네 자신과 가르침에 주의를 기울이고 이 일들을 고
수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 구원할 것이다”(필자역).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
는 사람이 자신의 구원 뿐 아니라 듣는 자의 구원에 대하여 책임을 지기 위해
서는 무엇보다도 자신의 삶(행함)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에 합당한 삶을 살지 않으면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은 사돈 남 말하는 격이 되고 만다. 솔직히 말해서 듣는 사
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전하는 설교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설교자이다. 
그렇기 때문에 설교자는 자신이 전하는 가르침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하나
님의 말씀은 일차적으로 청중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설교자를 위한 것이어야 한
다. 설교자는 청중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전에 자신이 먼저 
그 말씀을 
들을 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에게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설교자의 설교는 
허망하기 그지없다. 그런 설교는 청중의 귓가에서 쟁쟁거리는 소리로 끝나고 
만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 먼저 그 가르침에 설득될 때 비로소 하
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을 설득할 수가 있다. 그래서 설교의 능력은 설교
자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청중을 설득하는 데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설교자
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설득되는 데서 비롯되는 것이다. 

설교는 허망한 소리 안 되어야

반응하지 않는 청중 앞에서 말하는 것은 그 자체가 죽음이다. 산만하게 사방
을 두리번거리는 사람들 앞에서, 고개를 떨구고 조는 사람들 앞에서, 팔짱을 
끼고 멍하니 앉아있는 사람들 앞에서 설교하는 것은 무덤을 파고 있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런데 청중이 반응하지 않는 까닭이 설교자에게서 바른 삶
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라면 설교자는 지옥에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