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수의 목회편지(46)-싸움꾼 (딤전 3:3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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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꾼 (딤전 3:3b) 

조병수 교수/ 합신 신약신학

아마도 우리나라의 길거리에서만 볼 수 있을 것 같은 진풍경 중에 한 가지
는 이웃사람끼리도 주차문제로 말미암아 서로 욕지거리를 하고 손찌검을 하면
서 싸우는 것이다. 길거리에서 뿐 아니라 국회와 같이 고상한 자리에서도 그
럴싸하게 생긴 의원들이 멱살을 잡고 주먹질을 하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오랜 
역사가 되고 말았다. 하긴 심지어 거룩하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장소인 
교회당에서조차도 어떤 이유에서든지 간에 내 편, 네 편으로 갈라져 서로 욕
설을 퍼붓고 발로 차고 손으로 패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것이 우리나
라의 모습이다. 이 나라에서는 그래도 선출 받은 목사들과 장로들로 모여서 
회의를 하는 소위 “성(聖) 노회”와 “성 (聖) 총회”에서마저도 믿지 않는 사람
들이 하듯이 다투고 싸운다고 하니 참으로 기가 찰 노릇이다. 

싸움과 다툼은 상대방을 이해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
나는 것이다. 잠시라도 
왜 저 사람이 차를 그렇게 세울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
하는 마음을 가진다면 주차문제로 인하여 싸우는 일은 훨씬 많이 줄어들 것이
다. 상대 정치인이 그런 주장을 하는 까닭을 조금이라도 생각해 볼 여유를 가
진다면 국회에서 치고 박고 싸우는 추태를 보이지는 않게 될 것이다. 비록 의
견차이로 말미암아 교회 안에서 그룹이 나누어진다 할지라도 서로간에 고유
한 성격들을 헤아리는 자세를 가진다면 몸싸움까지 하는 불상사가 일어나지
는 않을 것이다. 한 회원이 발언할 때 그가 처해 있는 상황을 고려하여 이야
기를 듣는다면 노회든 총회든 물리적인 힘 자랑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모
든 다툼과 싸움의 배후에는 상대방을 이해해보려는 관용의 부족과 결핍이 도
사리고 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 중의 축복이다. 사도 바울
은 다른 사람에 대하여 이해심을 가지는 것이 지복 (至福)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교회의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자면 교회를 이끄는 사람은 구타하지 아니하고 오직 관용하며 다투
지 아니해야 한다. 아무하고나 쉽게 갈등을 
빚는 사람이나 어디에서든지 자
주 마찰을 일으키는 사람에게는 교회의 지도자 직분이 결코 어울리지 않는
다. 그것은 그에게 관용이 없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만일에 이런 사람이 사
도 바울의 권면 앞에서도 아무런 부끄러움이 없이 버젓이 교회의 지도자로 행
세를 한다면 교인들에게는 물론이고 그 자신에게도 크나큰 불행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관용하는 지도자는 자신이 복된 사람일 뿐 아니라, 그
런 지도자를 만난 교회는 한없이 큰 복을 받은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관용이란 것은 절
대로 쉬운 것이 아니다. 사실상 관용은 복 중의 복이지만 또한 어려운 것 중
의 어려운 것이다. 대부분의 지도자들이 이 부분에서 매일같이 실패를 맛보
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일에 누군가가 관용을 베푸는 일에서 성공한다면 그
는 모든 일에서 성공한 것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점에서 구타하
지 말고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말라는 사도 바울의 권면은 우리에게 회개를 
요청하는 것이 된다. 우리는 이해심과 관용심을 얻기 위하여 연습해야 한다.

다른 사람을 이해
해보려고 노력하지 않는 닫힌 마음의 빗장을 열고, 다른 사
람에게 관용을 베풀려고 하지 않는 굳은 마음을 부드럽게 만드는 연습을 해
야 한다. 자신에 대하여는 냉정하고 타인에 대하여는 온유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타하지 말고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말라는 사도 바울의 
권면을 건성으로 흘려보내서는 안된다. 우리는 이 말씀을 가지고 하루를 여
는 아침시간에 자신의 삶을 결단해야 하며, 우리는 이 말씀을 가지고 하루를 
닫는 저녁시간에 자신의 삶을 반성해야 한다. 다른 사람을 이해해보려는 자세
가 우리의 삶에서 알파와 오메가가 되어야 한다. 처음도 관용이며 나중도 관
용이다. 다시 말하지만 첫째도 관용이며 둘째도 관용이다. 하지만 이 일이 어
찌 우리의 힘으로 이루어지겠는가, 우리의 연약함을 이해하시는 하나님의 관
용하신 도우심이 없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