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되라 (딤전 3:2b)
조병수 교수/ 합신 신약신학
누구에게나 만나지 않았어야 할 사람이 있는 것 같다. 이제는 수년전의 일
이 되고 말았지만 나에게도 그런 사람이 있었다. 게다가 그가 목사였다는 것
을 생각하면 지금도 머리가 지끈거리며 아파진다. 그는 돈 빌려쓰고는 갚지
않고, 남의 이름을 팔아 제 이익을 챙기고,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고, 잘 되가
는 모임을 파투로 만들고, 절친한 친구사이에 이간질하고, 등뒤에서 욕하며
다니고, 남의 물건을 제 것인 냥 마구 사용하고, 사람들의 마음에 찬물을 끼
얹기가 일수였다. 그에게서는 자기를 절제하는 모습이라든가 언행에 조심하
는 자세, 또는 단정한 생활이란 것은 정말로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가 없었
다.
사도 바울이 제시하는 감독의 자격을 보면 괜히 입안이 씁쓸해진다. 다른
것이 아니라 감독이 될 사람에게 절제와 근신과 아담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
다 (딤전 3:2b). 물론 사도 바울이 교회지도자의 직분을 얻기 위한 조건
으로
믿음과 경건 이런 것들을 모두 전제적으로 생각했을 것임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느닷없이 절제와 근신과 아담을 제시하는 것을 들으면 가슴이
움찔 찔린다. 우리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쉽게 지나쳐 갈 수 있는 것들을
사도 바울은 꼭 집어서 언급하고 있는데, 이 세 단어를 한 마디로 정리하자
면 교회지도자가 되기 전에 먼저 사람이 되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절제와 근신과 아담은 사실상 모두 동의어라고 보아도 크게 잘못되지 않을
것이다. 이 단어들이 나타내고자 하는 기본적인 뜻은 말짱한 정신을 가지고
총명한 마음으로 단정한 자세를 취하는 것이다. 다른 말로 설명하자면 이 단
어들은 노인이 나이가 들어도 정신이 흐려지지 않도록 깨어있는 것 (딛
2:2), 젊은 여자들이 이것저것에 한눈을 파는 일이 없이 총기를 유지하는 것
(딛 2:5), 여자가 옷매무새를 잘 갖추어 반듯하고 우아한 자세를 지키는 것
을 의미한다 (딤전 2:9). 이런 모습에서 노인은 노인으로서의 고상함을 나타
내고, 여성은 여성으로서의 우아함을 간직할 수가 있는 것이다.
왜 사도 바울은 교회의 지도자가 되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의
자격으로 이런
조건을 제시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 지도자가 되기 전에 먼
저 사람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이 말로써 사역보다 인격이 중
요하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오늘날과 같이 성품보다 기능을 더 중시하는
시대의 풍조가운데서는 사도 바울의 생각이 얼마나 유효할지 모르겠지만, 아
무리 부인하려고 해도 부인할 수 없는 것은 인품이 훌륭하면 작은 사역이라
도 큰 효과를 일으키고 인격이 더러우면 큰 사역이라도 별 효과를 일으키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이런 의미에서 교회의 지도자를 세우려고 할 때는 능력
을 시험해볼 것이 아니라 인품을 시험해보아야 한다.
사람이 되지 않은 채로 일군이 되면 문제가 생긴다. 그런 인물은 무엇인가
지식을 배우면 교만해지고, 무엇인가 재주를 익히면 우쭐해지고, 무엇인가 지
위를 얻으면 거드름을 피운다. 송아지 못 된 것은 엉덩이에 뿔이 난다는 속담
이 조금도 그르지 않다. 인품을 갖추지 못한 사람의 지식은 살상무기가 되
고, 그의 재주는 절도기술이 되며, 그의 지위는 학살현장이 된다. 우리는 사
도 바울이 제시하는 이렇게 간단한 진리에 비추어 볼
때 우리의 주위에서 얼
마나 쉽게 독일의 히틀러와 캄보디아의 폴포트를 만날 수 있는지 잘 알고 있
다. 그 뿐이 아니다. 우리를 더욱 두렵게 만드는 것은 사람의 됨됨이를 갖추
지 못할 때 우리 자신이 너무나도 쉽게 히틀러와 폴포트가 되어버린다는 사실
이다.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교회를 돌보아야 할 감독의 자격을 설명하는 난에 절
제와 근신과 아담이라는 세 단어를 적어 넣은 것은 결코 실수가 아니다. 감독
이 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수년
전에 만났던 그 불량한 목사는 사실상 나의 가슴 속 깊이 숨어있는 본질의 자
화상에 불과하다. 어거스틴의 말대로 나 자신이 나에게 문제가 되었다. 그렇
다. 사람이 되지 않고 목사가 되어있는 우리가 문제일 뿐이다. 그러므로 사람
이 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