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수교수의 목회서신 연구(25)-신적 단수(神的 單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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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적 단수 神的 單數

(딤전 2:5a)

조병수 교수/ 합신 신약신학 

작은 수도 경이롭고 신비하다. 오늘날처럼 다수와 복수를 좋아하는 시대에
는 작은 수가 그저 천더기로 여겨진다. 많은 수와 큰 수에는 엄청난 의미가 
부여되지만 소수와 단수는 외면당하고 멸시를 받는다. 사람들은 모든 형태의 
복수가 단수의 집합이며, 모든 종류의 다수가 소수의 결합이라는 사실을 잊어
버리고 있다. 예를 들어 실수 중에 가장 작은 수인 하나 (일)로부터 둘이 시
작되고 셋이 형성되는 것이다. 그래서 소수와 단수의 가치를 잊어버리고 다수
와 복수에만 집착하는 것은 인격의 균형을 깨뜨리고 마침내는 인격에 변형을 
일으킨다. 오늘날 우리의 시대에 발생하는 불행의 배후에는 바로 이런 수 개
념의 편향성이 숨어있다. 

그런데 참으로 경이롭고 신비한 것은 가장 큰 수보다도 더 큰 가장 작은 수
가 있고, 가장 많은 수보다 더 많은 가장 적은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신적 단수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 이
것은 하나님에게 해당되는 단수이
며, 하나님만이 가질 수 있는 단수이다. 신적 단수에 관한 선언은 구약과 신
약을 관통하는 사상이다 (예를 들면, 신 6:4; 고전 8:6). 이 사상은 하나님
을 설명하기 위하여 가장 작은 수를 택하고 있다. 우리가 신앙하는 대상은 많
은 하나님이 아니라 한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다수적이며 복수적인 하
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유일하고 단수적인 하나님을 믿는다. 그런데 신적 
단수는 가장 큰 수보다도 크고, 가장 많은 수보다도 많은 것이다. 가장 큰 수
라도 신적 단수 앞에 서면 없는 것 같을 뿐이고, 가장 많은 수라도 신적 단
수 앞에 서면 빈 것 같을 뿐이다 (사 40:17). 신적 단수 앞에서는 모든 것이 
아무 것도 아니다. 가장 작은 수로서 가장 큰 수를 포함하며, 가장 적은 수로
서 가장 많은 수를 총괄하는 신적 단수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선명하게 보
여준다. 

무엇보다도 한 분이신 하나님은 존재하신다. 하나 (일)는 비록 가장 작은 
수이지만 존재를 의미한다. 그것은 존재의 시작이다. 모든 다른 수가 하나 
(일)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라고 말하는 
것은 존
재로서의 하나님을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인식할 수 없는 “그
때”, “거기에”, “그대로” 계신다. 인간의 인식을 초월하는 하나님 존재의 시
간과 공간과 방식은 가장 어려운 비밀언어 가운데 하나인 하나님의 존재를 계
시하는 단락에 넌지시 암시되어 있다 (출 3:14). 더 나아가서 한 분이신 하나
님은 자존하신다. 세상에는 어떤 것과도 관계하지 않고 오직 홀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모든 것이 다른 것과의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 

그러나 신적 단수는 이런 관계를 초월한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라고 말
할 때 그것은 혼자로도 존재하시는 분, 어떤 것에게도 의존하지 아니하시는 
분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존성은 하나님이 무한하시다는 것을 설명
한다. 오직 한 가지만이 무한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두 개의 무한한 존
재가 있다는 것을 허용하는 순간, 즉시 하나는 다른 하나에 의하여 제한을 받
게 되기 때문이다 (Zwingli, Expositio, 5). 셋째로 한 분 하나님은 충분하시
다. 하나님이 많을 필요가 없는 것은 한 분으로서 충분하시기 때문이다. 그래
서 하나님
은 한 분일지라도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
기를 소원하실 수 있는 것이다 (딤전 2:4).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향하여 
소원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모든 사람을 포괄하고도 남을 정도로 위대하신 
분이기 때문이다. (본 단락 딤전 2:1-7에서 여러 번 “모든 사람”이라는 표현
을 반복하면서 “한 하나님”에 대하여 말하는 기법에 주의하라). 

하나님은 모든 공간을 합한 것보다도 크시고 모든 시간을 더한 것보다도 크시
다. 하나님의 충분성은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나왔다는 것을 증명한다. 마
지막으로 하나님은 모든 것을 상대하시지만 한 분이시기 때문에 모든 것에 관
심하면서 동시에 작은 것과 적은 것에도 귀하게 여기신다 (잃은 양의 비유). 
그래서 우리는 작고 적은 수를 귀하게 여기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부끄러워해
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