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신비주의 물결은 과학만능주의 시대가 해결하지 못하는 것을 보충해 주
려는 듯이 매우 아이러니컬하게도 도처에 번지고 있다. 한국교회는 매우 신비
주의에 허약하다. 한국인들의 종교정서와 시대의 혼란이 이런 현상의 이면에
있을 것이요, 바른 신학의 울타리로 보호하지 못한 책임도 있을 것이다. 수많
은 적그리스도와 자칭 그리스도들이 재림예수라고 외치면서 임박한 재림을 강
조하면서 교회를 혼란과 어려움에 빠트렸다. 더구나 이런 운동들은 성령론의
오해와 잘못된 해석에서 비롯되고 있다. 더구나 1996년도를 비롯하여 그동안
복음주의 신학회에서도 몇차례 한국교회 성령론 정립을 시도한 바 있으나, 칼
빈주의자들, 웨슬레안들, 루터파, 침례교회와 오순절 교회들이 각기 다른 해
석학을 주장하고 있어서 혼란이 해결되질 않고 있다. 1977년부터 캘리포니
아에서 일어난 제3의 물결이라는 신유의 운동으로 인해서 매우 큰 자극을 받
았고, 동시에 어려움도 경험하고 있다. 존 윔버와 빈야드 운동이 들어와서 20
세기의 신비주의 물결은 기적
적인 신유집회와 치유 사역, 개인적인 예언과 방
언의 능력 등으로 성도들을 고무하고 있다. 이런 운동에서 성도들이 얻기를
원하고 바라는 남다른 계시체험이란 일시적, 종교적, 심리적 위안에 초점이
맞춰진 것이다.존 윔버의 신학의 출발점은 그리스도인은 사탄과 마귀적인 세
력과의 영적인 싸움 속에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서 하나님의 나라가 세상에 왔기에, 사탄의 나라와 대결하게 되었다는 말이
다. 그는 전통적인 전도인 ‘계획된 전도’(Programmatic evangelism)와 자신
의 전도인 ‘능력전도’(Power evangelism)를 대조시킨다. 전통적인 전도는
메시지 중심이요, 이성적인 논쟁으로 치우친다고 비판한다. 이것은 초자연적
인 은사의 도움없이 사람의 마음과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며 이런 전도는 단순
히 그리스도를 위한 결단만을 목표로 하기에 주님의 제자를 직접적으로 만든
다는 목표에는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그가 주장하는 ‘능
력전도’는 순간 순간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다른 사람의 생애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를 계시함으로 그를 전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기적으로 인
해서 놀라게 된 사람들은 남은 생애 동안 확고한 하나님의 능력을 알게 되고
지속적으로 구원을 확신하며 나아간다는 것이다.그러나 일반적으로 이런 체험
위주의 기적을 바라는 운동들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비윤리적이며, 공동체의
책임과 교회의 공동체 의식이 결여된 가치관의 변질에서 비롯된 것들이 많
다. 이런 사람들은 성령의 은사들이 강조하지만, 성령의 열매는 무시한다. 또
한 지적인 신학의 무미건조함을 비웃고, 전통적인 신학이 능력이 없다고 부정
하면서도 누구에게 영광을 돌리고 있는가를 과소평가해 버린다. 과연 신비주
의와 기적운동가들이나, 체험주의자들이 누구에게 영광을 돌리고 있으며, 그
단체 안에서 누가 주인이 되어있는가를 깨우쳐 주어야할 사명이 한국신학의
주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성도들을 교묘히 속이고 사람을 유혹하는 기적
들이 수 없이 많이 있다. 이적이며, 표적이지만, 하나님과는 상관이 없는 것
들임을 분별하도록 바르게 지적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제3의 물결을 주도하
는 사람들은 규범적인 말씀 즉 명령적인 말씀(imperative)과 교훈적인 말씀
(indicative)과의 차이를 너무나 혼동하고 있다
. 모든 기적에서 그대로 똑같
이 규범적으로 받아들여야만한다는 것은 억지다. 복음을 가진 사람들은 기적
을 바라고, 하늘에도 올라가고, 음부에도 내려가려는 초자연적인 기적을 사모
하지 않는 자들이다(신명기 30:12-14, 로마서 10:6-7절). 제3의 운동에서 주
장하는 바와 같이, 또는 많은 체험주의자들처럼, 어떤 기적이나 표적적인 현
상만으로는 전도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 우리 한국교회는 이미 2000
년 전에 전무후무한 기적, 곧 부활을 목격하고도 의심하는 자들로 가득차 있
던 복음서를 주목해야만 할 것이다.하나님은 오늘도 기적을 행하시고, 이적
을 보여준다. 선교사들의 현장에서 특히 그러하다. 그러나 앞에서 지적한 능
력전도의 기적이나, 은사는 정말로 왜곡된 것이다. 사도 바울은 오히려 약한
것을 자랑했다. 한국교회는 복음신앙 자체를 약화시키고, 너무 값싸게 팔아버
리고 있는 신비주의 이단들과 사이비 복음에 대해 공동으로 대처하고 경계하
는 과제를 감당해야만 한다. 이를 위해 건전한 성령론의 정립이 시급하다. 성
령의 권능이란 어떤 교단이나, 어떤 운동의 전유물이 아니다. 성령은 그리스
도에 대해서 증거
하시고, 알게 하시며, 그리스도에게 우리를 연합시키시는 하
나님의 영이시오, 그리스도의 영이시다. (요 14:16-21, 15:26-27, 16:13) 성
령은 그리스도를 높이고, 영화롭게 하는 사역을 감당하며, 그분을 사람들게
알게하고, 그리스도가 이룩하신 구원을 적용시키시며, 주 안에서 하나로 교제
하게 하신다. 우리는 성령의 능?
쩜?이런 성경적인 기본구조를 떠나서 자신들의 초자연적인 주장을 정당화하
기 위해서 이용하거나, 어떤 목적을 거론해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