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끄기_박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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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끄기

박종훈/ 궁산교회 목사 

고요하던 마을에 정적을 깨뜨리는 이장님의 방송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궁산 주민 여러분, 지금 마을 뒷산에 산불이 났습니다. 한분도 빠짐없이 불
끄러 올라가시기 바랍니다.”
다급한 이장님의 방송소리를 듣고 뒷산을 바라보니 파란연기가 피어오르는 것
이 보였습니다. 

그쪽은 홀로 사는 흥덕할머니가 계단 같은 밭을 경작하고 있는 곳이기에 흥덕
할머니가 밭둑을 태우다가 불이 산으로 옮겨붙었을 거라는 판단이 들었습니
다. 

그날은 바람도 어느 정도 불던 날입니다. 하던 일을 멈추고 삽을 들고 산으
로 뛰어 올라갔습니다. 

이미 주위에 사는 몇몇 이웃들이 불을 끄고 있었지만 불은 점점 산으로 타올
라가고 있었습니다. 

방송소리를 듣고 마을사람들이 뛰어올라오고 있었지만 급한 바람에 대부분 맨
손으로 올라왔습니다. 

빈손으로 올라온 사람들은 예전의 경험대로 솔가지를 꺾어서 불을 끄려했지

만 솔가지는 손에 닿지 않는 높은 곳에 있어서 쉽사리 구하기 힘들었습니다. 
설령 솔가지가 있었더라도 별 도움이 안되었을 겁니다. 

바닥에 깔린 낙엽들은 바싹 말라서 망나니처럼 잘도 번지는데 사람들은 발만 
동동 구를 뿐 연기와 바람 때문에 불길에 다가가지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불을 끄는 데는 삽이 제일 좋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했습니다. 

멀찍이서 타는 불 위에다 물 뿌리듯 삽으로 흙을 뿌리고 한편으로는 불이 더 
번지지 못하도록 길을 차단하면서 차근차근히 꺼나가면 됩니다. 

불을 끄면서 더 이상 바람 불지 않도록 기도하면서 산불을 끄다보니 많은 사
람들이 올라와서 어느덧 불길이 잡혔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마을사람은 다 나온 것 같습니다. 

평상시 잔치나 회의가 있어 방송해도 다 나오지 못하는데 불이 났다하니 만
사 제쳐놓고 올라온 것입니다. 

평소 훈련한 것도 아니고 교육받은 것도 아닙니다. 한 동네에 살면 당연히 협
조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남자들은 물론 몸이 뚱뚱한 아주머니들도, 칠십이 넘은 할머니들도, 지나가
던 외지 사람도, 방학 중에 온 학생들도

다행히도 큰 피해 없이 산불을 잡았습니다. 

뒤늦게 나타난 소방대원들은 아직 군데군데 연기가 나는 곳을 찾아서 완전히 
소탕을 했습니다. 

내려오다보니 발갛게 부은 모습으로 흥덕할머니가 놀랜 가슴을 달래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하얀 머리칼도 그슬렸고 손과 얼굴에는 적잖은 화상을 입은 
모습이었습니다. 

아주머니들이 위로도 하고 또 핀잔을 주면서 할머니 곁에 몰려와 불이 난 경
위를 물으니
“둘이만 있었어도…!”
“아! 그런게 영감 서방 하나 얻어 살라지 않소!”
광천댁의 농담소리에 모두들 웃는 여유를 가졌습니다. 

흥덕할머니의 말에 가슴이 찡해졌습니다. 

두 해 전에 할아버지가 지병으로 돌아가시는 바람에 남겨 논 다랑밭을 홀로 
힘겹게 농사 짖고 있었습니다. 

꼬부랑이 할머니가 지팡이를 짚고 올라가기에 힘든 밭이지만 그냥 밭을 묵힐 
수 없어 올해에도 뭔가를 심고자 작년에 심었던 산두밭의 볏단에 불을 지른 
것이 산으로 옮겨붙은 것입니다. 

작년에는 서울에 살던 아들이 내려와서 농사를 지었지만 올해는 그 아들이 다
시 서울로 갈 
수밖에 없었던 사정이 생겼습니다.

‘둘이만 있었어도’라고 한 그 말이 돌아가신 영감님을 의미하는지 아니면 
아들을 말하는지 이도 저도 아니면 이웃을 말하는지 모르겠지만, 하나가 못하
는 것은 둘이면 가능하고 한 가족이 못하는 것은 온 동네가 할 수 있다는 것
을 배웠습니다. 

갈수록 개인주의가 판치는 가운데서도 가정의 소중함,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
는 우리의 뿌리를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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