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언| 보다 안정적인 신학교 경영을 위하여_김용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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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안정적인 신학교 경영을 위하여

< 김용주 목사, 소식교회 >

 

교회는 신학교에 장로교 신앙고백으로 무장된 석좌교수들 파송해야

신학교는 장로교 정치 원리에 따라 운영되어야 한다. 이와 관련해 비교적 신중한 마음으로 다음과 같이 제언하고자 한다.

 

  1. 교단과 신학교와의 관계

지난번 총회기관지인 개혁신보사에 신학교 교수이면서 노회 의장이자 지교회 담임목사로 시무 중인 분께서 각 신학교가 스스로 각성하고 신학교의 입학 정원을 줄여야 한다는 제언은 큰 감흥을 불러일으켰다.

이런 논의는 합동신학교 시절 초기부터 신중하신 최 모 교수께서 제기하신 바 있었다. 그러나 어떤 이유인지 신학교는 그런 신중한 견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급기야 총회와의 관계에 있어 그릇된 교회정치 지도자들을 피한다는 현실적인 명분을 앞세워 인준신학교라는 어정쩡한 관계로 지금까지 존속하고 있다.

우리는 신학교와 총회가 이런 관계로 계속 되는 것을 바람직하게 여기지 않는다. 총회 전체가 돌이킬 수 없는 듯 한 심각한 타락상을 보일 때, 잠정적인 형태로써 인준관계는 바람직했다. 그러나 지상의 교회들의 완전성이 담보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런 관계가 여전히 계속되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신학교 교수회나 신학교 이사회가 완전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될 수 있는 오류의 여지가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개혁적 장로교회를 지향하는 어느 지교회가 노회나 총회의 돌이켜 질 수 없는 듯 한 전반적인 부패상을 직시하고 나서 잠정적으로 행정을 보류하는 경우와 같다.

하나님의 뜻에 어느 정도 일치하는 총회가 형성되면 사실상 인준관계는 사라져야 한다. 그 이유는 신학교란 유일하신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유일한 지체인 교회들과 더 긴밀한 일치를 이루어야 하고 진리와 진리의 주체이신 삼위일체 하나님과 일치해야 하기 때문이다.

 

  1. 석좌교수 제도의 활용

각 신학교의 교수 임용은 이미 오래전부터 많은 문제가 있었다. 유력한 교수들이나 교장들이나 총장들이 자기 사람들로 여겨지는 인물들로 채움으로써 신학교에 대한 장로교회적 개혁주의가 후퇴하기도 하였다. 이것이 신학교 교수 임용의 난맥상이었다.

이러한 난맥상이 조금씩 해소되는 방향으로 진척이 있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기 위해 몇몇 사람들의 합리적 결정을 넘어서야 하겠다. 또한 많은 사람들의 입맛에 맞추는 일도 적합하지 않다. 그 문제까지도 삼위일체 하나님의 존재성과 하나님의 속성과 그 속성으로 하시는 하나님의 일에 적합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하나님께서도 그렇게 여기시는가?”가 교수 임용의 적합성이 될 것이다. 물론 현재 각 신학교들의 교수 임용 제도를 그대로 두고서 진척을 보여야 한다. 이런 점에서 신학교 경영의 한 단면을 제시해 보려고 하는데 그것은 석좌교수 제도이다.

합동신학교에도 석좌교수 제도가 비교적 신학교 초창기부터 있었다. 한 분은 옛 남서울교회에서 교수 생활비를 부담했던 형태로 계시다가 은퇴하였으며, 또 한 분은 아마도 고 박윤선 교장의 추천으로 계셨던 홍창표 교수였다.

홍 교수는 부족한 한국어 실력에도 불구하고 대단한 식견으로 성경말씀을 가르쳤다. 때로는 천진난만한 어린이처럼, “예수 사랑하심은 거룩하신 말일세”라는 찬송을 살아계신 하나님께 드리면서 우리에게 들려주기도 하였다.

세 번째로는 조만간에 목회를 자유 사면할 것으로 알려진 남포교회 박영선 목사이다. 어쩌면 그분의 가르침에서의 특수성 때문에 많은 분들이 기대하는 듯하다.

각 신학교가 신학과 경제적 난맥상을 해소하기 위해 교수진 삼분의 일 이상은 석좌교수로 채워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최소한 한 파트에 일인 이상이 석좌교수여야 한다고 여긴다.

 

  1. 신학교 운영을 위한 후원

 

여러 교단 신학교들의 총장들에 대하여 조금은 알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임무에 대하여 마치 신학교 경영을 위한 영업사원의 선봉장으로 이해하고 있는 일반신자들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신학교 총장들이나 유력한 보직을 가진 교수들이 신학교 경영의 난맥상 해결을 위하여 동분서주하는 상황들을 본다. 또 그분들은 그런 상황을 지극히 당연한 일로 여기고 받아들인다.

그러다 보니 일반 목회자들이 교인들의 숫자를 불리고 교회당 등 물리적 경영 때문에, 정작 진리와 진리의 주체이신 삼위일체 하나님과 하나님의 품성과 그 품성으로 하신 일에 대한 선포가 약해지는 결과를 신학교에서도 보게 된다.

각 지교회 목사들에게 의식주에 걸맞은 생활비가 의수히 지급되어야 하는 것은 세상 삶에 대한 염려를 내려놓고 진리를 조직화 하고, 거기에 살붙임 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하나님의 모든 부요까지를 증거하고 기도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겠는가?

사도들까지도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놓고 공궤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니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 하니”라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는가?

 

마치는 말

 

이제라도 우리 모두가 신학교마다 교회의 삼직분자들, 곧 목사들과 장로들과 집사들이 선서한 내용으로 무장된 석좌교수 요원들이 있도록 그들을 두 눈을 부라리고 찾아보자.

그리하면 신학교가 신학적이기만 하고 목회적이지 않다는 비난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또 한편으로 신학교가 이 제도를 활용한다면 전보다는 편향적 교수 임용도 줄어들 것이다.

그리고 더욱 더 총회와 긴밀한 신학교를 위해서 함께 기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