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야의 종교개혁이 주는 교훈
< 송영찬 국장 dan7777@dreamwiz.com >
요시야는 26세경인 재위 18년(BC 622)에 대대적인 종교개혁을 단행했다. 이때 마침 성전을 수리하는 가운데 ‘율법책’ 사본이 발견되었다. 요시야는 백성의 장로들을 성전으로 소집하여 율법을 그들에게 읽어주고 여호와 앞에서 율법에 순종하겠다는 엄숙한 언약을 맺게 했다.
이 언약 체결식은 여호수아가 세겜에서 언약갱신의 의식을 치른 사건, 모세가 시내산에서 백성들에게 언약책을 읽어주고 체결한 언약식과 같은 맥락에서 거행되었다. 이처럼 시의적절하게 율법책이 발견됨으로써 요시야의 개혁 작업은 더욱 가속화되었다.
요시야의 개혁으로 스바냐 선지자가 규탄했던 가나안의 바알숭배, 앗수르의 성신(星辰)숭배, 암몬의 밀곰숭배를 비롯해 성전 안에 안치되어 있던 남신 바알을 표상하는 물건들과 여신 아세라상, 태양에게 봉헌된 마상(馬像), 별을 숭배하기 위해 지붕 위에 세운 제단 등이 파괴되었다. 이로써 므낫세 때부터 있었던 갖가지 태양 제의와 성신(星辰) 제의 등을 비롯해 토착화되었던 이방 제의들도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이 종교개혁과 함께 이방신 제사장들을 비롯해 남창, 성창, 이방제의 종사자들이 처형되었다. 동시에 각 사당에서 행해지던 제의적 매음, 힌놈의 골짜기에서 어린이를 제물로 바치던 인신제사 관습, 무당과 마술사를 통해 점을 치던 무속 관습 등이 금지되었다. 나아가 요시야는 북부에 있는 사마리아의 신당들과 벧엘 신전을 파괴하고 그곳의 제사장들을 처형했다. 요시야의 개혁은 멀리 북부 갈릴리까지 진행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시야의 종교개혁에는 한계가 있었다. 곧 언약에 합당한 삶으로 복귀하기보다는 단지 제의적인 활동으로 만족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또한 사회적인 죄악들 역시 개선되지 않고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다.
이런 현상들은 유대 민족이 더 이상 선지자의 말을 들을 수 없을 정도가 되었으며 단지 율법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 말고 그 이상의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는 좌절감을 가져오게 만들 뿐이었다. 그들은 여전히 파멸의 구덩이를 향해 뛰어들고 있었다.
이 교훈은 어쩌면 지금 한국교회의 실상을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제라도 한국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서야 한다. 이 길 만이 교회가 살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