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자녀입니까?
송영찬 국장/ daniel@rpress.or.kr
시편 1편에서는 의인을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시 1:2)로 규정하고 있다. 이것은 복 있는 사람이 언약의 성취
과정에서 주어진 시내산 율법에 참여해야 한다는 정당성을 말하고 있다. 왜냐
하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불러내심으로 아브라함의 언약을 성
취하셨고 그들에게 약속의 땅을 주시기로 하셨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율법
을 순종한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 하나는 그가 아브라함의 언약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며 동시에 언약의 성취로 약속의 기업을 누리고 있을 것
에 대한 것이다.
이 사실은 그가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며 동시에 궁극적으로 완성될 하
나님의 통치를 받고 있음을 상징한다. 이것은 마치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
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시 1:3) 같이 그의 삶
이 여호와의 통치 아래에서 형통하게 될 것을 보장한다. 왜냐하
면 하나님의
통치는 거짓이나 오류가 없어서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형통한 삶을
누리게 될 것이며, 그 최종 열매는 완성된 하나님의 나라에 직접 참여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한다(5
절)는 사실을 확고히 한다. 처음부터 의인이 누리는 복된 상태는 하나님에 의
해 자동적으로 주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의인들은 자신들의 행위에 의
한 직접적인 결과로서 복된 자리에 이르렀음을 확인하였고 증명하였던 것이
다. 그리고 이러한 자리에 초청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의인은 그것을 복으로
여겼던 것이다. 반면에 악인은 처음부터 의인의 길을 싫어한다. 이것은 악인
들이 적극적으로 의인의 길을 거부하고 있음을 말한다. 따라서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그들의 결국은 멸망으로 귀착되고 마는 것이다.
의인의 길과 악인의 길은 이 세상을 이분법으로 구분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누가 하나님의 법을 순종하고 하나님의 통치를 따르는가 하는 문제인
것이다. 그렇다고 이것이 인과응보의 상선벌악(賞善罰惡)을 주장하지는 않는
다. 하나님의 상급
과 심판은 어떤 이유에서라도 인간적인 판단이나 참여로 변
경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시편 기자는 의인의 길과 악인의 길이 다르며
그 두 길은 나무가 열매를 맺음같이 명확하게 그 결실로서 드러나게 된다는
사실을 중시하고 있다. 그리고 이 두 길을 제시하는 것에는 언약에 참여한다
는 것이 얼마나 복된 것인가를 보여주는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그러므로 악한자가 형통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사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위이다. 오히려 악한자가 형통할 것처럼 보이는 세상에서 진정 하나님의 통
치를 기뻐하여 의인의 길을 따르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진정한 복의 자리에
서 있음을 증명하는 확고한 증거이지 않겠는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이 정도
의 확신을 가지고 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확신을 가지고 자신의 삶의 현장
에서 발생하는 어려움을 이겨내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자녀가 가지는 또 다
른 능력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