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 문화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합신 교단이 바른 신학, 바른 교회, 바른 생활이라는 개혁의 이념을 내걸고
출범한지 20년이 되었다. 그만큼 교단이 성장했고 이제는 한국교회사에서 어
엿한 성년으로 그 책임을 수행할 정도로 성숙한 것은 우리의 자랑이자 하나님
의 은혜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역사는 이 정도에서 끝나지 않고 우리에게
좀더 개혁의 박차를 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개혁의 이념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문화적인 사명에 대해 그렇다.
익히 알고 있는 것처럼 교회는 문화의 결정체이다. 예루살렘에 세워진 초대
교회는 그 문화의 고도함으로 인하여 주변 사람들의 부러움을 샀었다(행
3:42-27; 4:32). 특히 바나바와 바울이 사역했던 안디옥 교회는 복음에 기초
한 삶의 특이함으로 말미암아 주변 사람들로부터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움
을 받을 정도였다(행 11:26). 그만큼 교회의 문화는 세속의 문화를 압도하고
있었고 그 고도한 정신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며 개혁해
나갔던 것이다. 바울
사도가 그처럼 로마에 가고자 열망했던 것도 문화의 중심지에 복음을 심어 세
계 각처로 전파되게 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그것은 기독교 문화가 그만큼 고
도한 것이기에 가능했다. 왜냐하면 문화는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과 같은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사를 일일이 들추지 않더라도 개혁의 현장에는 기독교의 가르침과 그 가
르침에 근거한 성도들의 삶이 기초가 되고 있음은 이미 익히 알려진 사실이
다. 그만큼 교회는 고도한 문화의 형태로 서 왔었음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
다. 한국교회 초기에 기독교는 문화의 선봉으로 이 민족을 개혁시켰고 삶의
질을 개선시키는 선구자로서 선망의 대상이었다는 사실 역시 역사가 증명하
고 있다.
바른 생활이라는 개혁 이념은 바로 이러한 문화적 사명 수행과 긴밀한 관계
가 있다. 그 대상이 우리 교단이든 타 교단이든 아니면 타 종교인이든 상관하
지 않고 우리는 고도한 복음의 문화를 현실의 삶 속에서 증거하는 증인으로
존재하고 있음을 개혁이념은 천명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개혁이념은 그 특성
상 문화의 형태로 그 열매를 가름하는 것이
며 그 빛을 보게 되는 것이다. 그
러나 막상 우리 교단이 개혁 이념에 걸맞는 문화를 발전시켜 나가고 있는가
에 대해선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나마 지난 총회에서 총대들이 보여준 모습이 타 교단에 비해 모범적으로 보
여졌다는 것과 합신 교단 소속의 교회와 목회자와 성도들이 타 교단에 비해
건전하고 실력이 있다고 하는 외부의 소리에 작은 위로를 받기도 한다. 그렇
지만 많은 부분에서 우리 교단이 한국교회를 개혁해 나가는 선두에 서 있는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한 예를 들면 지난 한 해 동안 합동측 교단 소속의 목회자들이 출판한 서적
이 40여권에 이른다. 대부분 30-40대 초반인 그들은 각자 자기 영역에서 얻어
진 정보를 모아 책으로 출판한 것이다. 여기에는 신학교수 등 전문가들이 출
판한 책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반면에 우리 교단에서 그러한 경우를 찾아보
기란 쉽지 않다. 요즘 인터넷 싸이트에서도 우리 교단 소속 목회자들이 운영
하는 홈페이지는 타 교단에 비해 극히 미비한 상태인 것만 볼 때에도 우리 교
단이 한국교회에서 문화의 선두 주자라고 말할 수 없다.
가장 복음적이며 개혁적인 신학과 교
회와 생활을 지향하는 우리가 이처럼 문
화에 대해 외면한다면 한국교회의 미래는 결코 밝을 수 없다. 물론 개혁은 자
신의 갱신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갱신은 어떠한 형태로든
문화적인 형식을 통해 드러나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바른 교회와 바른 생활
을 추구하는 개혁이념이 바로 우리 현실의 주변에서 그리고 사회 각 분야에
서 개혁의 열매를 내보여야 한다는 것을 우리들에게 요구하고 있음을 명심해
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