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너무 편안하게 살고 있다.
데이빗 B. 바렛의 보고에 의하면 전 세계에서 현재 2억 내지 2억 5천만 명의
크리스천들이 신앙 때문에 핍박을 당하고 있으며 추가로 4억 명 이상이 사소
한 수준 이상의 종교 자유의 제약 밑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또한 이 보
고서에 따르면 1996년 기준으로 매년 순교하는 성도가 연평균 159,000명에 이
른다고 한다. 그가 정의한 순교란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복음 증거의 상황
에서 인간이 가진 적의의 결과로 인해 조기에 목숨을 잃는 것을 말한다.
전 세계 크리스천의 수는 대략 18억 명, 그 중 서유럽, 북미, 오세아니아 등
비교적 자유 서방 세계의 크리스천 숫자는 대략 25-30%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재적 숫자이고 교회회원으로 출석하는 실질적 숫자는 이보
다 훨씬 적다.
반면에 60%정도가 제3세계에 속해 있으며 이들은 온갖 어려움과 박해와 차별
가운데서도 꾸준히 교회에 출석하거나 신앙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그들이 단
순히 기독교를 종교의 하
나로 생각하고 받아들인다면 그처럼 곤란을 당하며
기독교를 표방할 이유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 대부분은 실질적 크리스천
이다. 따라서 통계상으로 본다면 재적 숫자가 아닌 실제로 교회에 출석하며
교회 회원으로 신앙을 표방하는 실질적 크리스천의 80%를 제3세계 성도가 차
지한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문제는 생활과 환경이 비교적 안정된 서구 교회나 한국 교회의 크리스천들에
게 있다. 이들은 매 주일마다 아무런 제약이나 방해 없이 예배에 참여할 수
있으며 그 누구도 교회에 가는 것을 방해하지 않는다. 이들 크리스천들이 교
회에 가지 않은 이유는 질병이나 사고로 거동이 불편한 것 외에는 순전히 자
신들의 태도 여하에 달려 있다. 물론 그 중에는 가족들과의 종교적 갈등 문제
로 교회에 가지 못하는 사람도 없지는 않지만 그 숫자는 극히 미미할 것이다.
좀더 자세히 그 내면을 살펴보면 자유롭게 교회에 출석할 수 있는 대략 6억
명의 서방 크리스천 중에서 실질적으로 교회에 출석하는 숫자는 2억 명도 되
지 않는다는 셈이다. 반면 어려운 처지에 있는 제3세계 크리스천의 수는 대
략 12억 명. 그 중 아랍권과 중국, 북한
등 6억 명 이상의 크리스천들은 차별
과 냉대 또는 처형을 무릅쓰고라도 신앙을 유지하기 위해 온갖 어려움을 감당
하고 있는 셈이다.
이것은 단순히 통계 수치 그 이상을 우리들에게 시사하고 있다. 적어도 중국
에서는 매주일 2억 이상의 사람들이 감시를 피해가면서 예배에 참여하고 있
다. 반면에 우리나라에서는 1천2백만 명의 크리스천들 중에서 주일 예배에 참
여하는 숫자는 불과 4백만도 되지 않는다.
이런 현상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것은 일제 하에서 일사각오의 신앙을
다짐했던 교회의 전통과 60-70년대의 어려운 경제 형편가운데서도 오직 신앙
으로 살려했던 선배들의 전통을 오늘날의 교회들이 잃어 버렸다는 것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현상은 좀더 평안하고 안락하게 신앙 생활
을 하고 있는 대부분 오늘날 교회들의 공통된 모습이다.
서두에서 말했듯이 전 세계에서 2억 명 이상의 성도들이 매일 직, 간접적인
생명의 위협을 당하면서도 신앙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반면에 아무런 위협
도 없는 우리나라에서는 8백만 명 이상이 이런 저런 사유를 들어 교회 출석
을 회피하고 있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값싸게 예수를 믿어보겠다고 교회에 등록한 신자들에게 문
제가 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그들에 대한 교회의 무관심과 무대책이라는
점이다.
누구나 교회에 출석하겠다고 하면 그 사람에 대한 아무런 점검 없이 무조건
출석 교인으로 받아들이고 마는 것이 일반적인 교회 현실이다. 그렇다고 그들
이 어떤 연고로 인해 출석을 하지 않아도 그다지 관심조차 가지지 않은 것은
더 큰 문제이다.
우린 너무나 편하게 살고 있는 것 같다. 우리가 주일 날 편히 앉아 냉장고 속
의 과일을 꺼내 먹고 있을 때 어느 한 쪽에서는 우리 신앙의 선배들이 그랬
던 것처럼 목숨을 걸고 예배드리는 성도들이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