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선택인가?
송영찬 국장
우리 나라의 정치를 이끌고 갈 국회의원 선거일이 바싹 다가 왔다. 선거를
앞두고 교계에서는 공명선거실천기독교대책위원회를 조직하고 기독교인 후
보자, 유권자들은 불법 선거 운동에 참여하지 말 것을 결의하기도 했다. 특
히 만성적인 지역 감정 배제와 투표 참여 등을 통해 교계가 앞장서서 공명
선거를 이끌어 가자고 강조하고 나섰다.
교계가 공명 선거를 실천하기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는 주장은 예전에도
있었다. 소위 기독교 공명선거 대책 협의회가 발족되는 등 직, 간접적으로
공명선거를 위해 교계가 발벗고 나서기도 했었다. 그렇지만 사람들의 욕심
과 허세 앞에 교계의 목소리는 대부분 수그러들고 말았다. 그래서인지 이
번에도 선거철마다 되풀이되는 명목상의 공명선거 운동으로 끝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들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기독교인이 선거에 임하는
자세를 한 번 되짚어 보아야 할 것이다.
굳이 바울 사도의 말(롬13:1)을 빌리지 않더라도 모든 권세는 하나님으로부
터
난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민심(民心)이 곧 천심(天心)이라는
말도 같은 취지일 것이다. 그렇다면 선거라는 제도를 통해 지도자를 선출
하는 방식은 민심을 대변하는 하나의 방도가 될 것이다.
문제는 민심을 표출함에 있어 부정의 여지가 있다는 점이다. 또는 후보에
대한 판단을 흐리게 함으로써 민심을 왜곡되게 할 수 있다는 약점도 가지
고 있다. 학연이나 지연 또는 금권이나 정권을 내세워 민심을 유린하는 행
위를 드러내 놓고 행하는 것도 그런 약점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유의 약
점은 유권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쉽게 포기할 때 훨씬 강하게 드러나기 마
련이다. 내가 관심 갖지 않아도 아무렇지도 않을 것이라는 무관심이 결국
공명선거를 부정선거로 만드는 원인인 것이다. 해마다 투표율이 저조해지
는 것도 이런 무관심이 팽배해지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그렇다면 문제의 해결은 오히려 단순해진다. 즉 유권자들이 자신의 권리
행사에 대하여 적극성을 가지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기 위해 자존심을 버
려선 안된다. 아무렇게나 내동댕이치는 식으로 권리를 포기하거나 유기할
것이 아니라 단 한 표의 권리라 할지
라도 정정당당하게 행사할 줄 아는 참
여 의식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선거는 그 자체를 통해 천심을 보여주는 제도이다. 그리고 이 제도가 아름
다운 열매를 맺으려면 무엇보다도 유권자들의 참여 의식을 밑거름으로 삼
아야 한다. 몇몇 정치인들의 잔치가 되지 않고 민중의 잔치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이 점은 누누이 강조되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통치를 이 땅에 구현하기 위해 존재하
는 독특한 무리이다.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
이다”라고 수없이 되뇌는 것만으로는 기도가 성취되지 않는다. 기독교가
주술을 용납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선거를 통해 요행
스럽게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은 오산이다.
“어떻게 잘 되겠지”라는 막연한 생각은 결코 기독교인들에게서 찾을 수
없는 일이어야 한다.
선거철마다 변죽만 울리는 것으로 교계가 자기 할 일을 다했다고 치부하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또한 무관심한 태도로 남의 집 불구경하듯이
선거를 맞이하는 기독교인들도 있어선 안될 것이다. 적어도 기독교인들은
하늘의
뜻을 행사한다는 사자(使者)와 같은 자세로 선거에 임해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