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석의 북카페| 하나님의 나그네 된 백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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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에 관한 언어를 몸으로 살아내는 사람들

스탠리 하우어워스 윌리엄 윌리몬|하나님의 나그네 된 백성|복있는사람|2008

서평| 조주석 목사/합신 출판부 실장

“교회 공동체는 윤리 위에 우뚝 서 있어야”

기독교는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는가. 서양의 기독교는 지금 이에 대한 답
을 선명히 제시하지 못해 우왕좌왕하는 식이다. 그 책임의 소재를 이렇게 저
렇게 따질 수 있겠지만 그 일차적 책임을 누구에게 물어야 하는 것인가. 교
회의 신학자들이 아니겠는가. 신학은 교회를 위해 봉사하는 학문인 까닭에 
그렇다.

기독교에 대한 이해 도전받고 있어

기독교는 새로운 삶을 요구한다. 기독교는 초기 시대에 그런 모습으로 존재
했었다. 그런데 모진 박해를 지나 기독교가 국교로 용인된 콘스탄티누스 시
대로부터 상황은 확 바뀌었다. 콘스탄티누스는 사람들이 이교 신앙 대신 기
독교를 자신들의 종교로 가져
야 로마 제국이 잘 굴러가게 할 수 있다고 생각
했다. 이렇게 해서 믿음의 고백 없이 교리의 동의만으로도 교인이 될 수 있
었다. 
이것의 위험은 어디에 있는가. 복음은 우리 자신을 바꾸라고 요구한다. 그런
데 그만 새로운 삶 대신에 이교의 지식에서 기독교의 지식으로 바꾸라고 요
구한 것이다. 다시 말해 존재 자체를 변화시키는 복음을 지적 전환을 요구하
는 것으로 변질시킨 것이다. 글쓴이들은 이러한 ‘콘스탄티누스적 전제’가 기
독교를 삶의 문제에서 지적인 문제로 바꾸어놓았고, 현대의 신학자들도 이 
문제에 깊숙이 관여되어 있다고 비판한다. 
기독교는 구원의 관점에서 보면 크게 두 가지를 말한다. 하나는 복음이요 다
른 하나는 교회다. 복음은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며, 이 구원이 거룩한 삶으
로 이어져서 그것이 사회 형식으로 드러나면 교회가 선다. 이처럼 복음과 교
회는 떼래야 뗄 수가 없다. 
먼저 복음이란 무엇인가. 복음은 역사와 문화를 둘로 가른다. 시간과 질의 
측면에서 그것들을 딱 갈라 한 쪽은 결코 용납되지 않는다. 왜냐면 “하나님
께서 예수의 삶과 가르침, 죽음과 부활에서 이미 우리 문명을 끝내
“셨기 때
문이다. 너희 세상 나라는 이제 끝났다, 너희의 문명도 끝났다, 다만 최후
의 종말만 남겨두었을 뿐이다. 그러니 속히 너희가 속한 세상에서 나와 예수
의 나라로 들어오라고 강권하신다. 이런 복음 메시지야말로 인류에게는 급진
적인 과격한 메시지가 아닐 수 없다.
복음으로 세워지는 교회는 성화의 차원에서 보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즉 “그 누구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고백하는 것
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물을 필요가 없을 정도로, 확실한 신념으로 형성된” 
신앙인 공동체이다. 따라서 “제아무리 세련된 신학 사상이라 해도 하나님에 
관한 언어를 몸으로 살아내는 사람들의 공동체인 교회를 대신할 수 없”는 노
릇이다. 이래도 교회가 세상 단체와 구별되는 존재가 아니라 감히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러면 왜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불신의 눈길을 보내는가. 그 큰 이유는 뭘
까.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우리가 섬기는 그분을 본받는 데 실패했기” 때문
이다. 복음이 요구하는 자기 부인의 삶, 존재 자체가 낮아지는 삶, 그리스도
와 함께 십자가에 죽는 삶을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본서는 구원의 최종 목적지를 “하나님과의 참되고 완전한 교제”라고 
풀어낸다. 이 교제는 사귐이다. 하나님이 나를 깊이 알고 내가 하나님을 아
는 친밀함이다. 그래서 윤리가 필요하다. 그 친밀한 관계는 윤리로 유지되
기 때문이다. 윤리가 실종되면 개인이든 사회든 존립 자체가 위협을 받기 때
문이다. 
산상설교는 예수의 윤리가 무엇인지 잘 보여주는데, 라인홀드 니버가 주장하
듯 영웅적이고 윤리적인 초인들을 대상으로 한 설교가 아니다. 그것은 기독
교 공동체를 세우라고 주신 하나님 나라의 헌장이다. 교회의 성화를 지향하
는 예수의 윤리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의 문제다. 이 공동체 내에
서 우리는 세상의 핍박과 환난에 맞설 수 있고 이 세상을 본받지 아니할 힘
을 얻는다.

하나님과의 참된 교제 회복이 우선

기독교는 나에게 무엇이었는가. 이해의 문제였는가 새로운 삶의 문제였는
가. 본서는 내개 이런 원색적인 질문을 던졌고, 나의 기독교를 다시 되돌아
보는 기회를 갖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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