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석의북카페| 한부선 평전: 가장 한국적인 미국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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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주석의 북카페

한부선 평전: 가장 한국적인 미국 선교사

서평|조주석 실장-합신 출판부 press@hapdong.ac.kr 

박응규 지음, 신국 양장, 도서출판 그리심, 487쪽, 2004년 6월 발행

신앙고백에 충실한 선교사

젊었을 때 해외 선교에 열정을 품었던 적이 있다. 하지만 신자로서의 삶도 변
변치 못하고 소명의 확신도 충실치 못하다는 이유로 도중에 그런 열정은 식
고 말았다. 더 정확히 말하면 개혁신앙을 접한 후 감정에 충실하기보다는 고
백에 충실한 신앙생활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한부선(Bruce F. Hunt, 1903~1992) 선교사에 대해 별
로 아는 것이 없었다. 그저 이름 정도만 알 뿐이었다. 희미한 기억으로는 고
려신학교와 연관을 맺고 활동한 미국 정통장로교 선교회 소속 선교사라는 지
식이 그 전부였다. 그를 직접 접할 기회가 없었다든지 지금처럼 책이나 정보
가 흔했던 시절이 아니
었다는 이유로 물론 나의 옅은 지식을 간단히 덮으려 
할 마음은 없다. 한 가지 짚고 싶은 바는 신앙의 주류에 선 한부선이라는 인
물을 하마터면 이 책소개라는 강제 자리마저 없었더라면 놓칠 뻔했다는 사실
이다.

긴 책을 짬짬이 일주일에 걸쳐 읽고나니 한부선의 삶과 사역, 또 겹쳐 나오
는 100년 장로교회의 역사가 상당히 선명히 그려졌다. 한부선은 미국 북장로
교 선교사인 한위렴(William B. Hunt)의 장남으로 조선의 평양에서 태어났
다. 만 두 살에 어머니를 여위고 황해도 재령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16세
에 미국으로 건너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휘튼대학에 다니면서 중생의 체험
을 하게 된다. 그 후 프린스턴 신학교를 졸업하고 1928년에 한국선교사로 파
송되어 청주에서 선교 사역을 시작한다. 1966년 6월 6일 <기독신문>의 인터
뷰 기사에서 이러한 자신을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애당초 믿음이 없어서 
목사 될 생각은 안했는데 대학 2학년 때 참된 신앙을 얻어 몸 바쳐 일하게 되
었고 고생 많다고 하는 아프리카 선교사로 가기로 지원했더니 선교부에서 한
국으로 파송하여 다시 한국에 왔다.”

한부선 선교사가 한
국 장로교회역사에서 보여준 바는 결코 작은 것이 아니
다. 그는 신앙의 주류에 선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뚜렷이 보여준 인물이다. 일
제 강점기에 교회는 신사참배라는 불화살 앞에 모두 노출된 상태였다. 외국
인 선교사로서 그는 철수하면 그만이었겠지만 그의 믿음의 진가는 여기서 발
휘된다. 그는 만주에서 봉천노회를 중심으로 7개 조항으로 된 ‘장로교인 언
약문서’를 작성하여 교인들로 그 문서에 서명하게 하고 그들과 더불어 신사
참배를 거부함으로써 참 교회를 보존시켜 나가는 일에 앞장선다. 이 신령한 
전투는 당연히 감옥행이었다. 전교회적으로 배교하는 현실 속에서 개인의 차
원이 아닌 교회적 차원에서 참 교회를 보존해 나간 좋은 모범이 아닐 수 없
다.

흑암을 뚫고 해방이 찾아왔다. 그 기쁨은 잠시일 뿐 청산해야 할 과제는 교회
에 태산 같았다. 제27차 총회(1938년)에서 가결한 신사참배 결의로 이미 배교
의 자리로 떨어진 타락한 장로교회였다. 극소수만이 믿음의 순결을 지켰을 뿐
이다. 교회재건과 회개운동이 한상동 목사를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타락한 교
회는 엎드려 권징을 통해 신사참배 행위를 회개하고 다시 
일어서는 자책이 있
어야 했다. 그러나 소수만 이 권징에 응할 뿐 다수가 뻔뻔한 소리로 자신의 
더러움을 가리우자 전교회적인 회개는 일어나지 않았다. 이 중요한 시점에서 
우리는 또 다시 실패한다. 그리고 교권에 눈 먼 지도자들은 적반하장격으로 
교회개혁을 주도하는 사람들을 사갈시하고 또 밀어냈다. 결국 경남지역에서 
일어난 교회쇄신운동은 소수파에 그쳐 한 모퉁이로 밀리고 말았지만, 한부선
은 개혁에 충실하려 한 고려파의 손을 들어주었고 거기에 가담하여 은퇴시까
지 함께 한다.

역사가인 민경배 교수는 이러한 역사를 놓고 메이첸파 선교사들(한부선도 포
함)의 자기의(自己義)를 주장하는 비타협적 태도와 소수의 열등한 자들의 광
기라고 비판한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교회는 교회의 성결을 위해 아무도 
치리할 수 없다는 희한한 답밖에 가질 수 없다. 또한 교회 분열을, 회개를 거
절한 사람들이 아닌 회개를 요구한 사람들에게 돌리는 무리한 논리를 세울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역비판을 한 서영일을 정당한 것으로 지은이는 우리 앞에 
제시한다.

우리는 선교 대국이다. 후일에 한부선 같은 신앙고백에 충실한 
믿음의 주류
에 선 아름다운 한국인 선교사 이야기를 다시 읽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