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석의북카페| 부패한 사회를 개혁한 영국의 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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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한 사회를 개혁한 영국의 양심, 윌버포스

서평|조주석_합신출판부편집 실장 

“기독교 최고의 정치적 가치 실천한 하나닝의 정치가” 

|가트 린, 송준인 옮김, 두란노, 신국판, 300쪽|

옥스퍼드대학출판부에서 나온 <영국사>가 있다. 윌버포스는 이 책에서 간략
히 두 쪽으로 언급되고 만다. 이러한 윌버포스를 가트 린(Garth Lean)은 300
쪽 분량의 방대한 읽을거리로 만들어 낸다. 한때 병으로 요양을 했던 지은이
는 병상에서 윌버포스를 깊이 읽는 시간을 갖게 된다. 이를 계기로 18세기 
중엽에서 19세기 초엽을 살다간 윌버포스를 ‘하나님의 정치가’(God’s 
Politician – 영어 원제목)라고 선언한다. 옥스퍼드대를 졸업한 저널리스트
인 그가 왜 윌버포스를 그렇게 높이 칭한 것일까? 

이 물음은 저자에게도 그리고 우리에게도 큰 의미가 있을 것 같다. 그것은 
이 책의 저술 목적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윌버포스와 그의 친구들이 
그들의 시대 정신을 그렇게 독특하고도 효과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도록 해
준 그들의 자질과 방법을 그려내는 것”이 그 목적이었다. 그들이 보여준 자
질과 방법을 우리로 배우라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 까닭에 지은이는 윌버
포스의 삶을 연대순으로 나열하지 않고 주제 중심으로 기술한다. 그래서 읽
기가 재밌다.

책은 윌버포스 시대의 영국으로부터 시작한다. 이 당시 영국은 세계에서 제
일가는 노예 무역국이었다. 이 노예 무역으로 국가적 부를 창출하던 당당한 
제국주의 영국. 이러한 치부를 1장에서 고스란히 읽을 수 있다. 그가 어렸
을 때, 노예선 선장이었던 존 뉴턴 목사, 우리에게는 “어메이징 그레이스”
로 유명해진 그의 설교와 간증도 직접 들을 수 있었고 또 크게 감명도 받는
다. 하지만 하원의원에 당선되고 정계에 뛰어든 그는 여느 정치가나 다름없
이 젊음을 향락으로 보낸다. 

그의 회심의 방식은 독특하다. 요크셔의 하원에 당선된 다음 얼마 되지 않
아 떠난 두 번의 여행, 이 여행은 각각 4개월씩 걸렸는데, 이 시기에 하나님
께로 돌아온다. 아이작 밀러와 주고받은 깊
은 신앙 토론을 통해서 회개한 것
이다. 자신의 생활을 들여다 볼 때 당분간 공적 생활에서 물러나는 것이 좋
겠다고 생각하나 존 뉴턴 목사를 찾은 다음 마음은 바뀐다. 뉴턴 목사는 그
에게 주님의 교회의 유익을 위해서, 국가의 유익을 위해서 길러주셨으니 공
적 생활에서 떠나지 말라고 당부한다. 이러한 조언에 따라 그는 개인의 성결
과 세계를 위한 헌신 사이에서 성숙한 균형을 갖게 된다. 이것은 기독교의 
기본이지만 매우 신실한 신자라도 자주 무시할 수 있는 원칙이다.

회심 후 2년이 지난 10월 28일의 일기에서 자신의 사명을 이렇게 인식한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내 앞에 두 가지 커다란 목표를 두셨다. 하나는 노
예 무역을 근절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관습을 개혁하는 것이다.” 20년 
간 끊임없이 수고한 결과 마침내 노예 무역은 철폐될 수 있었다. 영국 정치
의 전통 속으로 이타주의가 들어온 것이다. 정치는 원래 성격상 이타적이기 
어렵기 때문에 역사의 획을 긋는 사실이 아닐 수 없다. 그리하여 “정치가 
정직한 사람에게 적합한 존경할 만한 직업”이라는 생각도 영국 사회에 서
게 된다. 이러한 그를 기념하기 
위해 영국 국교회는 최근에 7월 28일을 그
의 날로 정한 것인데 정치인으로는 수백 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윌버포스는 하나님의 정치가다. 지은이는 그에게 왜 이런 화려한 수식어를 
붙인 것인가? 이런 정치가가 또 나오기를 바라는 애틋한 소망을 담은 표현으
로 보인다. 저널리스트라는 속성에서 나온 화려한 수식어는 아닌 것 같다. 
이쯤 되자 단번에 튀어나오는 질문이 있다. 우리의 정치 현실은 왜 이렇게
도 개판인가? 역대 대통령 중에 개신교 신자가 둘이나 나왔고 또 천주교 신
자도 있었다. 국회의원과 장관 중에는 기독교인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것으
로 안다. 그렇다면 한국의 정치 속에 벌써 이타주의가 들어왔어야 하지 않을
까? “이기심에 대한 직접적인 적대감이 기독교 최고의 정치적 가치”라고 
주장한 윌버포스의 지적을 또 곱씹으며 이 글을 접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