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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나단 에드워즈처럼 살 수는 없을까?

<서평l 조주석 실장/합신출판부 press@hapdong.ac.kr>

백금산 편저/신국양장/부흥과개혁사/279면/2003년 12월(개정판)

“넌 누구 좀 닮아라.” 어렸을 때 부모님께로부터 자주 듣던 말이다. 이런 
말을 들으면 금새 귀에 거슬려 부모님께 대들곤 했다. 다른 누구와 비교해
서 닮으라 하는 것이 무척 언짢았기 때문이다. 청소년 시절의 이런 경험은 
누구나 다 가지고 있을 법하다. 좋은 말도 석자리 반이라지만 두 아이를 둔 
부모인 나로서도, 빈도의 차는 있겠지만 그런 말을 또 하고 있다.

조나단 에드워즈처럼 살 수는 없을까. 편저자는 책 제목을 의문형으로 만들
어 우리에게 도전한다. 그가 왜 이런 질문을 한 것인가? 내 생각으론, 이 땅
의 교회가 교인수는 많아도 영적으로 성숙한 개개인은 적다는 판단에서 나
온 것으로 보인다. 이런 현실 인식을 출발로 삼아 에드워즈의 삶을 들여다봄
으로써 
우리도 그처럼 살아보자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은 평전이나 전기
라기보다는 자기경영서에 가깝다. 조나단 에드워즈의 삶을 분석하여 영적 성
숙에 이를 수 있는 원리들을 찾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참으로 특이한, 그리
스도인의 자기 경영서인 것 같다.

영적 성장 원리를 연구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하나는 성경
을 연구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교회사의 영적 거인들을 찾아 그들이 어떻
게 성장해 갔는지 살펴 자기 것으로 삼는 것이다. 교회사에 영적 거인이 많
다. 엄밀성은 다소 떨어지나 호방한 지성을 소유한 어거스틴, 조직적이고 간
결 명료성으로 유명한 칼빈,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깊은 심오성을 가진 에드
워즈…. 이러한 에드워즈를 로이드 존스는 한 폭의 멋진 초상화로 그려낸
다. “청교도들은 알프스 산에 비유하고 루터나 칼빈을 히말라야 산에 비유
한다면, 조나단 에드워즈는 에베레스트 산에 비유하고 싶은 사람”이라 한
다. 에드워즈를 잘 모르는 나로서도 이런 영적 거인을 한번 배워 보고 싶다.

에드워즈에게로 쉽게 들어갈 수 있는 문은 없는가. 그의 자서전과 70개의 결
심문(Resolution)과 일기
를 읽는 것이 그 첩경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이것들
을 무턱대고 읽어댈 수는 없다. 이 책의 구성을 따라 읽고 실천하는 것이 좋
은 방법일 성 싶다. 모두 4부로 엮었지만 크게 보면 둘로 나뉜다. 1부에서
는 에드워즈가 어떻게 해서 영적 거인이 될 수 있었는지를 입체적으로 분석
해 내는데, 이를 토대로 한 것은 2~4부에 실린 그의 자서전과 결심문과 일기
다.

제1부 3장을 보면, 에드워즈가 영적으로 거인이 된 비결이 무엇이었는지 금
방 한눈에 들어온다. 여섯 가지다. 즉 지상 최고의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
고자 했던 사람, 종말의식을 바탕으로 철저히 시간 관리를 한 사람, 자기 자
신 및 세상과 치열한 영적 싸움을 한 사람, 지성과 감정과 의지의 전인적 조
화와 균형을 이룬 사람, 철저하고 지속적인 경건의 습관을 유지한 사람, 통
전적이고 총체적인 거룩을 이룬 사람. 이런 원리들이 에드워즈의 성화의 삶
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비결들이라고 필자는 압축한다.

에드워즈는 18세(1721년)에 놀라운 회심 체험을 한 다음 ‘지상 최고의 그리
스도인이 되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는다. 그후 대략 1여년에 걸쳐 평생 
살아갈 자
신의 자세와 태도를 담은 70가지의 결심문을 작성한다. 이것들은 
그의 인생 점검표였다. 1주일에 한 번씩 반복하여 읽으면서 그의 거룩한 삶
은 심화되어 나갔다. 영적 성장이란 그냥 이루어지는 법은 없다. 말씀과 성
령의 역사로 이어지는 회개와 순종의 결과물이다. 하나님의 주권에 신자가 
반응하는 새창조이다. 

편저자인 백금산 목사는 독서광으로서 ‘평목공’(평생 공부하는 목회자 모
임)을 이끄는 중년의 지도자이다. 그가 어느 날 새벽기도 시간에 조나단 에
드워즈를 생각하며 펑펑 울었다는 그의 애통이 참으로 부럽다. “에드워즈
의 거룩을 추구하는 삶에 비하면 그 동안 나는 너무 짐승처럼 먹고 마셨으
며, 짐승처럼 본능을 따라 살았으며, 짐승처럼 말하고, 짐승처럼 생각하고, 
짐승처럼 살았다는 생각 때문에 울었다”(11쪽). 이런 애통의 바람이 중, 
고, 대, 청년들의 가슴에도 일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