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석의북카페| 솔라 에클레시아 – 프로테스탄트 교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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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라 에클레시아 – 프로테스탄트 교회관

<서평: 조주석 /합신출판부 편집실장 press@hapdong.ac.kr>

존 맥아더 외 지음/돈 키슬러 엮음/조계광 옮김/신국판/278면/생명의말씀
사/2001.1 발행

우리는 어떤 물건에 찍힌 메이커만 보고도 그것이 믿을 만하다 아니다 하는 
것을 금방 가려낸다. 또 고가품이냐 중가품이냐 저가품이냐 하는 것도 알 
수 있다. 그래서 브랜드 이미지를 아주 중시한다. 마크나 메이커는 상품의 
질을 가려내는 하나의 수단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하나요 거룩하며 보편적이요 사도의 가르침에 서 있다. 이것은 교회
의 4대 속성이며 니케아신조가 확정한 것이다. 하지만 교회가 이 네 속성을 
아무리 주장한다 해도 그 교회가 참교회냐 거짓교회냐 하는 것은 쉽게 가려내
기 어렵다. 그래서 16세기 개혁자들은 교회의 표지(marks)로써 그것을 분별
해 낼 수 있다고 하였다. 

돈 키슬러가 엮은 이 책은 
이러한 개신교 노선을 고수한다. 또 필자가 각각 
한 장씩 맡아 기고한 11장으로 구성은 되지만 크게 보면, 교회의 표지를 중
심 주제로 하여 다른 주제들이 서로 연결된 것으로 보인다. 물론 교회론은 
이 문제만 다루지 않고 교회의 정치나 은혜의 수단도 더 다룬다. 

참교회의 표지는 무엇인가? 교회의 일치는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 권징에 해
당하는 죄들은 무엇인가? 교회는 언제 떠날 수 있는가? 이러한 물음들에 대
하여 여러 필자가 한 책에서 대답을 한다. 사실 후자의 세 물음은 첫째 물음
에서 파생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해당 필자들은 연구와 목회 경험을 통해 얻
은 해결책들을 조심스레 제시하고 있다.

참교회란 완전한 교회를 뜻하는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이 둘을 혼동하
면 4세기에 아프리카에서 일어난 도나투스주의 논쟁이나 16세기에 일어난 재
세례파 논쟁 같은 것이 지금도 재현될 수 있다. 그들은 완전한 교회를 주장
하다가 결국 교회를 분열하여 독자 노선을 취했다. 이처럼 참교회와 완전한 
교회를 혼동할 경우 교회 분열은 결코 피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참교회를 가늠할 수 있는 표지란 과연 무
엇인가? 그것은 말씀의 참
된 설교, 성례의 올바른 집행, 권징의 신실한 시행이다(벨기에 신앙고백 29
항). 이 표지로써 참교회와 거짓교회를 구별해 낼 수 있다. 교회가 본질적으
로 더 순수하냐 덜 순수하냐 하는 것으로 참교회와 거짓교회를 구분하는 것
이 아니다. 이것은 질의 정도 차이요 그 다음의 문제이다. 그래서 순수성의 
차이 문제로 교회를 분열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고 한다.

참교회의 표지 중 하나인 말씀의 참된 설교는 아주 중요하다. 그것은 말씀
의 참된 설교가 교회의 일치를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교회의 일
치는 무엇을 근본 토대로 가능한가? 교회는 기독교의 근본 토대인 참된 복음
을 선포해야 한다. 이 복음을 믿는 자들로 구성된 교회들은 교단과 교파를 
초월하여 영적 유기적 일치를 이루며 거룩한 성질을 갖게 되고 보편성을 지님
으로써 하나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직상의 일치를 추구하는 로마가톨릭
교회나 복음을 도외시한 채 교회의 일치를 외치는 WCC 운동과는 그 궤를 달
리 한다. 복음을 토대로 하는 교회의 일치는 획일적이거나 외적 화해만 앞세
우지 않고 다양성 속에서 나타나는 유
기적 영적인 것이다. 이처럼 교회의 속
성 실현과 일치는 말씀의 참된 설교로써 이루어진다. 

여기서 복음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필자의 하나인 R. C. 
스프룰은 “우리 시대가 직면한 신학적 위기는 바로 복음의 위기이다”(205쪽)
라고 진단한다. 이 복음에 관하여는 『복음이란 무엇인가』『그리스도의 십
자가』『신약에 나타난 부활』『부활』이라는 4권의 책을 통해 이미 자세히 
소개한 바 있다. 이 복음으로 죄인이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되고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로 들어간다. 그리고 교회의 성숙과 확장으로 이어진다. 교회의 설
교는 교회를 세우거나 넘어지게도 할 수 있는 중요한 표지이다.

하여, 말씀 전파자가 이 복음을 어설피 알거나 일부만 알거나 피상적으로만 
안다면 교회는 참교회의 표지를 갖기 어렵다. 이 대목에서 우리 교단의 많
은 교회들도 다시 한번 고뇌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교역자라고 하
면 너나나나 할 것 없이 과연 내가 복음을 똑바로 풍부히 깨닫고 그것을 몇 
시간 동안이고 어디서든 전할 수 있겠는지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이런 교
회의 마크는 상품만이 아닌 우리 눈
앞에 보이는 지교회를 두고도 그것이 믿
을 만한지 아닌지 가려지는 한 수단이다. 우리 교단과 교회들이 참교회의 표
지를 풍부히 갖기를 주님께 조용히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