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석의북카페| 신약에 나타난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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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에 나타난 부활

머레이 J. 해리스 지음/ClC/서인선 옮김/신국판/351면/1995.8발행

서평-조주석/합신편집실장

학교 뒷산은 1,2월의 풍경으로 말하면 그윽하다. 그 색깔의 맛이 아주 깊다
고 할까! 안개가 자욱한 날이면 그 맛은 더욱 깊게 배어난다. 이런 즐거움 때
문에 그와 같은 다른 산들에도 매료된다. 하지만 슬픈 마음으로 그 숲을 보노
라면 죽은 거나 별 다름없어 보인다. 한두 개 달린 이파리들은 한 나무의 죽
음을 상징하는 듯 대롱대롱 한다. 그래도 3,4월이 지나고 싱그러운 5월이 오
면 돋아난 새움으로 그런 우려와 걱정과 두려움은 모두 싹 가신다. 고목 같
은 나무에서도 생명은 힘차게 뚫고 나오다.

‘부활’ 하면 금방 떠오르는 우리의 추억은 여의도 광장이다. 부활절이면 수많
은 사람들이 그리로 몰려갔다. 그러던 광장이 군사문화 청산이라는 명분과 함
께 싹 사라지고 말았으니 이제 그 추억도 기념사진 한 장일 
뿐이다. 캄캄한 
새벽부터 부산떨던 부활절의 열심과는 달리 우리의 믿음에 큰 능력과 소망과 
확신을 갖게 한 부활 메시지는 적었던 것 같다. 앞선 열심에 비해 받은 가르
침은 빈약했다. 

이런 아픈 과거를 우리는 고스란히 간직하고 산다. 이제 한달 남짓한 부활절
을 앞에 두고 어떻게 준비할까? 성경을 부지런히 읽을까! 수난절 금식을 할
까!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일상만 쫓아갈까! 

<신약에 나타난 부활>을 시간 내어 읽어보라 권하고 싶다. 이것이 부담스러우
면 더 얇은 책도 있다. <나는 예수의 부활을 믿는다>(G.E. 래드). <부활체의 
본질>(J.A. 스케프). 더 깊이 읽고 싶으면 <부활과 구속>(리챠드 개핀)이라
는 책도 있다. 

너나없이 여가보다는 부활이 더 소중하다는 인식은 다 지니고 있다. 하지만 
시간을 내어 부활에 관한 책 한 권 들기란 그리 만만치 않다. 날마다 보는 아
홉시 뉴스나 드라마 앞에서 시간 죽이기는 쉬어도 책 잡기는 쉽지 않다. 여
가 생활이다 휫트니스다 여행이다 하는 데 들이는 시간은 안 아까워도 책 한 
권 택해 이 3월 한 달 보내자는 데는 선뜻 나서기 어려울 것이다. 부활 신앙
의 실력을 
쌓자는 데도 그럴 것이다. 솔선수범하는 수밖에? 대학 2년생인 우
리 아들한테나 먼저 권해봐야지.

<신약에 나타난 부활>을 좀더 소개하겠다. 이 책은 
(493p. 1990)의 제1부만 번역한 것이다. 제2부는 저자가 부활의 역사성을 반
대하는 노만 가이슬러와 석의학적으로 신학적으로 주고받은 논쟁을 담고 있어
서 2부는 빼고 1부만 번역했노라 역자 서문을 붙였다. 개스크(W.W. Gasque) 
박사는 본서를 가리켜 “복음주의적 시각에서 부활에 관한 성경적 가르침을 가
장 철저하게 또 학적으로 다룬” 책이라고 평한다. 

역서는 모두 3부로 나뉘는데 독자가 이 책을 택해 읽기로 한다면 제2부부터 
시작하기를 권한다. 처음부터 보다가 정작 중요한 2부로 넘어가지도 못한 채 
중도 탈락할까 하는 노파심 때문이다. 이 책에서 한 토막만 소개해 보자. 당
시 유대 문학에 따르면, 여성의 증거는 법정에서 인정도 받지 못했다고 한
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을 최초로 목격한 자는 누구였는가? 여성인 막달
라 마리아였다(요 20:11-18). 이렇게 성경은 세상 방식으로는 가장 설득력 없
는 자의 목격에 부활의 사실성을 의
탁한다. 그뿐인가? 부활하신 예수님은 오
직 신자들에게만 자신을 나타내 보이셨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세상 역
사가는 믿음의 영역에 속하는 부활의 사실성에 대하여 왈가왈부할 아무 자격
도 없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하나님은 부활의 사실성을 오직 신자에게만 의탁
하셨다. 아주 귀한 은혜를 입히신 것이다.

어느 토요일 오전 내내 인터넷을 뒤졌다. 검색해서 찾은 부활에 관한 책은 고
작 10여권 남짓했다. 폐간된 책들도 있었고 남은 책들도 나온 지 5년이 넘는 
폐간 직전의 것이었다. 도서관에나 가야 볼 수 있는 고서로 지정될 형편이
다. 독자는 책을 사는 열심 좀 내야겠고 출판사들은 재번역하고 디자인도 멋
있게 꾸며 독자의 시선을 끌어내야 하겠다. 

“예수의 부활은 구속의 중심이다”고 한 R.B. 개핀 박사의 중요하고도 외로운 
논지가 이 땅에서 다시 드높여졌으면 한다. 그래야 기독교에 새바람이 불 것
이다. 이러한 소망도 공염불로 끝날 공산이 크다는 생각에 그저 씁쓰레 할 뿐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