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과 새해 ‘바보’처럼 맞이하자_박형용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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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과 새해 ‘바보’처럼 맞이하자

 

< 박형용 목사 · 서울성경대학원대학교 총장 >

 

 

“우월감이나 열등감, 신경쓰지 않고 살아가길”

 

 

성탄절은 기쁨과 즐거움의 절기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죄에서부터 구원하기 위해 인간의 몸을 입고 태어나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몸을 입으신 사실을 생각해 보면 참으로 ‘바보’같은 일을 하신 것이다. 동아 새 국어사전의 정의에 의하면 바보는 ‘어리석고 멍청한 사람을 얕잡아 이르는 말’로 정의 되어있다. 예수님의 성육신을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예수님은 ‘어리석고 멍청한’ 일을 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무엇 때문에 ‘종의 형체’를 가지셨는가. 하나님이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셔서 왜 인간의 제약을 받으셔야 했는가(빌 2:6-8). 세상을 말씀으로 창조하실 수 있을 만큼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이 왜 인간의 핍박을 받으셔야 했는가. 성육신의 사건은 인간의 관점에서 볼 때 ‘바보’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런 ‘바보’같은 일을 하면서도 즐거워하고 기뻐하셨다(요 15:11; 17:13). 예수님은 자신의 신분이나 위치를 생각하지 않고 성육신하여 성취하실 일이 귀하고 좋은 일이기 때문에 그냥 좋아하고 기뻐하셨다. 예수님은 손익을 계산하기 위해 주판을 두들기지 않았다. 예수님은 ‘내가 인간의 몸을 입으면 내게 얼마나 유익이 되고 손해는 또 무엇일지’를 따져보지 않았다.

 

예수님은 성육신의 삶을 이어가면서 모진 수모와 고난을 겪으면서도 ‘하나님의 보복적인 분노’를 인간에게 쏟아 붓지 않으셨다. 그는 겸손하게 그의 길을 가셨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겨줄 정도로 겸손하셨고(요 13:1-11), 죄인들이 얼굴에 침을 뱉어도 참으셨고(마 27:30), 견딜 수 없는 고통 중에서도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당장 드러내지 않으셨다.

 

사람은 자기 잘난 맛에 산다는 말이 있다. 물론 이 말은 불신자들에게는 잘 어울리는 말일 것이다. 그런데 교회 내에서도 자신의 잘난 맛에 사는 사람들이 자주 보이곤 한다. 내가 없으면 교회의 일이 잘 처리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내가 좌지우지하지 않으면 교회의 일이 엉망이 될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신자들의 삶은 예수님의 삶을 닮아가는 삶이어야 한다. 사람이 능력이 있어 유용하게 쓰임 받는 것과 예수님처럼 ‘바보’같이 사는 것은 다르다. 예수님처럼 ‘바보’같이 사는 삶은 낮아지는 삶이요, 겸손한 삶이며, 희생의 삶이다. 예수님의 ‘바보’같은 삶은 인간에게 평안을 주셨고, 필요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필요를 채워주어서 많은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는 삶이셨다. 예수님은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이지만 성도들을 위해 ‘바보’처럼 사셨다.

 

우리는 ‘바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바보는 정상적인 생각과 활동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처럼 ‘바보’같이 사는 것은 정상적이고 유익하게 살면서도 ‘바보’처럼 사는 것이다. 바보는 특별한 이유 없이 마냥 웃는다. 바보는 쇠똥이 굴러가도 그냥 즐거워한다. 보통사람에게는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할 것도 바보는 특별하게 생각하고 즐거워한다. 보통사람은 바보의 행동을 보고 염려하지만 바보는 상대방의 염려에 신경 쓰지 않고 그냥 좋아한다.

 

웃음치유연구소 소장의 말이 어린아이는 하루에 300회 이상 웃는데 어른이 되면 하루에 8회 웃는다고 한다. 그리고 그 8회의 웃음 속에 4회는 남을 비아냥거리는 비웃음이라고 한다. 얼마나 우리의 삶에 웃음이 빈약한가. 내가 아는 한 청년은 약간 정신적으로 온전하지 못한 상태에 있다. 그런데 그 청년의 얼굴에는 항상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그에게 염려해야할 문제가 없어서일까. 그렇지 않다. 세상의 모든 일을 자신의 사고의 틀 속에서 보기 때문일 것이다.

 

바보는 손해를 봐도 개의치 않고 좋아한다. 바보는 자신의 이해득실에 민감하지 않다. 우리 사회의 많은 계층의 사람들처럼 바보는 자기에게 돌아올 것을 계산하면서 살지 않는다. 인간은 이해득실을 계산하는데 발이 빠르다. 정치인들도, 경제인들도, 심지어는 성도들까지도 자신들의 이익 보호를 위해 남을 배려하지 않는다.

 

때로 ‘마음을 비웠다’느니, ‘역지사지’(易地思之) 한다느니 말하지만 자기들의 이해득실은 계속 챙기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은 전혀 볼 수 없다. 그러나 ‘바보’같은 삶은 그런 삶이 아니다. 바보는 자신이 잘났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우월감이나 열등감 같은 것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한국교회의 모든 목회자들이 예수님처럼 ‘바보’같은 삶을 산다면 한국교회는 폭발적인 능력을 얻게 될 것이다. 한국교회의 모든 성도들이 예수님처럼 ‘바보 같은 삶’을 닮는다면 우리 사회는 훨씬 더 아름답게 달라지게 될 것이다.

 

한국교회의 모든 직분 자들을 포함한 모든 성도들이 예수님처럼 이해득실을 계산하지 않고 마냥 기뻐하고, 우월감이나 열등감에 매몰되지 않고, 받은 은사를 최대한으로 활용하면서 성탄을 맞이하고 2011년을 맞이했으면 좋겠다.

  

2011년에는 한국교회가 사회의 칭찬과 격려를 받고 정체된 복음전도와 하나님나라 확장에 크게 쓰임 받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