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규칼럼> 인간의 감각과 찬송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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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감각과 찬송의 자세

김영규 목사
·남포교회 협동목사
·뉴욕과학아카데미(NYAS)
·미국과학 진흥협회(AAAS)
·미국화학학회(ACS) 초청회원

“찬송 개혁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으로부터 나와야”

넓은 잔디에 유실수들이 많이 둘러 있는 기숙사에서 상쾌한 이른 아침에 창
가에서 새벽잠을 깨우는 새소리들은 그렇게 기쁠 수 없다. 음이온이 많이 나
오는 울창한 전나무 숲 속에서 깊이 숨쉬면서 맡은 냄새도 그 자체로 상쾌하
다. 역시 산봉우리 가까이 기슭에서 불어오는 부드러운 바람 역시 땀이 약
간 젖은 피부에 그렇게 시원할 수 없다. 

여전히 신비에 쌓인 감각 기능들

그렇게 기쁘고 상쾌하며 시원한 느낌들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는 뇌의 가장 신
비한 부분이다. 즉 시각피질, 청각피질, 후각피질, 미각피질 등 뇌 피질에 
있어서 6층 중 특별한 층에 감각기관들로부터 마지막 도달한 외부 정보들이 
다시 뇌의 다른 영역들의 세포들에게 전달되면서 마지막 뿌려주는 그 정보단

들이 무엇인지 알려진 바가 없다. 
이 칼럼의 글에서 그런 비약적 경계선은 광자가 절대속도의 공간인 전자를 
생산할 때 열리는 전자기력의 두 차원들과 전혀 다른 어떤 차원들의 세계가 
펼쳐지는 경계선일 수 있고, 아니면 육체보다 먼저 창조된 영혼이 보거나 느
끼기 위해서 눈과 귀 등의 감각기관들을 만들고 성장한 뇌의 이런 영역으로
부터 외부정보들이 모아져 물질세계들의 힘의 입자들이 펼치는 차원들과 다
른 차원들을 여는 영혼의 세계의 특별한 정보들로 저장되는 방식일 수 있다
는 가설도 해본 적이 있다. 
그런 특별한 정보이동 이외에 물질세계의 정보들인 고 단백질(장기기억물질)
로 저장되는 일이 동시에 일어날 수 있다. 물론 이 영역의 뇌 세포들이 전기
적 충격이나 암 및 다른 상처로 인하여 손상을 입으면 보지도 못하고 듣지
도 못하며 냄새나 맛을 느끼지도 못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모든 소리도 청각
피질에 도달하여 갑자기 비약적 정보방식으로 상영되는 것으로 끝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영역에서 자연의 소리나 사람의 아름다운 목소리도 아
닌 악기들의 조화로운 소리도 인간에게 너무나 큰 감동을 준다. 문제는 
말들
이 그 대응된 표상들을 재현하면서 감동을 일으키는 신비로운 조화만큼이나 
여러 악기들의 아름다운 조화의 소리가 하나님을 찬양할 수 없겠는가이다. 
칼빈은 이에 대해서 부정적이었다. 다윗의 시편들에 대한 칼빈의 주석에 따
르면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악기들을 사용하는 여부에 대해서, 다른 그림자들
의 경우와 같이 영적 예배와 관련된 지식에 있어서 약하고 초보적인 유대인
들의 율법적 훈련을 위해서 스스로 즐거워하도록 그들에게 옛날 명하였던 모
든 것들이 공통적으로(promiscue) 우리에게 도입될 수는 없다고 하였다. 
개인적 악기 사용은 금지되어 있지 않지만, 공적인 예배에 악기들의 사용은 
특별히 고린도전서 14장에 근거하여 성령의 명백한 명령에 의해서
(manifesto spiritus sancti edicto) 사라졌다고 칼빈은 주장하였다. 그렇
기 때문에 교황주의자들이 그런 유대인들로부터 다른 많은 것들과 함께 악기
사용을 도입한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칼빈은 비판하였다. 
그 대신 하나님의 성호란 분절된 소리에 의해서(articulata voce) 혹은 알려
진 언어로(lingua cognita) 찬양되어야 하는 것이 고유한 것이라고 칼빈은 

생각하였다. 하나님의 사도들로 말미암아 우리들에게 단순한 형태가 추천되
었기 때문에, 오직 공허한 소리로 귀를 가득 채우는 것에 불과한 옛 노래
(cantillatio)로도 노래할 수 없다고 하였다. 
인간의 영혼을 자극하는데 음악이 여러모로 유익하다는 주장에 대해서 칼빈
은 확실히(quidem) 인정하였지만, 하나님의 순수한 예배를 오염시키는 조그
만 부패를 살며시 들어오지 않게 하고 인간으로 하여금 미신에 매이지 않도
록 항상 두려워해야 한다고 경고하였다. 
여기에서 칼빈은 그렇게 판단할만한 기준을 암시해 주고 있다. 즉 인간의 소
리는 확실히 대중에 의해서 이해되지 않을지라도 죽은 모든 기구들보다
(mortuis omnibus organis) 뛰어나다는 판단이다. 여기에서 죽은 모든 기구
들이라고 번역한 것은 ‘죽은’이란 표현 때문에 모든 감각기관들이라고 번
역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즉 고린도전서 14장 7절에 근거하여 최소한 그가 
모든 악기들을 의식하고 쓴 표현이라고 사려할 수 있을 것이다. 
칼빈이 그렇다고 해서 말의 분절된 소리에 대해서만 관심하고 거기에 어떤 
리듬을 넣는 것을 반대하였는가?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칼빈에 
따르면 말
하는 것과 노래하는 것은 멸시될 수 없지만, 마음의 감정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그들이 마음의 깊은 감정으로부터 나오지 않으면, 그것들은 하나님
께 가치나 유익이 없다고 볼뿐이었다.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의 몸의 지체들에 의해서 빛나야 한다고 생각하
였다. 그렇지만, 우리의 마음이 말들의 영적 의미들에 대해서 관심하는 것보
다 우리의 귀가 멜로디에 더 이상 관심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주의해야 할 
부분이라고 하였다. 즉 그런 절제만 있다면 노래하는 것은 가장 거룩하고 환
영할만한 습관(sanctissimum ac saluberrimum institutum)이라고 할 수 있지
만, 감미로움과 다만 귀의 즐거움을 위해서 작곡된 그런 노래들은 높게 하나
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이로부터 칼빈이 강조한 점들이 무
엇인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주후 3세기 초 이후가 아닌 필체로 된 가장 오래된 교회 찬송가의 악
보도 현재도 남아있는 주전 3세기 헬라시대의 악보 방식대로 기록되어 있
다. 그렇지만 그 악보는 시편송도 아닌 놀랍게도 삼위일체 하나님을 노래하
는 경배송이다. 
그렇다면 지금 칼빈이나 우르
시누스 및 낙스와 같은 인물들의 규범적 원리
에 따라 시편송을 다시 회복하지 못하더라도, 어릴 때부터 절대음정으로 잘 
훈련을 받은 자들에 의해서 자연과 악기들의 조화로운 아름다운 소리들로부
터 하나님의 말씀이나 하나님의 지식에 맞는 수많은 거룩한 멜로디의 발견
이 이루어질 때, 찬송가에 대한 개혁이 시도될 수 있을 것이다. 

찬송가에서 하나님 속성 찬양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거룩한 멜로디도 인간에게만 감동을 주는 멜로디일 
수 있다. 오히려 하나님의 명령을 실천하면서 하나님의 속성들을 은택으로 
취득하는 감동이 아마 더 아름답고 거룩한 멜로디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