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규칼럼> 경험을 초월하는 계시에 대한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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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을 초월하는 계시에 대한 이해

김영규 목사
·남포교회 협동목사
·뉴욕과학아카데미(NYAS), 
·미국과학 진흥협회(AAAS), 
·미국화학학회(ACS) 초청회원

“우주는 하나님의 신비한 계시로 가득 차 있어”

기독교는 계시의 종교이다. 과학자들이나 합리적 일반 사람들이 합리적으로 
경험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으며 생각할 수 없는 것이 계시의 체험이다. 

합리적 경험 세계를 
초월하는 계시

문제는 성경 계시가 교회에 주어짐으로써 계시가 종결되었을 때, 성직자들이
나 어떤 개인이 개인적으로 영적인 내용에 대한 체험을 하거나 그런 계시를 
받았다고 해도 그 사실에 대한 객관성이 검증이 되지 않았으면 교회 안에서 
잠잠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체험들이 종종 성경에서 기록된 계
시체험과 같은 객관성이 있는 것처럼 공중 앞에서 간증하는 경우들이 있다. 
성경에서 자기 자신이 스스로의 충분한 검증이나 다른 사람들의 객관적인 검
증에 의해서 그런 계시에 대한 
객관성이 없으면(고전 14:32) 교회 안에서 잠
잠하라는 것은 하나님이 경홀히 여김을 받지 않기 위함이다(고전 14:33). 
하나님의 계시나 영감은 처음부터 그 말씀 자체에 하나님의 속성들과 천상
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도하는 조명의 역사에도 하나
님의 특별섭리가 있기 때문에, 그런 조명의 역사와 계시나 영감이 이루어지
는 역사들과는 분명히 구별이 되어야 할 것이다. 
어떤 이에게 성령의 특별한 역사가 일어나 우리의 일상 용어들이 아닌 특별
한 언어들로 표현된 말씀이 있다면 그런 말들은 반드시 통역이 되어야 하고 
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 특별한 언어들로 표현하는 방언의 역사가 있
다면 모든 역사들에 있어서 성부 하나님이나 성자 하나님과 동등한 본질적 
속성들을 가지신 성령께서 그것에 대한 객관성을 누구나 검증할 수 있도록 
통역하는 은사를 가진 자를 보내실 것은 당연하다. 
교회나 인류는 자신의 모든 과학적 탐구의 역사를 가지고 증명할 수 없는 사
실들을 하나님께서 스스로 검증하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이심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인간처럼 제한적이고 인간의 수준에 맞는 정도의 합리적
인 그런 실
체가 아니시다. 
하나님께서 인간처럼 모세와 친밀하게 말씀하시는 경우에도 인간과 온 우주
를 무로부터 창조하실 때부터 이미 피조물들처럼 그가 친히 친밀하게 보시
고 들으시며 느끼기 위해서(출 4:10-15) 얼마나 큰 신비한 차원들을 우주 안
에 숨겨서 창조하셨는지를 증명하는 예에 불과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아무
리 세속적인 과학자들도 그런 일에 대해서 함부로 말해서는 아니 될 것이
다. 좀 더 엄밀한 과학자라면 자신에 대해서 더 엄밀해야 할 것이다. 
여러 차례 이 칼럼의 글을 통해서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우주 밖에 계
실 수 있고 우리를 보실 수 있으며 우리말을 들으실 수 있으며 그것도 현실
적으로 인간에게 이루어지기 전에 느낄 수 있는지를 합리적으로 설명해 보고
자 했다. 
우리에게 의식적 자아 이외에도 의식적 자아와 전혀 독립적인 면역체계의 자
아나 림프계의 자아 등 다른 자아들이 있다고 해도 뇌의 전체적 기능들로 연
역될 수 있다고 하자. 그러나 뇌로 가는 마지막 정보들이 시각피질이나 청각
피질 및 감각 피질들에게 어떻게 흩어져 그런 그물 망들 자체가 어떻게 세계
를 아름답게 보고 
아름답게 들으며 아름답게 느끼는지는 아무도 밝히지 못하
고 있다. 그 세계는 근원적으로 사회적이며 끊임없이 유전인자들과 대화하
고 외부 정보들과 대화하는 유연성이 그 특징일 뿐이다. 
최근에 Nature 잡지(16 Oct. 2008)에서도 이런 유연성에 초점을 맞추어 현
대 정신질환이나 뇌 전반적 현상의 해법을 찾으려는 특집을 실어서 다행한 
일이다. 거기에서의 스냅스의 유연성이나 수상돌기 척추들(dendritic 
spines)의 기질적 다양한 유연성은 해답이 아니라 그 혼돈 속에 질서가 깊다
는 것을 증명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가 유전인자라고 해도 동물과 비교된 고단백질 구조들에 대한 질서를 가
지고 설명할 뿐, 피코 세계나 아토 세계에서 원소들 사이에 대화하는 그런 
세계들의 신비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아는 바가 없다. 
실제 시냅스의 채널들을 통해서 뇌 세포의 외부나 내부의 정보 단백질들이 
오가는 문이 열리고 닫히며 새로운 정보 단위들을 생산해 내는 소위 사회적 
유연성 뒤에는 전자들을 주고받는 양에 의해서 그 유연성이 결정이 되고 있
다. 그렇다면 전자들을 주고받는 세계는 아토세계(10의 18승 분의 1초의 세
계)인 것이
다. 
지금의 뇌의 단백질들을 읽는 어떤 기기들도 그런 실제적인 세계를 읽어내
지 못하고 있고 읽어내는 기기들을 발명한다고 해도 그렇게 빠르게 변하는 
그물 망에 대한 해독이란 더 어려운 과제로 남아 있는 세계이다. 
분자들을 정지하여 관찰하는 방식은 겨우 인위적으로 분자들을 나노튜브에 
갇히게 하여 관찰할 수밖에 없는데, 그렇게 관찰하는 세계는 실제적 세계가 
전혀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이런 세계를 어떻게 창조하셨는가를 우리에
게 적당하게 설명하신 그 계시가 우리에게 가장 큰 정답일 수 있다는 것이
다. 
아마 물질세계의 힘이나 에너지에 의해서 영향을 받지 않는 고유한 절대가속
도의 세계와 전혀 다르고 더 큰 절대 가속도의 세계인 영혼의 세계가 먼저 
창조되고 그 영혼이 마치 보고 들으며 느끼기 위해서 우리의 뇌와 육체가 있
고, 그 정보 전달의 방향도 영혼을 향하고 있기 때문에 육체와 영혼의 경계
점들이 뇌의 마지막 그물 망들의 유연성으로 해석될 수 있을는지 모른다. 
아마 그런 정보의 방향만이 육체와 영혼 사이의 끈이고 육체의 세계가 갖는 
절대 가속도의 한계 때문에 영혼의 세계를 볼 수 없을 것이
며 뇌에서 영혼으
로 가는 그 정보의 방향이 사라져 분리되면 육체는 지구의 작은 입자들로 해
체되고 영혼만이 우리의 정체성으로 남아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따라 그 항존
성이 결정이 될 것이다(마 10:28). 

하나님의 절대주권만이 절대성 가져

하나님께서 각 자의 영혼을 지옥이나 천국에 살아 있도록 하신 이상, 자신
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그 영혼에게는 다른 사람에게 행한 살인처럼 자살도 
자신에게 부끄러움이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