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된 체험신앙, 이제는 버려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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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된 체험신앙, 이제는 버려야 할 때

 

우리 신자들 중에는 소위 체험신앙 또는 신비적 체험신앙을 갈망하는 이들이 더러 있는 모양이다. 사실 종교는 세인들에게 신비적 체험을 제공하는 통로가 되기도 하지만 과연 기독교 신앙을 그와 같은 저속한 세속적 체험으로 대신할 수 있는지 돌아보아야 할 일이다.

기독교 신자들 중에는 소위 ‘예언기도’에 목이 말라 하거나, 심지어 ‘관상기도’와 같은 이교적 풍습을 수련하는 곳을 찾아다니기도 한다니 안타깝기만 하다. 이것은 마치 점집을 찾아가 알 수도 없는 자신의 운명을 타인의 손에 내맡기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심지어 ‘성령치유집회’나 ‘천국간증집회’와 같은 허무맹랑한 낭설에 수천 명씩 모여 희희낙락거리면서 자신이 마치 성령의 치유나 받은 것처럼, 혹은 천국에나 갔다 온 것처럼 착각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저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우리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놀랍고 신비로운 신적 체험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회심’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로 죄로 죽었던 우리가 다시 살리심을 받았다는 이 회심이야 말로 가장 신비스러운 체험이 아니겠는가.

이런 신자가 이땅에서 경험할 수 있는 가장 놀랍고 신비로운 영적 체험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성찬’이다. 성찬을 통하여 하늘에 계시는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하는 이 놀라운 영적 체험이야말로 우리 신자들에게는 더 없는 은혜가 아닐 수 없다.

때문에 이 두 가지 체험보다 더 놀랍고 신비로운 종교적 체험은 이 세상 어디에서도 결단코 찾을 수 없다. 이 두 가지 영적인 체험은 신비주의자들이 추구하는 비정상적인 체험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다.

회심과 성찬은 신비주의자들이 구하는 신비한 체험을 능가하는 신비로움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신자는 이 두 가지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풍성히 맛볼 수 있다. 그러므로 회심했다 하면서 다른 체험을 더 구하는 자는 아마도 진짜 회심한 자가 아닐 것이다. 성찬을 맛보았으면서도 다른 체험을 더 구하는 자는 성찬을 제대로 맛본 자가 아닐 것이다.

따라서 우리 신자들에게 있어서는 ‘회심’과 ‘성찬’과 같은 영적 체험 이외 더 이상의 신비로운 체험은 없다. 회심과 성찬이야말로 다른 것을 더 구할 필요가 없을 만큼,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운 신적이며 영적인 체험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