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충우돌 살았던 기억들 아직도 선명해”_이재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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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충우돌 살았던 기억들 아직도 선명해”

이재헌 목사_동흥교회

해가 바뀌면서 매년 해 오던 것처럼 새 다이어리를 장만했다. 지난 일 년 동
안 거의 매일 내 손에서 떠나지 않았던 낡은 다이어리를 대신하여 새로운 페
이지와 깔끔함으로 치장한 노트 위에 조심스레 이름을 비롯하여 몇몇 글자
를 적어 넣고서는 앞으로 일 년을 동고동락할 다이어리의 표지를 새삼 만지
며 한 해를 출발한다. 

새 다이어리 보는 심정으로

순식간에 내 삶의 중심부에서 한직(?)으로 물러난 지난해의 낡은 다이어리
를 다시 손에 들었다. 별 생각 없이 한 장 한 장 페이지를 넘기면서 어느 때
는 차근차근 또 어느 때는 서둘러 메모하며 적어 두었던 글들이 눈에 들어온
다. 당시에는 상당히 심각하게 적었던 것 같은 문구도 있고, 또 더러는 멍하
니 앉아서 누군가의 말을 들으며 별 생각 없이 긁적거렸던 문장들도 있다. 
기대와 설렘을 가지고 해야 할 일들을 적어 두었던 페이지도 나온다. 안타까
운 마음, 실망한 
마음으로 어쩔 수 없이 적어 두었던 글들도 있다. 모두가 
지나간 시간들을 차곡차곡 이어오고 있는 일들이다. 
문득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마치 어린 날 적어 두었던 비밀 일기장을 오
랜만에 열어보는 듯한 기분이 든다. 불과 일 년의 짧은 시간들이었음에도 지
나간 시간들이 이처럼 부끄럽게 느껴지는데, 나의 일생이 다한 뒤에 주님 앞
에 섰을 때에는 얼마나 부끄럽고 창피할까? 그 생각을 하는 지금 벌써 그 부
끄러움들이 밀려오는 것 같다. 
한 시골에서 농부 부자가 함께 소를 몰며 밭을 갈고 있었다. 쟁기를 잡고 밭
을 가는 일이 그리 익숙하지 못한 아들은 나름대로는 열심히 밭을 갈았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니 자신이 갈고 지나온 밭고랑이 이리 저리 춤을 추고 있
는 것이 아닌가? 한숨을 쉬고 있는 아들을 보고서 아버지는 빙그레 웃으면
서 아들의 손에서 쟁기를 받아 들고서 말씀하였다. 
“자 이제 내가 하는 것을 잘 보거라. 쟁기를 잡고 밭을 갈 때에는 한 가지 
목표물을 바라보고서 쭉 나가야만 밭고랑이 똑바르게 될 수 있는 것이란
다.” 말씀하신 아버지는 능숙한 솜씨로 소를 몰고 갔다. 역시 아버지가 간 
밭고랑은 아
주 반듯하게 잘 나왔다. 아버지의 시범을 본 아들은 용기를 얻
어 다시 한 번 도전을 한다. 열심히 소를 몰고서 밭을 간 아들, 다시 뒤를 
돌아보고서는 긴 한 숨을 또다시 내쉴 수밖에 없었다. 이전에 갈았던 고랑보
다 더 삐뚤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 말씀대로 했는데 어찌 전 똑바르게 되지 않죠?” 이상하다는 듯 아
들이 물었다. “한 가지 목표물을 정하고서 그것만 보고서 나가라고 했잖
니? 넌 어떤 목표물을 보고서 밭을 갈았었니?” 아버지의 질문에 아들은 큰 
소리로 답했단다. “예, 두 손으로 쟁기를 잘 잡고서 고개를 들어보니 바로 
눈앞에 소 엉덩이가 보이기에 그걸 보면서 나갔습니다.”
바로 그것이 문제였다. 아들은 목표물을 정하긴 했으나 그 목표물 자체가 고
정된 목표물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니 그 결과가 곧게 나오지 않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결과였다. 
또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면서 이제 내가 가야 할 길과 목표점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푯대를 향하여 하나님이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는 
삶(빌 3:14)을 살아가기를 다시 한 번 다짐해 본다. 
어린 나이부터 목회자의 길을 걷는다며 좌충우
돌하며 지나온 자국들이 내가 
선 발자국 뒤로 그 흔적을 남기고 있는 것이 마치 좌우로 춤을 추는 밭고랑
과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막 해를 넘긴 다이어리 한 권을 보면서
도 이처럼 부끄러운 것이 셀 수 없이 많은데, 주님이 들고 계신 지난날의 모
든 기록들은 얼마나 더 부끄럽겠는가.
하지만 십자가의 은혜가 여기에 있지 않은가? 모든 것을 용서하시며 도말하
시겠다는 그 약속이 있기에 또 다시 용기를 내어 새 다이어리를 다시 집어 
들었다. 하루 하루의 빈칸들을 짚으며 해야 할 일들을 적기 시작한다. 

지난날 돌아보며 새용기 내

지난 허물과 부끄러움은 이미 잊으시고 새로운 시간들 속에서 부족한 종을 
통해 받으시기로 계획하시고 이루어 가실 그 일들을 기대하며 엎드려 기도하
는 마음으로 적은 이 글씨들이 조금은 더 성숙하고 하나님 보시기에 조금 
더 완숙한 모습으로 실행되어지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