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규칼럼> 인간 인식 능력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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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인식 능력의 한계

김영규 목사_뉴욕학술원, 남포교회 협동목사

과거에는 누구나 보이는 것, 들리는 것, 따뜻하다는 것 등 그런 지각들을 바
로 직관적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보이는 것’들은 각 가지 광자들의 
파장들에 의해서 영향을 받는 망막에 있는 분자들이 증폭하는 방식으로 그것
에 대응한 정보들을 생산해 내고 수를 셀 수 없는 뉴런들의 촉수들의 마지
막 표면들 사이 대략 15 나노미터 빈 공간을 사이에 두고 그 기능들이 각각 
다른 채널들을 통하여 더 작은 정보들을 전달하는 분자들을 주고받아 60 밀
리 초 이내에 뇌의 첫 시상피질들에 있는 아주 조밀한 뉴런들의 집합체에 뿌
려지면서 계속 뇌의 다른 뉴런들에게 영향을 주며 온 몸에 전달되는 중에 있
는 것에 불과하다. 

직관은 전달 체계 과정의 결과

다른 지각들도 피부들 속에 흩어진 다양한 센서들을 통해서 그리고 어떤 범
위의 온도들에 반응하는 온도감지 섬유들을 통해서 혹은 소리의 일정한 파장
대(15-1600 Hz)의 정보들이 다른 
방식의 정보들로 재생되는 기관을 통해서 
그렇지 않으면 표면 자체가 외부 분자들을 직접 분별하는 쓴맛이나 단맛 채
널들이나 신맛이나 짠맛의 경우 수소이온이나 나트륨 이온을 직접 통과시키
는 채널들에 의해서 뇌로 그 정보가 전달되는 것에 불과하다. 거기에서 자연
의 복잡한 정보들이 우리의 지각들의 센서들에 의해서 증폭되거나 축소되며 
비약이 되고 있다. 
물론 코로 감지하는 냄새의 경우처럼 분별할 수 있는 분자들의 형태들이 천 
개 정도라고 하면 10 억 개의 냄새를 분별하는 뉴런 한 개 당 천 개 정도의 
분자분별 수용체들이 있기 때문에 그런 분별능력이 어마어마하다고 할 수 있
지만, 여전히 분자구조가 같아도 분자 내용이 다르면 냄새를 느끼지 못하거
나 어떤 경우 분자 구조만 같아도 같은 냄새로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공기 중에 떠다니는 분자들을 모두 분별하지 못하고 우리의 코에 의해서 지
나가거나 다른 물질일지라도 같은 냄새로 착각하는 것이다. 
화장품의 향수가 그 좋은 예일 것이다. 그것뿐만 아니라 첫 생명의 계속된 
흐름의 연장으로서 나타난 의식의 흐름 속에 이미 존재하는 지향적 커서가 
자아
나 의지와 같은 주관성을 대신하고 있다. 그런 지향적 커서는 개방적이
고 임의성을 가지고 있지만 환경과의 대화 속에서 지향점이 결정이 되고 결
정들이 그 커서의 임의성의 한계가 되고 있다. 거기로부터 거시세계인 일상
세계가 기원하고 거기해서 생산된 것이 일상용어들이다. 
특별히 만든 게임들을 즐기기 전에 그런 일상용어들이 그것에 대응한 표상들
과 함께 굴러다니는 생각은 특별한 의도 없이 빠져 들어가는 인간의 자연적 
놀이 세계이고 경우에 따라 쉬는 공간들이 되기도 하며 대상들과 거리를 갖
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세상을 다시 조작할 수 있는 기회의 공간이다. 그러
나 그 공간은 헤아릴 수 없는 죄들이 생산되고 세상의 온갖 심리적 병과 부
패들이 다 있는 공간이 되어 왔다. 
우리는 그런 지각들과 공간들을 가지고 본다거나 느낀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
다. 더구나 그것을 가지고 가치나 다른 것의 근거나 원인 혹은 증거로 삶을 
수 없을 것이다. 그것에 의해서 공간이 있고 시간이 있으며 온도나 힘 혹은 
에너지가 있다고 해서도 안 된다. 
창조자 하나님이 그것을 인정하시고 그것을 보존하시며 그 전체를 통해서 친
히 일
하시는 세계로서만 의미가 있을 뿐이다. 피조물 자체가 독립적으로 그
것에 무엇인가를 더하거나 뺄 수 있는 그런 세계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복
을 주시는 세계로서만 의미가 있는 세계이다. 

하나님 안에서는 모든 것이 선을 이뤄

어거스틴은 일찍이 만물을 즐거워해야 하는 것들과 유용해야 하는 것들로 나
눈 일이 있다. 그것에 따라 어떤 것들은 즐거워해야 하는 것이면서 유용해
야 하는 것들도 있다고 하였다. 우리에게 대해서 만물이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속성들에 대해서 가감이 있을 수 없는 하나님에게는 유용해야 
하는 것들만이 있다고 하였다. 
어거스틴에 따라 피조물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창조된 이상 피조물로서 결점
이 있고 그 결점이 있는 이상 그 결점 자체가 죄나 악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창조자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것 자체가 죄요 악이
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죄나 악의 근원이 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하나님은 자신의 선과 관계해서 만물을 유용하시기 때문에 인
간에게 보이는 악이나 죄들도 궁극적으로 선이 되도록 유용하실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런 하나님 자신과 그의 뜻이 결국 교회 곧 그의 사랑하시
는 자들의 불가항력적 은혜의 근거요 보증이며 그 즐거움의 궁극적 대상이라
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깨달음을 초기부터 역사적 개혁교회 고백의 모
체로 삼아 왔다는 점은 역사적으로 자랑할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