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규칼럼> 하나님의 일, 인간의 판단 대상 초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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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일, 인간의 판단 대상 초월해

김영규 목사_뉴욕학술원,남포교회 협동목사

현대시대에 와서 발견된 정보의 개념이 어떻게 시간까지 삼킬 수 있는지를 
필자에 의해서 독자들이 한번 시험해 본 일이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과학
의 역사를 통해서 전기력, 자기력, 강력, 중력 등의 힘의 개념들도 양자의 
개념들에 의해서 어떻게 흡수될 수 있었는지를 확인했다. 물론 양자의 개념
에 의해서 그런 힘들의 개념들이 흡수되었다는 것은 역시 여러 가지 공간들
의 개념들이 흡수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학적 개념들과 본질은 달라

최근에는 그런 양자의 개념들도 파동운동의 개념에 의해서 흡수되어 지는 경
향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파동의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예측한 바가 있다. 
그런데 아직 남아 있는 절대 빈공간의 개념이 근원적 파동의 근원이요 절대
속도의 근원지라고 한다면, 그 때 사람들이 그 공간을 적어도 물질상태로 생
각하지 않더라도 어떤 온도 혹은 어떤 에너지의 스칼라 공간으
로 이해하려
고 해 왔다. 
과연 온도나 에너지란 무엇일까? 일상적인 온도나 에너지의 개념들은 여러 
가지 힘들과 정보의 위상기하학적인 흐름 및 여러 가지 운동 방식들에 의해
서 설명되어 진다. 그래서 앞으로 꿈꾸는 투명물질 공학(metamaterial 
technology)에 의해서 일상적인 온도나 에너지가 어떻게 힘의 파동운동에 의
해서 흡수되거나 죽는지를 보게 될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런 투명물질 
공학에 의해서 시간개념의 원형인 엔트로피 개념들이 흡수될 수 있는지는 미
지수로 남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온도의 개념이나 에너지의 개념들이 사라질 수 있
는 시기에 와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온도나 에너지의 개념으로부터 인간
인자들을 제거하면 그런 개념들이 어느 정도로 사라질 수 있다고 믿는다. 우
리가 뜨겁다고 느끼는 뇌의 정보의 근원형태나 에너지에 대한 표상들을 양자
들의 파동 운동들로 이해할 때, 높은 에너지는 순수히 더 작은 입자들로 쪼
개져 가는 방향으로 이해하고 낮은 에너지는 어떤 입자들의 운동이 없는 방
향으로 생각하여 중력처럼 절대 온도나 에너지 개념들이 사라지게 할 수 있
을는지 모
른다. 
빛의 방출, 흡수 및 산란이 없는 어둠의 물질은 에너지와 어떤 관계에 있는
지 아직 애매하게 남아 있다. 다만 그런 차원에서 창조에서나 섭리에 있어
서 하나님은 여전히 명령의 방식으로 무(無)에서 유(有)로의 비약이 이루어
지도록 역사하시는 방식이 무엇을 의미한지를 겨우 깨닫는 것이다. 그리고 
기초적으로 가정하는 절대운동 혹은 절대속도에 대한 개념들이 우주의 나이
에 절대적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정보의 개념이나 동시성에 대한 문제
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잘 알려진 대로 태양이나 우주의 은하계들의 별들보다 지구가 오래되었다는 
증거가 지구 안에 철보다 큰 질량을 가진 무거운 물질들이 존재한다는 것이
라면, 그런 물질들이 어떻게 어떤 시기에 발생할 수 있었는가에 대한 문제
도 물론 우주의 나이와 우주의 중심이 어디인가에 대한 문제와 관계된다. 
필자는 기하학적 중심개념보다 회로의 개념으로 그 중심의 개념에 대해서 이
해할 것을 제안한 바 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는 한 과학의 이상과 신앙은 
분리될 수 없을 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목회자들과 신학자
들에게 진정한 
과학이나 과거의 좋은 정통적인 신학들에 대해서 많이 알기
를 주문하고 싶다. 
책들을 많이 읽어 남보다 더 많은 정보들을 가진다는 것은 그 만큼 남의 사
상들이나 말들을 도둑질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일
에 정직하기 위해서 가능한 각주를 많이 달아 피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것
을 모른다면 그 만큼 정직하지 못한 것이요 모르는 체로 처음 자기가 말한 
것처럼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십계명에 거짓말하지 말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아는 것만큼 알지 못했을 때, 
하나님만큼 능력들이 없음에도 능력인체 하였을 때, 궁극적으로 보면 그렇
게 분리될 수 없는 그 모든 속성들을 사람이 알지 못했을 그 때에도 거짓말
이 될 수 있다는 의미로도 이해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실체나 본체가 하나라고 이해할 때이든, 또는 성부, 성자 성령이 
세 위격들이 각각 같은 속성들을 가지셨다고 말할 때이든, 의논에 따른 영원
한 작정과 그 집행들로서 창조와 섭리 및 구원의 어떤 역사들이든 모두 하나
님의 본질적 사역으로서 그 위격들이 나누어질 수 없이 영원히 동시적으로 
교통하고 계신다는 것이요 그런 
모든 속성들로 교통하고 계신다는 것이다. 
그런 모든 역사들이 필요하지 않을 만큼 존재와 속성들에 있어서 충분하다
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 모르면 모든 것이 거짓

과거 퓨리탄들인 죤 코튼이나 죤 오웬 등과 같은 자들도 어느 정도 좋은 정
통신학적 내용과 혼합적인 사상들을 가졌음에 불구하고 웨스트민스터 성직자
들과 참된 개혁신학자들의 그런 하나님의 자유성(욥 41: 11; 롬 9:18; 
11:35)에 대해서 도전하여 하나님의 역사들을 본성의 필연성의 개념으로 해
석하였던 실수를 오늘날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이 다시 반복하지 않기를 바라
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