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규칼럼> “자연의 신비,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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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신비,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어”

김영규 목사_뉴욕학술원, 남포교회 협동목사

문자창조 이래에 시간의 개념이 연한과 달 및 날짜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은 
인류의 일상 생활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 오
래 전부터 태양과 달의 운동에 대한 관찰과 그들의 운동과 계절의 변화와 관
계 및 낮과 밤의 주기를 세고 있었다는 것은 그렇게 중요하다. 동시에 그 계
속적 관찰을 생활의 리듬들과 그 변화에 대한 일정한 기준점으로 삼아 계속적
인 변화의 어떤 객관성을 확보하려고 노력했다는 것도 중요한 인류의 문화 유
산이다. 

자연의 객관화 작업 오래 전부터 요구돼

필자에게 알려진 자료로서는 애굽의 경우 처음 그런 흔적을 제4왕조에서 찾
을 수 있다. 스노푸루, 체스, 체프렌 등의 유명한 왕들이 다스렸던 4왕조 이
전의 경우 당시 연대기에 나타난 거의 대부분의 왕들의 명칭들은 호루스 아
하, 호루스 이티 등의 방식으로 신격화되어 표기되었고 가
장 오래된 슈메르 
토판들의 기록방식과 비슷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그 때에는 아직 후대와 같은 연한에 대한 기록이 없다. 4왕조에 들어
서서 체프렌 왕 시대에 연한과 계절의 달, 날짜가 처음 등장하고 그 다음 왕
인 메케리노스 왕 시대의 일부 기록 중에는 한 해를 홍수의 계절인 아하트 계
절, 겨울철인 파라트 계절, 여름철인 소무 계절로 나누어 각 계절에 따라 각
각 4 개월에 각 반차의 제사장의 명단과 그 소속 땅의 수가 열거되어 있는 기
록을 볼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서 어떤 해를 표현할 때 사건 중심으로 “첫 모
든 소들과 가축들의 조사의 해”란 표현도 발견하게 된다. 왕의 치정이 시작
한 사건 중심으로 연한의 수가 세워지는 최초의 경우이다. 
그러나 그들의 이런 시간의 개념에는 4진법과 3진법의 수학적 사고가 성립되
어 있다. 12개월은 달의 자연적 운동에 의존한다고 해도, 그렇게 일찍부터 자
연을 덮는 그런 도식적 사고가 자연의 있는 그대로의 운동을 방해해 왔는지
를 실감할 수 있게 한다. 
컴퓨터의 논리도 2진법이고 우리의 일상 생활은 10진법이 지배하고 있다. 물
리학의 근본 스핀운동들도 있는 그대로의 
운동 이전에 이런 수학적 도식들을 
통해서 읽으려고 하고 있다. 하루를 밤의 경과 낮의 시로 구분하는 헬라-로
마 사회 습관보다 오늘날에는 하루 전체를 24시간으로 나누고 다시 시간 아래
는 60진법이 통용되어 톱니 문화와 같은 기계적 사고 방식이 더 지배하고 있
을 뿐이다. 

현대 개념은 톱니바퀴처럼 물려 있어

고대 애굽보다 더 고대 수메르 문화의 경우, 적어도 주전 3000년 전까지의 
그 모든 토판들에 나타난 근원적 수의 개념들은 다양하다. 일반적으로 상위 
수의 개념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60진법의 특징을 가지고 있으나 1 아래는 
1/2, 1/10로 나누어지고 1 위에는 10진법, 6진법, 10진법, 6진법, 10진법의 
방식으로 그 수가 커져 가고 있다. 
물론 예외적으로 수가 세워지는 경우도 있다. 토지의 경우, 3진법, 10진법, 6
진법이 적용이 되어 있고 곡물의 경우 큰 수의 경우 10진법, 3진법, 6진법이 
적용이 되지만, 적은 양의 경우 5진법이 적용이 되고 있다. 그러나 더 작은 
양의 경우 2진법부터 10진법까지 모두 적용이 되고 있다. 
그러나 시간의 개념들은 한 달과 하루 사이에 7진법이 아닌 10진법에 의한 시
간 개
념이었고 그 다음 3진법이 적용이 되어 한 달의 개념이 있다. 그러나 1
년의 경우, 12개월로 나누는 예도 있고 10개월로 나누는 경우가 있다. 이렇
게 복잡한 도시적 개념들은 고대 사람들이나 현대 사람이나 그렇게 오래된 도
식적 사고에 의해서 얼마나 크게 근원적 판명성의 오류에 빠져 있는지를 확인
할 수 있다. 호킹의 인간 인자가 들어 있는 상상적 시간 개념이나 프리고진
의 엔트로피의 시간 개념 등이 자연 자체를 좀 더 고려한 것일지라도 여전히 
도식적 성격은 그대로 남아 있다. 
칼빈처럼 미신적이고 인간 자체의 오류들에 의해서 자연을 보는 모든 과학적 
활동에 대해서 비판할 필요가 있다. 칼빈의 말대로 엄밀하고 진정한 과학은 
인간에게 유익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와 권세를 찬양하는데 도움이 된
다고 믿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살아 계시기 때문이다. 

과학 작업 통해 하나님 지혜 나타나

그러나 자연적 시간을 지금도 창조하실 수도 있고 없이 하실 수도 있으나, 자
연의 가장 심오한 신비는 여전히 하나님 자신 안에 감추어져 있음을 기억해
야 한다. 우리는 말할 수 있고 생각할 수 있는 것만큼만 말하고 
생각하면 된
다. 그런 태도도 하나님을 앞세우고 그에게 순종으로 이끄는 고삐와 같은 기
능으로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