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발 편하자고 머리를 텅 비우는 어리석음_정창균 목사

0
3

손발 편하자고 머리를 텅 비우는 어리석음

정창균 목사/새하늘교회

지난해 2월 말, 교회 부흥사경회를 시작할 때였습니다. 강사 목사님께 최대한
의 친절을 베풀기 위하여 이것저것을 미리미리 살피고 준비하고 나름대로 애
를 썼습니다. 당일 오후에는 이 지역이 초행이라는 강사 목사님께서 어려움 
없이 교회를 찾아오시도록 약도를 팩스로 보내드리든지 전화로 상세히 오시
는 길을 안내해 드리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뜻밖에 강사 목사님께서는 우
리 교회가 있는 곳이 조흥은행 일산지점인지 탄현지점인지만 확실히 알려달라
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아무것도 다른 것은 필요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초행길 잘 찾아 온 목사님

그리고 약속 시간이 되어 목사님은 정확하게 우리 교회에 도착하여 예배당으
로 올라오셨습니다. 참 신기하였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목사님이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지역의 복잡한 길에 있는 교
회를 그렇게 쉽게 찾아다니는 비결이 있었습니다. 바로 그 목사님 
차에 설치
된 네비게이션이었습니다. 번지수만 입력하든지 아니면 주변 건물만 입력하
면 정확하게 왼쪽으로 돌 것과 오른 쪽으로 돌 것, 직진 할 것을 알려주면서 
게다가 앞으로 몇 킬로가 남았고 몇 분이 남았는지 미리미리 알려주면서 그렇
게 원하는 장소까지 데려다주는 신통망통한 기계가 있었던 것입니다. 
유난히 길눈이 어두워서 자주 골탕을 먹는 저는 그것이 참 부러웠습니다. 
“나도 그거 하나 있으면 참 좋겠네요!” 강사 목사님과의 식탁에서 그냥 한 
마디 하고 지나갔습니다. 
그리고는 두어 달이 지났습니다. 월요일인데 우리 교회 장로님 한 분으로부
터 전화가 왔습니다. 화요일이 제 생일이었는데 장로님들이 생일 선물로 제 
차에 그 신통망통한 기계를 달아주기로 했다고 어느 오디오 센타로 오라는 것
이었습니다. 그래서 얼떨결에 제 차에도 그것을 달았습니다. 
그놈 하는 짓이 하도 신기해서 그것을 실험해본다고 아내와 큰 딸 아이까지 
태우고 이리저리 쏘다녀 보았습니다. 그 기계는 모르는 곳, 모르는 길이 없었
습니다. 일부러 그놈이 알려준 길과 다른 길로 가버리면 즉각 “경로에서 벗
어났습니다”하며 가르쳐 주
었습니다. 그리고는 거기부터 시작하여 다시 다
른 길을 택하여 제가 가고 싶다고 알려준 목적지까지 가는 다른 길을 얼른 찾
아내서 새로 안내를 시작하였습니다. 정말 편하고 좋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놈의 도움을 그렇게 재미있게 받으며 쏘다니던 셋째 날 저는 문득 
두려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른 때 같으면 차를 출발할 때 어디를 통하여 어
떤 길로 어떻게 목적지까지 갈 것인지 지도가 환하게 제 머리 속에 그려지는
데 이제는 도무지 그렇게 할 필요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냥 순간순간 그 기
계가 말하는 대로 로보트처럼 핸들만 돌리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제 머리 속은 점점 텅텅 비어가고 저는 점점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떠올리
는 사람이 아니라 순간순간 기계의 명령만 그대로 이행하면 되는 기계가 되
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 기계를 계속 사용하다간 큰 일 나겠구나!” 
그래서 정말 모르는 초행길을 가는 경우 외에는 이 신통망통한 기계를 꺼놓
고 다니기로 하였습니다. 핸드폰을 사용하기 시작한 이래 모든 전화를 단추하
나로만 눌러서 하게 되는 바람에 머리 속은 때로는 우리 집 전화번호도 기억
이 나지 않는 먹통
이 되어버린 것이 한스러웠는데… 이번에는 모든 상상력이 
마비된 텅 빈 머리통이 되어버릴 뻔한 것입니다.
그러다가 문득 예배 중의 찬송도, 설교 본문도 그 밖의 모든 것도 영상으로 
다 띄워주는 서비스 만점의 어느 큰 교회에서 드렸던 예배가 생각났습니다. 
얼마나 편한지 교인들은 찬송가나 성경을 가지고 다닐 필요도 없고 예배 중
에 찬송, 성경 뒤적이며 찾느라 고생할 필요도 없고, 예배 시간도 단축되
고… 편리한 것이 하나 둘이 아닐 것 같았습니다. 

편리함이 주는 위협 느껴

그러나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결국에는 창세기가 성경의 제일 앞에 있
는지 제일 뒤에 있는지, 설교본문의 앞에는 무슨 말씀이 있고 바로 다음에는 
무슨 말씀이 이어지고 있는지, 자막에 나타난 그 말씀 외에는 아무 것도 알 
수 없는 일회용 신자가 되고 말겠다는 두려운 생각이 들었었습니다. 
편리한 것이 언제나 좋은 것도 아니고 더욱이 언제나 우리에게 유익한 것은 
아닙니다. 영적인 삶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스스로 기억하고 생각하고 상상하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복이자 특권입니
다. ‘네비’ 너무 좋아하지 마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