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북경칼럼> 목사와 장로(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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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와 장로(4)

김북경 총장_에스라성경대학원대학교

목사와 장로의 평준화가 기능상의 통일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각자 받은 은
사대로 일을 하되 서로의 은사를 인정하고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는 뜻이다. 우리의 고질병은 제일주의에 있다. 한국 교회에서는 아직도 목사
가 제일가는 사람으로 본다. 중세의 신부는 모든 학문의 여왕이라고 불리던 
신학을 공부한 성직자였다. 그래서 신부의 직책은 성스러운 영역에 속한 반
면 성도들은 속세의 진흙탕에서 뒹구는 사람들로 여겨졌다. 

성직자 우월주의는 중세 유물

그러나 이렇게 하늘과 땅, 영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 내세와 속세를 구분하
는 이원론은 16세기 종교개혁에 의해서 이미 폐기되었다. 그런데 개혁주의 신
앙을 가졌다는 우리들이 왜 아직도 중세의 이분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가? 그 이유를 세 가지로 생각할 수 있겠다. 
첫째로 구약의 “한나” 신드롬을 들 수 있다. 즉 하나님이 주신 귀한 선물
을 하나님께 바치겠다는 한
나의 서약으로 인해서 사무엘은 하나님의 종이 된
다. 이와 같이 목사들 중에도 어머니의 기도로 하나님의 종이 된 경우가 적
지 않을 것이다. 
둘째로 목사가 되는 것이 최고의 소명이라고 생각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유교
의 “사농공상”이라는 계급의식이 우리 마음속 깊이 뿌리박혀 있기 때문이
다. 이 공식에 따르면 신부와 목사는 선비 계열에 속하게 되고 직업의 특성
상 목사는 사회에서 존경의 대상이 된다는 생각이다. 
셋째 이유는 독일에서 유래한 경건주의 때문일 것이다. 경건주의는 성과 속
을 구분하는 경향이 있는데, 한국의 복음주의는 다분히 경건주의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사상과 분위기 속에서 신학 교육을 받은 목사가 교회에 담임목사로 부
임하면 소위 “성공한 사람”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고난은 이제부터 시작이
다. 교회의 장로들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담임목사가 기득권이 있는 장
로들과 협동목회를 하려면 목회의 광대줄을 타야 한다. 
그러나 목사는 겁낼 필요가 없다. 거기에는 단 한 가지 조건이 있다. 목사가 
죽으면 된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담임목사가 되면 꼭 이루어보겠다는 목회
의 
꿈을 하루아침에 이루려고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 목사와 장로간의 헤게모
니 쟁탈전은 목사가 자신의 목회철학을 성급하게 관철하려는 데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목사(가르치는 장로)가 할 일은 말씀으로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는 것이다. 목
회는 말씀을 충실히 가르칠 때 말씀의 저자이신 성령께서 성도들을 감화시키
시고 인도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목사가 죽어야 한다는 것은 또한 낮은 데로 임해야 한다는 것이다. 치리장로
들을 같은 진정한 동역자인 노회회원으로 인정해야 한다. 목사가 아직도 모
든 면에서 장로들보다 더 낫고 목사 스스로가 전문가라고 주장하면서 “나를 
따르라”고만 한다면 당회의 화평을 유지하기 힘들 것이다. 비록 장로들의 결
정이 비성경적이고 비상식적이라고 하더라도 목사는 장로들이 깨달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이것이 민주정치와 독재정치의 차이점이다. 이제는 더 이상 
치리장로를 목사의 목회철학을 펼치기 위해 필요한 돈이나 대는 자본가로 취
급하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치리장로를 말씀으로 잘 훈련시켜서 목사와 동등
한 위치에서 동역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목사는 많이 알수록 겸손해져야 
하고 기도를 많이 할수록 목소리가 작아져야 
하며 성령이 충만할수록 온유해져야 한다. 필자가 소속한 국제장로교 헌법에
는 목사/장로 장립식 서약에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다. “당신은 목사(혹은 
장로)로서 하나님 말씀 안에서 이 회중에게 순종할 것을 약속합니까?” 

지도자는 먼저 순종할 줄 알아야

이렇게 목사는 회중과 치리장로들의 도움(말씀 안에서의 조언, 책망, 견제, 
격려와 징계)을 받아야 한다. 동시에 노회의 도움도 받아야 한다. 평상시에 
노회의 형제장로들(이웃교회의 장로들)과 긴밀한 관계를 가짐으로써 더 넓은 
의미의 동역목회를 하는 것이 유익하다. 이렇게 함으로써 목사가 실수할 수 
있는 기회를 미리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