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북경칼럼> 폭 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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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 행

김북경 목사/ 에스라성경대학원대학교 총장

요즈음 학생들 간에 퍼져있는 조폭 문제가 있다고 해서 놀랄 일은 아니다. 
폭력은 인류가 타락한 후부터 있었던 것이니까. 가인이 아벨에게 가한 폭력
은 아직도 나의 안에 건재하고 있다. 그래서 폭행이 가해지고 있는 것을 보
고 있노라면 불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낀다. 가인을 미워하는 또 다른 
‘나’를 본다. 

초등학생들에게까지도 조폭문화가 퍼지고 있다는 사실도 놀랄 일이 아니다. 
폭력은 나이와 인종을 초월한 죄성인 것을 우리는 알기 때문이다. 최근 캐나
다에서 한국인 아버지가 아들에게 체벌을 가한 사건이 법적인 문제가 되었다
는 것을 들었다. 영국에서도 초등학교 교사가 한국아이의 멍든 종아리를 보
고 경찰에 고소한 적이 있다. 그 아이의 아버지는 법원에 불려가고 나는 법
원에 가서 한국의 미풍양속(?)을 설명하느라 진땀을 흘린 적이 있다. 판사
는 외국인이라도 사는 곳의 법을 지켜야 한다면서 경고처분으로 사건이 일단
락 되었다. 


녀에게 육체적으로 벌을 주는 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비슷한 풍속이다. 
그러나 아동에 대한 폭행이 자녀교육이라는 명목하에 알게 모르게 자행되고 
있는 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다. 서양에서는 힘없는 아동들의 권리와 복지
를 보호내지는 신장하기 위한 법이 만들어져 있다. 그래서 학교에서나 가정
에서 체벌은 금지되어 있다. 나도 영국에서 아들을 장작 패듯이 때린 적이 
있다. 아내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보고만 있었다. 가인을 보고 있듯이. 말 
안 들어서 그랬다지만 지금 생각하면 무식하고 부끄럽기 짝이 없는 폭행이었
던 것이다. 

우리는 맞고 자란 세대다. 집에서 맞고, 학교에서 맞고, 군대에서 맞았다. 
그런데 요즈음은 더 하는가 보다. 일제의 잔재인가? 군사정부의 버릇인가? 
아니면 우리 안에 ‘폭력’ 유전자가 있는 것일까? 이 악순환의 고리를 어떻
게 끊을 것인가? 우리가 어른들로부터 배웠다면 조상 탓만 할 것이 아니라 
“내 잘못이요” 운동에 가담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내 안에 있는 가인
을 내쫓아야 하지 않을까?

성희롱, 성폭력은 어떤가? 여성에 대한 성적인 폭행 혹은 희롱은 강자로서 
비겁한 행위다
. 여성을 한 아름다운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성 노리개로 보는 
것은 큰 죄가 된다. 여성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고, 지금도 하나님
의 형상을 지니고 있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자는 여자의 몸과 마음
을 존중하고 사랑해야 한다. 그렇지 못할 때는 법으로라도 보호받아야 한
다. 스웨덴에서는 아내에게 강제로 성행위를 했을 때 성폭행죄 혹은 강간죄
에 걸린다고 한다. 대학에서도 성희롱, 성폭행 예방 교육을 시키라고 지시
가 내려왔다. 남녀가 같이 있는 곳이라면 성경대학원이건 교회건 성폭행이 
가능하다는 말일 게다.

여자의 존엄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사람들은 남자다. 화란에서와 같이 공창 
제도를 만들어 여권을 보장해 주지 않는 한(최선은 아니지만 차선책으로) 경
찰만을 탓할 수는 없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남자들 마음 안에 있는 경찰을 
동원해야 한다. 그래서 남자의 야수같은 정욕을 체포해야 한다. 
남자들이 여자에 대한 존엄성을 먼저 회복하고(내적으로), 외적으로는 “사
창가에 안 가기 운동”을 벌여야 한다. 마약을 원하는 사람이 있는 한 마약
공급은 계속될 것이다. 성욕을 혼인관계 내에서만 만족시키
겠다는 강한 의지
가 있어야 사창이 필요 없게 되겠다. 

한국의 남성들이여! 담배피지 말자고 거리에 나서서 외치는 한국 남성들이
여! 일제의 위안부를 위해 보상을 부르짖는 여성들이여! 우리의 누이동생을 
더 이상 미아리로, 청량리로 보내지 않기 운동을 벌이자. 강한 자는 약한 자
를 보호할 책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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