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북경칼럼> 복음과 유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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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유머

김북경 목사/에스라성경대학원대학교 총장

“자신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라”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다시 생각
해 본다. 공주병을 경계하는 말 같기도 하다. 희랍신화의 나르키소스라는 미
동은 샘물 가에서 물에 비췬 자기 얼굴에 만취되어 마냥 드려다 보다가 수선
화로 변했다고 한다. 그래서 수선화는 고개를 항상 떨구고 있나보다. 수선화
의 영어 이름이 나르시서스이고 그래서 공주병을 나르시시즘이라고 한다. 복
음을 깨달은 사람은 더 이상 고개를 숙이고 있지 않다. 더 이상 자기만을 들
여다보고 있지 않는다. 예수 믿는 사람은 하늘을 쳐다보고 또 다른 사람을 
보며 산다. 자기 자신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행
복한가보다. 
복음과 율법은 적대 관계가 아니지만 복음과 율법주의는 원수다. 우리는 복
음을 믿는다고 하지만 율법주의에 빠지기 쉽다. 율법주의는 율법에 얽매어
서 율법의 노예로 산다. 율법주의자는 완전주의(Perfectionism)로 연결되며 
완전주의자는 자기의 잣대로 남
을 비판한다. 그리고 자기가 율법을 어기면 
자학하게 되고 절망에 빠지게 된다. 천주교에서는 절망을 일곱 가지 큰 죄 
중에 하나로 꼽는다. 절망은 자포자기로 이어지는데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불신, 즉 하나님의 죄사함의 능력을 더 이상 믿지 않는다는 표시이기도 하
다. 그래서 기독교인은 자살을 안 한다. 

완전주의자는 자신뿐 아니라 남도 비판한다

자학은 교만에서 비롯된다. 교만은 자기를 다른 사람보다 낫게 여기는 것이
며 하나님 앞에서 자랑거리가 많은 것이다. 이런 사람이 죄를 지면 자기를 
용서 못한다. 하나님이 용서하신다는 것을 이론적으로는 알아도 자존심이 너
무 커서 하나님의 능력이 눈에 안 보이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너무 심각하
게 생각한 결과이다. 
율법주의자는 기쁨이 없다. 왜냐하면 율법 지키기에 정신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 앞에서 율법을 지킴으로 자기를 세워나가는데 바쁘다. 그 뿐 아니라 
자기 율법의 잣대로 남도 감시한다. 그 비판의 눈은 항상 번쩍인다. 이런 바
리새파 정신은 자기를 죽이고 남도 못살게 한다. 이런 삶은 얼마나 고달프겠
는가? 예수 안에서 쉼이 없는 인생이다. 

로이드 존스 목사는 이렇게 말했다. 만약에 당신이 어떤 사람에게 “당신 예
수 믿소?”라고 물었을 때 그 사람이 자신 있게 “아무렴요”라고 대답한다
면 그 사람의 믿음을 의심할 수 도 있다는 것이다. 이 사람은 아직 복음을 
깨닫지 못하고 사람들에게, 특히 목사에게 잘 보이려고 열심히 뛰는 사람일
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의 특징은 기쁨이 없고 복음에 깃들어 있
는 유머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은 어처구니없는 인생에 역전을 일으킨다 

그러나 복음을 진정으로 깨달은 사람은 다음과 같이 대답할 것이다. “예수
를 믿기는 믿는데 나 같은 사람이 예수를 믿게 됐다는 것이 도저히 믿어지지
가 않습니다요. 그저 기적일 뿐이지요.”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진짜일 가능
성이 많다. 이 사람은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에서 유머를 보았다. 도저히 구
제불능의 인생을 역전시켜 놓았으니 말이다. 사라는 임신시켜 주리라는 말
에 어처구니가 없어 웃었고 이 사람은 하나님의 황당한 구원의 방법에 어처
구니가 없어서 웃는다. 이런 사람은 자신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다. 그리고 그의 사전에는 “구제불
능”이라는 단어가 없다. 하나님의 능력
을 믿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