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규칼럼> 이미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 있는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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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 있는 ‘인간’

김영규 목사/ 뉴욕학술원, 남포교회 협동목사

인간이 자신이 만든 장난감이나 로봇에게 자신을 줄려고 한다면, 어떻게 줄 
수 있을까? 우선 인간처럼 같은 형상이나 기능을 가져야 주는 것이 무엇인지
를 알고 손을 내밀어 받을 것이다. 받을 능력이 없다면 아무리 좋은 것을 주
어도 그것은 선물일 수 없다. 
인간은 하나님 앞에 그의 은혜와 선물을 받을 그릇으로 창조되었다. 무로부
터 그의 은혜를 주기 위해서 교통하는 자로 창조된 인간 앞에 우주보다 크신 
하나님 자신이 어떻게 주어질 수 있을까? 하나님 자신을 아무리 축약해서 줄 
수 있더라도 우주 안에 인간에게 지각될 수 있는 형태로 축약되어야 할 것이
다. 하나님에게는 그의 속성들에 있어서 첨가도 없고 잉여도 없다면 그런 축
약이란 불가능하고 축약을 대신하는 자연이나 섭리 안에서의 계속적 은택들
일 것이다.
즉 하나님이 피조물에게 창조자로서 머물면서 피조물에게 자신을 
줄 수 있는 
최선의 방식은 피조물 존재 자체와 그 활동을 모두 하나님의 역사로 이루어지
게 하는 것이다. 그것이 아마 하나님으로서 피조물에게 자신을 주시는 유일
한 방식일 것이다. 문제는 주시는 형식이다. 피조물이 안에서 밖을 보는 자
로, 하나님과 독립적인 방식으로 객관적인 자로, 그 모든 것들을 받는 자로 
있다는 것 자체가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주는 가장 은혜로우신 
형식일 것이다. 

하나님의 선물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

우리 인간이 남에게 주는 방식은 ‘아시모’나 ‘휴보’에서 사용된 모터운동의 
어색함과 비슷하다. 인간의 세포윤리학이나 신경윤리학에서 다루는 생명의 신
비에 대한 기준은 황우석 교수가 이룩한 인간체세포 복제의 기준과 다른 것
과 같다. 결코 과학자들의 연구결과를 과소평가하자는 것이 아니다. 좀 더 양
심이 있는 과학자들이 기초과학 분야의 세계적 경쟁환경을 객관적으로 알리
고 좀 더 자연생명이나 인간생명에 대해서 겸손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미 이 칼럼에서 지적하였듯이 인간 체세포 복제의 실패의 경우에도 외국의 
연구결과물들의 일반적인 수준처럼 
인간체세포복제의 실패 인자들을 발견하는
데 어떤 중요한 초점이 맞추어 있듯이 황우석 교수 성공의 예도 인간체세포복
제 성공의 근원적 인자들을 발견하는데 초점이 맞추어 발표되었다면 더 좋았
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의 논문에서 이 점이 보충되었다면, 노벨상
을 받을 가능성이 높았을 것이다. 

생명체에 대한 근원적 인자 찾기 어려워

문제는 그 인자들이나 동인자들의 발견이 그렇게 용이하지 않다는데 있다. 인
간과 인공로봇 사이의 차이는 인자들의 무한 수와 그런 인자들이 숨어 있는 
차원들의 다양성에 있다. 1950년대부터 인간 뇌의 시상피질에 있어서 시각정
보들이 재생되는 뇌 화면의 구조들이 밝혀지기 시작하였다. 즉 궁극적으로 우
리의 시상에 참여하는 수 천억 개의 뇌 세포들 중에서 2 개 뇌 세포 단위로 
200여 개의 시상 피질 뇌 세포들의 활동에 대한 연구결과에 의해서도 그 복잡
한 화면이 3 차원 화면이라는 것이 밝혀져 있다. 
물론 우리는 거기에 숨어있는 차원들에 대해서 알 수 없다. 의식적 자아를 주
도하는 시상에 대한 그 구조가 그렇게 복잡한데, 림프계 자아나 면역체계상 
자아, 모든 세포 
상 자아 등 의식세계와 독립된 인간의 많은 자아들이 결합되
어 있는 복합계는 더 신비로울 수밖에 없다. 

생명체의 신비에 대한 경이로움 표해야

그러나 그런 세포들의 활동을 넘어 인간의 감성은 더 신비로운 것이다. 우리
의 일상적인 꿈의 세계도 마취제나 니코틴이 기억들을 유발하는 정보전달물질
들을 분자결합에 의해서 신경세포들 사이에 정보전달을 차단하듯이 단순한 물
질적 역학구조로 이해해서는 아니 된다. 우리 몸의 작은 세포들 사이에 드나
드는 항생체도 외부 인자들과 싸울 때 수천의 변형구조들을 가지는 것처럼 우
리 생명을 유지하는 세포들 내에 단백질들은 펨토초 단위로 변형을 이루며 
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우리는 그 변화의 생명활동의 지도가 MRI나 PET 상의 지도처럼 밝혀질 때까
지 그 생명을 존중하고 그 생명체를 다룰 때 조심해야 한다. 단순한 호기심이
나 ‘구더기가 무서워 장을 못 담근다’는 식으로 자연의 신비를 개인 소유화하
는 것은 이웃을 해하는 핵무기처럼 큰 죄일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신비한 형
태로 이미 하나님의 은총을 받고 있는 인간은 받는 것이 없다고 아우성 치기 
전에 
지금 있는 존재 자체로서 감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