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규칼럼>
교회가 인류에게 주는 가치들
김영규목사 /개혁주의성경연구소 소장
많은 혁명과 사고의 전환 그리고 큰 시행착오를 거쳐 인간의 호기심을 극대화
시키고 경제적, 사회적인 모든 힘을 모아 인류는 마침내 화성에 도착했다. 그
렇지만 화성에는 지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웃고 우는 가치가 없다는 것에 새
삼 놀랄 것이다. 반면에 지구와 같은 땅이 있기 전에 우주의 모든 힘들이 축
약되어 말려져 있는 소립자 세계들이 먼저 창조되고 지금 우리가 눈으로 보
고 있는 그런 화성이 있어야 지구의 가치들도 보존된다. 이것이 교회가 간직
하고 있는 진리이다. 한 광자가 발생하여 공간에 에너지로 풀어질 때 우리의
눈은 대상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기뻐한다. 교회는 그런 가치들을 다른 차원
에서 보고 기뻐한다.
다른 차원에서 사물을 보는 교회로부터 흔히 모든 오류들이 극대화된 죄의 현
상과 그 근원의 성격이 지적되고 있다. 그러나 교회와 인류는 우선 ‘지향성
자체 오류’와
‘판명성의 오류’를 주의해야 한다.2차원 공간에 통과된 빛으로
형상화된 컴퓨터의 커서와 같이, 폐쇄된 다른 차원의 공간 화면에 인간 의식
의 자유로운 지향적 초점들이 있다는 것 자체가 인간 오류의 핵심이란 것을
인류는 너무 늦게 깨닫고 있다.
지향점이 추구하는 체계만이 가장 판명하다고 하는 오류가 바로 ‘판명성의 오
류’이다. 과학이든, 예술이든, 문화든 모든 글을 쓰고 말하는 인간은 이 오류
들을 먹고살고 있다. 글 없이는 전달이 불가능하고 표현이 불가능하며 표상
을 하지 못하고 꿈을 꾸지 못하며 상상할 수 없다. 그 만큼 그 오류들은 인간
에게 치명적이고 가장 깊은 오류이다.
괴델이든 튜링이든 또는 좀 더 수학의 한계를 비판하고자 하는 G.J. Chaitin
이든 그들은 먼저 인간논리와 인간수학의 근저를 비판하기 전에 그 오류들을
생각해야 한다. 유전자 지도를 작성하든 진화의 나무가지들을 발견하든 모든
자연을 인간에게 가까운 지식체계로 꿰어 자연을 파괴하는 좀 벌레들이 우리
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바로 우리 자신을 중심한 인식 체계를 가진 문화의 풍토 속에서 그 오
류들을 요리
하여 먹고사는 인간의 언론 매체들과 정치, 경제 매개인들일 수
있다. 인류의 평화를 외치고 정의를 부르짖기 전에 그 오류들을 먼저 주의해
야 한다. 지각의 방향과 편견은 그 오류들로부터 시작하지만 방향이 결정되자
마자 그 오류들은 스스로 감추어 사라지는 의식의 근저에 있는 변신의 원인자
들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말을 들을 때, 눈으로 글을 읽을 때 이미 그런 오류들의 태풍 중심의
고요한 자리에 빨려 들어가 있다. 자신에 대해서 좀 더 엄밀하기를 원하는 종
교인들은 이 오류들에 대해서 특별히 주의해야 한다. 그런 오류들을 주의하
여 보는 것은 순간이지만 그 순간들이 많아질수록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 질
수 있는 거리가 조금씩 단축될 것이다.
순수한 의미에서 고대 애굽의 역사로부터 더 발전된 근대 역사에 이르기까지
이런 오류들로부터 인류가 가장 피해를 입은 내용은 판명한 수학의 강조로부
터 온 피해이다. 수학은 인류가 만들어 놓은 가장 재미있는 놀이 문화이지만
그러나 중력상수, 프랑크 상수, 상수로서의 빛의 속도, 우주 상수 등 자연의
가장 신비한 부분을 상수로 처리함으로써 진리를 감추어 버리는
엄청난 실수
를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여기에 정당성을 주는 것은 판명성의 오류와 지향성의 오류에 인류가 얼마나
깊게 빠져있는가를 증명하는 증거이다. 자연의 숲에 길을 내는 인간 행위는
나노세계에까지 매끈하게 표면 처리하는 공정에서까지 그러한 인간 오류의 극
치들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는 대수학, 유크리트 기하학, 비유크리트 기하
학, 비선형수학(혼돈수학) 등 인류 역사가 낳은 다양한 수학들을 배운다는 것
이 그런 방식으로 인류가 얼마나 실수하고 있는가를 깨우쳐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