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신화다’_이은상 목사

0
5

‘예수는 신화다’

이은상/ 동락교회

‘예수는 신화다’ 라는 책이 번역 출판(동아일보사)되어 한국교회 내에 논란
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한기총에서는 기독교를 비방하는 책을 광고도 하
지말고 판매도 중지하라, 배포된 책을 회수하라고 항의서한을 보내고 이 요구
가 받아들이지 않을 때에는 적극적인 소비자 운동차원에서 대응에 나서겠다
고 했습니다. 이에 반해 주간동아에서는 기독교의 늑장대응을 지적하며 이 문
제를 도올과의 미묘한 갈등으로 해석하려 했습니다. 

한편 국민일보에서는 ‘기독교 진리 왜곡 말라’는 목회자 특별연재를 통하여 
이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국내 유명한 신학자와 목회자로 구성된 기고자들은 
한마디로 이 책은 살아 계신 할아버지를 옆에 두고 ‘우리 할아버지는 신화
다’ 라고 우기는 것에 불과하며 그릇된 잣대로 설득력이 없다는 주장과 함께 
확실한 증거를 가진 예수 그리스도의 실화를 변증했습니다. 

교계의 대응 및 기고를 통해서 
그 책의 오류를 지적하고 기독교 진리를 변증
해준 것은 참 잘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 책
의 정체를 통해서 한국교회가 대응해야 할 자세를 말했으면 하는 점입니다. 
이 책은 교회에게 특히 작금의 한국교회에게 아주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고 봅니다. 교회가 해야할 일은 ‘이 책’에 대한 대응보다 ‘이런 거짓가르
침’에 대한 대응이라 봅니다. 그렇다면 영지주의에 바탕을 둔 두 신비주의자
들의 ‘예수는 신화다’라는 뚱딴지같은 신앙고백 혹은 씨부렁거림들(?)을 보면
서 교회가 대응해야할 일은 무엇일까요? 

첫째로 기독교의 진리를 왜곡하는 자들에 대해서 냉정한 자세를 가져야 한다
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오른뺨을 치면 왼편도 돌려대야 한다’는 산상수훈
의 교훈대로 모든 것을 참아내며 모든 것을 견뎌내려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가 자신을 위해서 참아내는 것과 진리가 공격을 당할 때 처신해야할 것
에 대해 명확하게 구분 짓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즉 우리 자신과 우리 개
인감정에 관한 것은 참아내야만 하지만 그러나 진리에 관한 한 특히 복음의 

질인 예수그리스도에 관해서는 강하게 맞서야 한다는 것입니다(갈1:8, 고전
16:22). 

그런데 우리는 우리 자신에 관해서 억울하거나 나와 다른 의견에 대해서는 고
양이와 개의 관계처럼 강하게 맞서고 반면에 구원이나 하나님의 영광의 본질
을 훼손하는 일에는 소가 닭 보듯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선지자 요한은 철
학과 신비주의로 뒤범벅 하여 그리스도를 폄하하는 일에 대해서는 우뢰의 아
들이 되어 통렬하게 비판하고 나섰습니다(요일2:18이후).
‘찬송가냐 복음성가냐’ 이런 논쟁에서는 서로 양보할 수 있지만 ‘예수가 신화
다’에 대해서는 결코 양보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특히 교인의 숫자에 연
연하여 오로지 관용으로만 일관하려는 모르쇠 교회가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
다. 

둘째로 지금은 교회가 성장보다 기독교교리에 관심을 가질 때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는 숫자를 늘리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다할 수 있는 것처럼 보여집
니다. 교회마다 다양한 성도들의 필요를 이해하고 채워주기 위해서 문턱을 자
꾸 낮추자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적인 교회상이 아닙니다. 그 낮은 문
턱으로 신비주의자들을 
비롯하여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사실과 관계없는 자
들이 스며든다는 말입니다. 

성경은 교회가 어떻게 수를 더 늘려갈 것인가 ‘성장’을 말하기보다 거짓가르
침의 유혹과 고난 속에서도 어떻게 견디며 견고히 설 것인가에 대한 ‘교
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성경은 오히려 교인의 수는 줄어도 순수하게 신앙
을 지키는 ‘남은 자’들을 강조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교리를 통하여 문턱
과 담장을 더욱 더 높임으로 기독교인으로 남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좁은 문
을 통과해야 하는지, 얼마나 많은 것을 포기하고 얻은 영광의 자리인지를 가
르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국교회와 한국축구의 닮은 점이 있다면 그것은 역시 수비불안입니다. 전도
폭발, 사영리, 태신자 등 공격형 교회들은 많으나 바른신학, 바른교회, 바른
생활과 같은 수비형 교회들은 적습니다. 교리 없이 그저 성장만 추구하다 보
면 즉 기독교가 유약하게 세상에 적응하다 보면 ‘예수는 신화다’라는 공격수
에게 골문을 열어주게 되는 댓가를 분명히 치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천국문 
탈락이 오기 전 지금 말세는 개혁운동장에서 진공청소기처
럼 교리로 막강 수
비를 펼칠 때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