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인도하는 묵상칼럼(100)| 말씀 없이도 잘만 살아온 재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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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없이도 잘만 살아온 재앙 요한계시록 1장 3절

< 정창균 목사, 합신 설교학 교수, 남포교회 협동목사 >

 

강단에서 말씀의 회복과 말씀 부흥이 이 시대에 가장 급한 개혁

 

 

한국교회는 지난 수십 년 긴 세월동안 말씀 없이도 교회는 부흥만 잘되고, 말씀 없이도 신자는 잘만 살아지는 세상을 살아왔습니다. 그러면서 그렇게 잘되는 복 받은 한국교회를 세계에 자랑하였습니다.

  

그러나 지내놓고 보니 그것은 복이 아니라, 재앙이었습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그렇게 살아온 대가를 혹독하게 치루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모든 문제의 근본적인 원흉은 한국교회의 말씀이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한국교회의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은 이전에 이미 했던 이야기를 다시 해보려고 합니다.

말씀 이탈 현상을 주도한 가장 대표적인 현장은 다름 아닌 교회의 강단입니다. 사람으로 말하자면 바로 설교자들입니다. 사실 그동안의 설교들은 말씀에 집착하여 신자와 교회의 성경적 정체성을 강조하고 가르치는 일을 소홀히 해왔습니다. 그래서 위로와 격려와 축복과 성공 등 소위 부와 건강의 복음을 선포하는 데 힘을 쏟아왔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교회를 말하면서도 교회의 본질에 관한 성경말씀의 가르침보다는 일과 봉사 성장 등 교회의 기능이나 실용성에 초점을 맞춘 설교에 집중해왔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 와중에 설교는 점점 본문을 이탈한 설교로 변질하게 되었습니다.

신천지 이단의 파장이 이렇게 크게 나타날 수 있는 것은 성경적이고 신학적인 분별을 갖추지 못한 신자가 많아진 현실이 만들어낸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만희 자신도 신천지가 성경에 의한 참된 교회임을 주장하기 위하여 정통교회의 이 점을 비난하며 비집고 들어옵니다.

“요즘의 교회는 모두 사람에 의한 사람을 위한 교회로 변질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는 천국복음을 가르쳐야 하는데도 세상 이야기나 하며 성도의 수를 불리는데 주력하고 있으니 세상 교회가 아니라 하겠습니까?”

이만희는 이 점을 간파하여 성경해석 문제를 자기의 주 무기로 들고 나오면서 자신들이야 말로 성경을 제대로 풀어준다고 속이며 교인들을 미혹합니다. 한국교회는 말씀에 어긋나게 살고 있다는 것이 교회를 향하여 공격자들이 쏘아대는 화살인데, 우리는 그것을 되받아쳐낼 방패인 말씀을 잃어버린 셈입니다.

오랜 세월 성공과 축복과 위로와 격려와 간증, 그리고 우스운 이야기 등을 설교에서 들어온 사람들이 성경을 근거로 한 심오한 가르침이라면서 다가온 내용들을 놓고 그것이 성경적인 것인지, 성경을 제대로 해석하고 있는 것인지, 그리고 그들이 성경을 펴놓고 하는 그 말이 과연 신자나 교회에 대하여 맞게 말하고 있는 것인지 분별을 할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들이 이단의 가르침에 현혹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성경을 설교하고 신자와 교회의 성경적 정체성을 확고하게 해주는 성경적 설교를 회복해야 합니다.

이처럼 우리 시대의 가장 큰 문제는 교회가 어두워진 것이고, 교회가 어두워진 가장 심각한 원인은 강단의 말씀이탈입니다. 이것은 다름 아닌 강단의 변절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책임의 한 가운데 설교자가 있습니다.

설교자는 말씀에 목숨을 거는 사람입니다. 설교자가 말씀을 임의로 바꾸어 말하거나, 말씀 보다 다른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반역입니다. 말씀의 주인이신 하나님에 대한 반역이요, 말씀을 기다리는 회중에 대한 반역이요, 말씀의 사역자로 불려내진 자기 자신에 대한 반역입니다. 설교자의 반역이 오늘 날 강단이 죽은 가장 큰 원인입니다.

그러므로 한국교회와 신자가 다시 살아날 길을 분명합니다. 철저하게 말씀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말씀이탈과 말씀상실의 상황, 강단에서의 말씀의 침묵과 교회에서의 하나님의 침묵이라는 비극적 상황을 벗어나야 합니다. 사실 정체성을 확인하는 근거는 성경말씀입니다.

말씀을 떠난 어디서도 우리는 신자에 대하여, 교회에 대하여 정체성을 확인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과 관계가 깊어지는 가장 확실한 방편은 그의 말씀을 읽고 듣고 알고 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의 첫 마디도 말세를 사는 신자에게 가장 중요하고 가장 가치 있는 복은 계시의 말씀을 읽고 듣고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행하는 자라는 선언으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말씀이탈의 주도적인 역할을 한 곳이 강단이었다는 점을 의식한다면, 말씀으로 돌아가는 일도 강단이 앞장서야 합니다. 이에 대한 가장 큰 책임은 이 시대의 설교자들이 걸머져야 합니다. 성경책은 어디에나 나뒹굴고 있는데, 정작 그 안에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들을 수는 없는 시대를 더 이상 만들지 않아야 합니다.

강단에서의 말씀의 회복과 말씀의 부흥이 이 시대를 사는 우리의 급선무입니다. 동시에 그동안 개인적인 차원에만 집중하여 온 설교에서 신앙공동체를 세우는 차원의 설교로 범위를 넓혀야 합니다. 사실 그동안 우리의 설교나 신앙적 관심은 지나치게 신자들과 하나님의 개인적 관계 문제에 집중되어 왔다는 반성이 필요합니다.

  

구속사의 궁극적 지향점도 하나님과 신자 개인의 차원이 아니라 구속받은 자들이 이루는 신앙공동체를 통한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것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않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