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에 생계가 달렸는데
< 김성한 목사, 은혜교회 >
“바르게 하는 교회라면 온갖 지저분한 것 다 갖다 쓰는 교회와 경쟁할 수는 없어”
직장 생활을 하다가 목회자가 되기 위해서 신학교에 들어가려고 할 때, 솔직히 목회의 현실에 대해서 잘 몰랐었다. 그리고 막상 목회의 현장에 뛰어들어 목회의 현실을 알고 나니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었다. 목회가 곧 가족의 생계와 직결되어 있었다.
한 가정 등록하면 전기세, 두 가정이 등록하면 관리비, 세 가정이 등록하면 월세, 좀 더 부흥하면 생활비가 나오고, 더 부흥하면 좋은 차도 탈 수 있고 자녀 유학도 보낼 수 있다. 교회가 부흥하면 선교사 후원도 하고, 어려운 교회 후원금도 보내줄 수 있고 교단에 이런 저런 기부금도 낼 수 있고, 목사님들의 모임에 나가면 인사도 받고 존경도 받는다. 이것이 다 숫자와 관련된 것이다. 그런데 과연 목사가 숫자에 연연하지 않을 수 있는가?
오늘날 한국 교회의 현실을 보면 기독교 전체 교인 수는 줄고 있는데 그 와중에 교회는 교회끼리 경쟁해야 한다. “저 교회에는 뭐가 있는데 이 교회는 뭐가 없다” 이러면서 교인들이 떠나간다. 저 교회에서 하는데 우리교회에서 안할 수 있는가? 왜 저 교회는 되는데 우리교회는 안되나? 끊임없이 다른 교회 엿보고 기웃거리게 만드는 게 현실이다. 숫자에 생계가 걸린 현실 속에서 목회자의 마음이 진리보다 숫자에 더 끌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어떻게 하면 교회를 좀 부흥시킬 수 있을까 고민하며 이런 저런 프로그램을 기웃거려 보지만 막상 가서 들여다 보면 다 저급한 알미니안에 신비주의에, 아니면 얄팍한 심리학을 이용한 위로 치유 등등, 전부 진리와 거리가 먼 것들 뿐이다.
답답해서 이런 저런 세미나에 가서 강의 들어보면 그 때는 “아 저렇게 하면 교회가 부흥하겠구나” 생각이 들다가도 집에 돌아와서 성경을 펴니 하나님의 말씀은 그것이 아니다. 성경을 펴니 우리가 외쳐야 할 생명을 살리는 하나님의 말씀은 그것이 아니더라. 이 세상에 성경의 진리가 아닌 것들로 교회를 부흥시켜 준다는 프로그램들이 넘쳐나고 실제로 그런 교회는 숫자가 증가하니 목회자의 시름은 깊어만 간다. 남들 다 하는데 우리만 안할 수 있나?
좁은 길에 사람이 많겠으며, 목회자가 좁은 길을 가면 그 교회에 교인들이 몰려들겠는가? 하나님이 붙드시는 목사님들을 그래서 보면 더욱 귀하다는 생각이 든다. “주님, 오늘도 주님의 말씀만 전하겠나이다” 다짐하시는 분들을 보면서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느낀다.
목회에 가족의 생계가 걸려 있으니 그 마음속에는 얼마나 많은 생각들이 지나갈까. “큰 아이 등록금을 못 내서 휴학해야 하나, 월세가 밀리고 생활비도 끊어지고 노회비 밀리면 어쩌나..” 그래도 허튼 것에 눈길조차 주지 않으며 소명을 감당하겠다고 다짐하시는 목사님들을 보면 눈물이 난다.
바르게 하자고 시작한 우리 교단이 이거 저거 다 하는 교단과 숫자로 비교가 되겠는가? 바르게 하는 교회가 온갖 지저분한 것 다 갖다 쓰는 교회와 경쟁이 되겠는가? 그래서 우리 교단이 참 귀하다는 생각을 한다. 하나님께서 이 좁은 길을 함께 하도록 주신 동역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위로를 얻는다.
구멍 난 속옷을 해어진 양복 속에 감추고,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만을 전하겠다고 강단에 서는 저 담대함은 주님이 주신 것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그러니 우리 속에서 바르게 하자고 외치는 자들의 목소리를 귀하게 여기고 귀담아 들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