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복을 입은 무당_김수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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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복을 입은 무당

 

< 김수환 목사, 군포예손교회 >

 

“요즘 강단은 만수무강, 만사형통, 성공과 출세의 외침만 가득해”

 

 

어렸을 적에 어머니는 원인을 알 수 없는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셨고, 그때마다 무당을 불러와 밤새 굿을 하곤 하셨다. 당시 굿 값으로 어느 정도의 사례를 했는지 알 수 없지만 무당은 어머니의 무병장수와 우리가정의 복을 위하여 자신을 돌보지 않고 혼신을 다하여 밤새도록 굿을 해 주었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무당은 귀신의 비위를 맞추고 마음을 달래어 사람들에게서 재앙들을 떠나게 하고 번영과 복이 임하길 빌어 주는 것이다. 인간의 영혼과 내세, 그리고 그 인간의 존재와 그 본질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사람들의 성품이나 인격의 변화에 대해서도 역시 관심을 갖지 않는다. 오직 우리 눈앞에 닥쳐진 현상적인 문제 해결에만 급급할 뿐이다.

 

그러기에 집안에 우환, 질고가 없거나 사업 등에 문제가 없으면 굿판을 벌일 하등의 이유도 없고, 무당 역시도 할 일을 잃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무당에게 물질적이고 현세적인 그 이상의 것들을 기대하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인 것이다.

 

그러나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오늘날 우리 교회 예배와 강단의 현실이 무당의 굿판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는 사실이다. 오직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고 성공하고 출세하는 일밖에 없는 듯하다.

 

기독교신앙의 핵심인 ‘주님과 함께 죽고 주님과 함께 산다’는 십자가는 본연의 의미를 상실한 채 건물 한편에 그냥 슬프게 매달려 있다. 하나님 나라에 관한 소망은 현실주의에 묻혀버린 지 이미 오래이며, 장차 하나님의 유업을 물려받을 자로써 주님과 같은 인격으로의 변화는 가뭄에 콩 나기만큼이나 들어보기 힘든 실정이다.

 

청중들의 필요를 외면하면 교인들이 떠나갈까 하는 염려 때문일까? 요즘 교회 안에는 온통 사람들의 요구, 사람들의 필요들로만 가득 차 있을 뿐 하나님의 필요, 주님의 필요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오직 만수무강, 만사형통, 성공과 출세의 외침뿐이다. 청중들은 끊임없이 이 구호를 외쳐대고 목사는 이 요구에 화답하기에 마냥 바쁘다.

 

교회의 예배와 설교에서 우리가 요구하고 답해야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목사를 가리켜 양복을 입은 무당이라고 한다면 무엇이라 항변할 수 있을까? 우리는 예수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단지 그가 갖고 있는 능력만을 필요로 하고, 예수 십자가의 구속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오직 그가 갖고 있는 복만을 필요로 하는 이상한 기복교(基福敎)가 되어 버리지 않았는가?

 

교회는 세상 것을 더 움켜쥐고, 더 얻어내기 위해서 하나님을 졸라대는 종교가 아니다. 오히려 육신(옛 사람)을 죽이고, 버리고, 부인하는 것을 훈련하고 연습하는 종교이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는 이루어질 수도 없고, 영원히 나의 것이 될 수도 없다. 그럼에도 오늘날 교회들은 오직 세상의 소원을 성취하고, 육신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열중하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해 구별된 교회당을 무당의 굿판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우리 목회자들은 채워 달라는 옛 아담에 속한 사람들의 끝없는 욕망에 놀아나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 옛 사람의 욕망의 물줄기들을 돌려 놓아야한다. 즉, 자아를 부인하고 육체를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을 가르치고 강건해야 한다.

 

목사라면 보이는 현 세상의 노예가 아니라 장차 오게 될 영원한 내세에 소망을 갖게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양복을 입은 강단의 무당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