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_변세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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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 변세권 목사, 온유한교회, 총회부회의록서기 >

 

 

“곳간열쇠 내주겠다는 각오 없다면 시작하지 말아야”

 

 

올 가을은 따뜻하고 길어서 좋다. 일찍 떨어진 낙엽들이 어디로 가야할지를 몰라 서성거리고 있다. 오늘따라 저 하늘도 높고 푸르기만 하다. 이내 어두움이 몰려오고 밤하늘의 별을 보며 언젠가는 돌아갈 본향이 있음을 바라보게 된다.

 

“아, 머지않아 눈 한 번 깜박이면 주님 앞에 있겠구나!” 생각하니 인생은 무엇을 하며 살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살았는가가 더 중요하게 여겨진다.

 

개인적으로 살아온 지난날의 짧은 시간들을 살펴보니 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명제 때문에 일어나는 문제들에 대해서 부정하고 거부하고 저항한 시간들이 많았던 것 같다. 배경이나 학문이나 시험에서 정통이나 주류측 입장에 서지 못하고 거의 비주류적인 환경과 인생을 살다보니 그만큼 갈등과 고민과 비판이 더 많았던 것 같다. 그러는 과정에서 믿음이 더 생겼다.

 

금번에 부족함이 많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총회임원에 보궐로 선출되었다. 내 인생은 말 그대로 보궐 인생이다. 하여튼 단 번에 뭐가 되는 걸 못 봤다. 그러다 보니 대인 관계에서 저자세를 보일 때가 있고, 열등감이 내재되어 있다보니 나를 조금 더 근사하게 포장하려는 모습들도 나온다.

 

그래서 어떤 일을 하다보면 생각이나 결정이 빠르고 이런 것에 또한 절망과 낙심도 빠른 편이다. 그러면서 감사하게도 이런 차원에서 내가 할 줄 아는 게 거의 없다보니 인생이나 신앙에서 편한 마음으로 감사하며 겸손한 법을 배우게 되었다.

 

어차피 은혜와 긍휼을 입은 인생이니 재주있는 사람이 되는 것은 멀리하기로 하고 오늘 하루의 현실을 신앙으로 살 뿐이라고 생각해왔다. 왜냐하면 신앙의 고귀한 경지라는 것은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 생각보다 인생은 훨씬 복잡했다.

 

거기에는 인간에 대한 이해, 인생에 대한 이해, 사람의 각기 다른 것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그 모두의 다양함을 풍성하고 아름답게 만드시는 하나님의 지혜의 부요하심과 영광의 끝없음을 아는 그런 지식이 동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은 무엇인가? 역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원을 베푸시고 무엇을 요구하시며, 무엇을 만들려고 하시는가? 등등에 대한 전체적이고 종합적인 신앙을 가지고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결단이 때때로 있어야 한다.

 

지난 총회에서 고신측에서 교단 합동 제의가 들어왔다. 영광스러운 일이고 감사한 일이다. 하나님이 우리 교단을 많이 사랑하시는 것 같다. 그러나 신중하게 고민하며 풀어가야 할 문제다. 마치 무슨 일이 다 되는 것 같이 서두르는 분위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의 마음과 십자가의 정신을 갖지 않으면 옳은 일을 할 때도, 가장 신앙적인 일을 할 때마저도 우리는 항상 잘못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라는 말은 바르게 다스리는 것을 말한다. 그렇게 볼 때 사실 세상에서 제일 멋있는 것이 정치인데 그런 정치를 사람들이 추하게 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고신교단은 60년이나 되었고 우리는 30년 밖에 안되었다. 그런 면에서는 혹시 우리가 깨끗할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정치를 더욱 신중하게 해야 한다. 반면에 진실하다는 장점 외에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교단일 수도 있다.

 

형식은 성의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것이 되지 않으면 일이 또 애매하게 된다. 진심은 무형이기 때문에 입는 것이 성의인 것이 있고 벗는 것이 진심인 경우가 있다. 어떤 일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행여라도 선배 세대는 ‘인생 다 살아보니 그거 별 것 아니더라’며 분열의 책임에 대한 명분론으로 끌고 갈 일도 아니고, 후배 세대는 ‘이제와서 자식들을 낳아만 놓고 정체성도 없이 그냥 가시기만 하면 어떡합니까?’라는 세대 분리가 되어서도 안 된다.

 

사람이 살다보면 때로는 분리를 책임 맡은 채로 한 시대를 살 수 있고, 또 그때 형편이 주류로 살아야 할 성격의 책임이 주어진다면 주류로도 살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중요하지 않겠는가?

 

예전에 신복윤 목사님께서 ‘무슨 큰 일을 할 때 곳간의 키를 내주겠다는 각오와 자세가 없다면 아예 어떤 일도 시작하면 안 된다’는 말씀을 하셨던 것이 생각이 난다. 주류든 비주류든 다 필요하고 소중하다. 화려한 주류도 잘 해야 되지만 감당하기 힘든 비주류도 잘해야 된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느 쪽에 서게 되더라도 우리가 있음으로 누군가 위로를 받고 유익을 얻으며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인가를 생각하고 판단하며 살아가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