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 하나님의 일그러진 얼굴
이문식 목사_경기중노회장, 산울교회
젊은 신학도 시절에 독일에서 출판된 유명한 교회사 책을 접하게 되었을 때
에 그 파격적인 제목에 깜짝 놀란 적이 있다. ‘교회-하나님의 일그러진 얼
굴’이라는 너무 인상적인 제목은 그 후로 교회를 깊이 묵상하게 될 때마다
자주 떠오르는 타이틀이 되었다.
교회는 아직 미완성된 작품
교회는 하나님의 얼굴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죄와 탐욕으로 말미암아 2000
년 역사 속에서 너무도 참혹하게 일그러진 얼굴이다. 얼마 전 TV에서 루게릭
병으로 고통당하는 저명한 우주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의 일그러진 얼굴
을 본 적이 있다. 그 얼굴 속에서 스티븐 호킹 박사의 내면의 아름다움을 찾
아내기란 사실 쉽지 않다.
마찬가지로 이 참혹한 교회의 일그러짐에 우리의 시선이 머물 때마다 우리
는 견딜 수 없는 아픔과 당혹을 느끼며 우리의 고개를 선뜻 돌리고 만다. 오
늘날에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교회의 일그러짐 앞에
서 깊은 상처를 받고 환
멸 속에서 교회를 떠나 방황한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수없이 되뇌이는 질
문은 ‘교회란 과연 무엇인가’라고 하는 질문이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를 향하여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엡 2:22)고 하였
다. 이때 사도바울은 진행형 동사를 쓰고 있다. 즉, 지어진 것이 아니라 지
어져가고 있는 공동체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교회는 공사 중이다. 곳곳에 못이 튀어나와 있고 거친 바닥과 벽
들 그리고 쉽게 무너져 내릴 듯한 천장들, 위험한 전기줄들이 여기저기 얽여
있다. 어떤 부분은 목재로 마감 작업을 하고 있어 아름다운 부분도 있고, 어
떤 부분은 내부의 다듬어지지 아니한 여러 자재들이 그대로 얽혀져서 드러
나 있다.
한마디로 교회는 우리가 기대하고 꿈꾸는 어떤 아름다운 이상적인 공동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현실의 교회는 여기저기 울퉁불퉁하고 구멍이 뚫려 있어
계속해서 지어가야 할 미완성 공동체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교회에 대해
서 지나치게 이상적인 기대를 하고 있을 때 교회로부터의 심각한 시험과 갈
등을
겪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기대를 현실화하자. 시선을 낮추자. 그리고 눈에 보이는 허술한 부분
들 부족한 부분들 거친 부분들을 우리의 사랑과 정성으로 보완하고 다듬어
나가야할 공동체로 바라보자. 그리고 시선을 바꾸자. 더 깊이 초점을 맞추
자. 교회의 현실적 모습에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어느 날 찬란히 드러날
교회의 영광을 미리 깊이 들여다보는 영적 심미안을 갖자.
유명한 조각가 로뎅에게 한 젊은이가 찾아와서 이렇게 물었다. “이 돌덩어
리에서 어떻게 그렇게 아름다운 작품이 나옵니까?” 이 질문에 대해 로뎅은
“당신의 눈에는 이것이 돌덩어리로 보입니까? 내 눈에는 이것은 아주 아름
다운 아프로디테(그리스의 미의 여신)로 보입니다. 나는 다만 불필요한 부분
을 제거할 뿐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교회를 바라보는 우리의 눈길도 로뎅같아야 한다. 현실의 교회를 앞으로 다
듬어 나가야 할 아름다운 그리스도의 신부로 보는 것이다. 현실의 교회는 비
록 투박한 돌덩어리에 불과하다 할지라도 긴 성령님의 작업 과정을 통해서
드디어 그 아름다움을 찬란하게 드러낼 숨겨진 주님의 신부로 바라보아야 한
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음행과 분열과 은사의 혼용으로 말미암아 엉망진창이 되
어버린 현실의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서 아주 길고 긴 종말론적 깊이를 가진
시선을 가지고 바라보았다.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케 하시리라”(고전 1:8).
2000년 동안 교회는 수없이 많은 상처난 얼굴, 일그러진 형상을 보여왔다.
오늘의 한국교회도 바로 이 시대의 일그러짐이 깊이 각인되어 있다. 이 일그
러짐 속에서 어떻게 우리는 바울처럼, 로뎅처럼 교회의 아름다움을 계속 바
라볼 수 있을까?
종말론적 아름다움 보아야
오직 우리의 시선을 종말론적인 것으로 바꾸고 서로의 마음을 교회에 깊이
주는 것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