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지펴야 할 종교개혁의 봉화_손성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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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지펴야 할 종교개혁의 봉화

손성은 목사_삼일교회

개혁되었으므로 계속 개혁되어야 한다는 것이 종교개혁의 후손들인 개신교회
의 구호이다. 그 종교개혁을 기념하는 주일이 바로 10월 넷째 주일이다. 

491년째 맞는 종교개혁일

종교개혁기념일이란 1517년 10월 31일 독일의 마틴 루터가 구텐베르그대학
의 교회 정문에 95개조항의 항의 질의서를 못박았던 날을 기념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날이 중요한 것도 아니고 마틴 루터가 중요한 것도 아니다. 그 종
교개혁의 메시지가 중요하다. 그것은 한 마디로 ‘의신칭의’(justified by 
faith only)로 집약된다. 
당시 중세교회에서도 하나님의 은혜에 의지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다. 믿음으
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을 몰랐던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믿음으로 구원
을 얻는다고 하면서도 행위 또한 강조하고 있었다. 결국 믿음과 행위를 둘 
다 구원의 조건이라고 강조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행위가 부족한 것을 성자들의 행위(성자 자신들
을 
구원하고도 남은 행위)의 공덕을 빌리기 위해서 하나님에게만 올려야 할 기
도를 성자들에게도 기도하게 되었다. 그리고 연옥의 교리를 만들어 내었으
며, 기어이는 자신들이나 이미 죽은 사람들의 부족한 행위는 돈을 지불함으
로써 보충할 수 있다는 면죄부 사상까지 만들어 냈던 것이다. 
처음의 조그만 차이인 것 같았던 것이 엄청난 부조리를 낳게 되었던 셈이
다. 이런 것들에 대해서 루터는 과연 성경적이냐고 항의하면서 95개의 조항
으로 질문서를 그 당시의 로마교회 앞에서 띄웠던 것이다.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이다. 이 말은 행위
를 무시한다고 하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 결코 그렇지 않다. 구원의 조건으
로서의 행위는 철저하게 배격하면서도, 구원받은 자의 삶에 반드시 동반되
는 것이 그 열매로서의 선행이라고 가르쳐 온 것이 종교개혁사상이다. 그렇
게 선행을 할 수 있는 것조차도 하나님의 은혜요 믿음의 결과라고 하였던 것
이다. 이것을 잘못 강조하여 신율법주의가 나오고, 이것에 대한 반동으로 신
비주의가 발생하곤 하는 것이 그 후의 교회 역사이기도 하다. 
종교개혁의 그 메시지를 
오늘 이 시대에 어떻게 구현하느냐 하는 것이 우리
들의 숙제이다. 율법주의와 신비주의를 배격하면서 어떻게 참된 신앙의 균형
을 유지하느냐가 오늘의 과제이다. 요즘 새로운 형태의 율법주의가 기승을 
부리고 그것과 함께 신비주의 또한 득세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종교개혁의 봉화가 올려져야 할 때이다. 우습고 답답한 것은 요즘에는 
이렇게 신율법주의자들이 교회를 개혁하겠노라고 봉화를 들어올리고, 신비주
의자들이 교회를 비판하면서 교회 개혁의 선봉을 자처하고 있다. 통곡할 일
이다. 
오직 믿음(sola fide)은 오직 성경(sola scriptura), 오직 은혜(sola 
gratia), 오직 하나님의 영광(sola gloria Dei)과 함께 병행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의 공로가 완전함을 확신하지 못하는 것,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지 못하는 것, 인간의 자기의를 추구하고 자랑하려고 
하는 것, 그 모든 것들이 종교개혁의 정신과는 거리가 멀다. 여기에 오늘의 
종교개혁이 요구되는 셈이다. 
회심의 참된 복음을 깨닫는 것이 요구되고, 십자가의 피의 복음에 근거해서 
서로를 형제라 자매라 부를 수 있는 사랑이 요구되고, 맘몬의 
신이 지배하
고 있는 이 세상 가운데에서 (심지어는 교회에서조차도)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 헌금의 정신이 요구되는 지금이다. 어디 이것뿐이겠는가? 개혁의 횃
불, 그 봉화의 불이 밝혀져야 할 어둠의 영역이 어디 이것들뿐이겠는가? 
바로 우리 주변에 이 횃불을 올려 비쳐 보라.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복음이 
필요하지 않는가? 참된 회심을 요구하는 양심의 호소가 들리지 않는가? 루터
의 망치소리가 지금도 귓가에 쟁쟁하게 들려야 한다. 우리의 영혼을 밝히
고, 우리의 주변을 밝히는 참된 복음의 횃불의 봉화가 우리에게 전달되었
다. 

영혼 밝힐 개혁 횃불 지펴야

이제 우리가 그것을 다음 세대에 전달해 주어야 하다. 벌써 그 종교개혁도 
491년째 지나가고 있다. 우리가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우리는 종교개혁의 
후손들임을 명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