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영유아 무상보육과 이에 대한 신자들의 자세_장재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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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유아 무상보육과 이에 대한 신자들의 자세

 

< 장재훈 목사, 내흥교회 >

 

자녀 보육과 양육 포기하고 돈으로 자녀들 보육하려는 것이 문제

 

얼마 전 교육부 장관이 초중학생들의 급식비를 줄여 그것으로 영유아 무상보육을 하자는 주장을 공개적으로 내놓아서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논란은 차치하더라도 국가나 개인이 아동보육기관에 어린 자녀들을 맡기는 행위가 장, 단기적으로나 성경적으로나 가정적인 차원으로 볼 때 합당하느냐를 점검해 보고자 합니다.

 

결론을 먼저 말씀 드리면 매우 합당하지 않고 그 후유증과 부작용이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앞으로 더욱 치명적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특히 영유아 보육과 관련하여 성경적인 시각과 아동들의 심리적 성장 발달과 가정의 건강적인 차원에서 볼 때 ‘영유아 무상보육’은 영유아들과 가정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이 된다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5세 이하, 특히 3세 이하의 영유아들은 엄마와 떨어지는 순간. 혹은 어린이 집에 낯선 젊은 보육교사들에 맡겨지는 순간 심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엄청난 ‘외상 후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의 마음이 큰 고통을 겪고 불안심리, 곧 유리처럼 깨진 심리가 질병처럼 발생하여 일생 내내 괴롭힐 것입니다. 그리고 정상적인 정신과 마음을 갖지 못한 상태에서 성장하고 생활하게 됨으로써 자신과 타인에게 악영향을 주는 삶이 될 것입니다.

 

영유아기 때의 심리상태는 평생을 좌우합니다. 엄마와 몇 시간이든, 반종일이든, 하루 종일이든 떨어져 본 영유아들은 건전한 마음과 정신과 사고를 하지 못합니다. 초중학생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는 통계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2014년 10월 21일 한겨레의 보도에 의하면 “야근에 내몰린 맞벌이 아이들은 정서불안과 학교폭력 빈도가 높았다”고 했습니다. 또 이소영 순천향대 부속 부천병원 정신건강학과 교수팀이 경기지역 201개 초등학교 1학년과 4학년 학생 29만 8916명 중에서 과잉행동장애를 보이거나 정서/행동발달 검사에서 고위험군으로 분류된 학생 3,270명을 조사했더니 혼자 있는 ‘무감독 시간’이 길수록 공격적 행동이나 비행, 우울과 불안증세 위험이 높았다고 했습니다.

 

초중학생도 부모와 떨어져 생활하면 이러한데 아직 연약하기 짝이 없고 엄마의 24시간 손길과 말과 접촉이 필요한 영유아들이 낯선 사람들에게 맡겨져 보육이 될 때 받는 충격과 스트레스는 표현하지 못해서 그렇지 심각할 것입니다.

 

현재 어린이 집에 근무하고 있는 어느 베테랑 교사도 “3살 이하 영유아를 어린이 집에 맡기는 것은 정말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아무리 맞벌이나 돈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절대적인 빈곤이나 상황이 아님에도 어린이 집이나 유치원이나 다른 사람에게 영유아를 맡기는 행위는 자녀에게 큰 부담을 짊어지게 하며 자녀를 병들게 하는 행위입니다. 부모들이 잘 몰라서 그럴 수도 있고 알면서도 그럴 수 있습니다.

 

이러한 영유아 위탁보육 행위는 성경적인 시각으로 볼 때도 옳지 않습니다. 성경은 부모에게 자녀를 임신케 하고 보육하도록 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보육과 양육을 맡기지 않았습니다. 이런 일은 짐승들도 99.9%가 하지 않는 해괴한 짓입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친자를 타인에게 쉽게 맡깁니다. 그런 다음에 직장에 나가고 다른 일을 합니다. 자녀들은 그동안 엄청난 스트레스와 고통을 당하고 마음이 찢어지는데 영유아라 표현을 잘 못하니 마음대로 합니다.

 

이소희 국립중앙의료원 정신건강학과 전문의는 “매일 일정시간을 같이 보낸다는 것은 부모와 자녀 사이의 애착형성에 매우 중요하다. 안정적 애착은 올바른 인성발달과 정신건강을 위한 필수조건이기 때문에 일하는 부모가 자녀와 함께 하는 시간을 양적/질적으로 확보할 수 있도록 사회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성경에 비추어 볼 때 엄마의 첫 번째 존재 이유는 자녀 임신과 보육과 양육입니다. 직장생활이 아닙니다. 엄마에게 있어서 이 세상에서 이것보다 더 우선하고 가치 있고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돈과 맞벌이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세상과 나라가 되니 그리스도인 엄마들도 따라서 행하고 있습니다. 이런 대세나 흐름이 성경적인지와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어떤 악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상고와 고민이 없습니다. 모든 면에서 이런 모습이 오늘날 목사들과 그리스도인들의 약점입니다.

 

이렇게 영유아를 타인이나 유아기관에 위탁하고 가정을 비우므로 인하여 가정의 기능이 약화되고 훼손되므로 가정결속력 약화와 해체를 앞당기고 있습니다. 가정이 가정답지 못하고 하숙집이나 오피스텔이나 모텔처럼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을 축구로 비유하자면 마치 골키퍼(엄마)가 골문을 비우고 나가서 공격수(맞벌이/돈벌이/다른 일)로 활동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 팀은 심각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고생만 하고 희망이 없는 팀이 됩니다. 그래서 어느 팀이든지 정상적인 팀은 절대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골키퍼는 골문을 지킵니다.

 

그리스도인 엄마들이 성경이 말하는 엄마의 위치와 책무와 역할에 대해서 무지하니 불신자 엄마들처럼 일과 맞벌이와 돈 버는데 만 혈안이 되어 그보다 더 중한 자녀 보육과 양육을 내팽개치고 돈으로 어린 자녀들을 보육하려고 합니다. 이는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속삭임에 미혹된 것입니다. 엄마의 직무유기입니다. 성경사상에 반하는 비그리스도인들과 정부의 가치관과 세계관과 정책에 속은 것입니다.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자녀를 사랑한다면 성경사상에 맞게 살아야 합니다. 세상의 흐름과 성경사상에 반하는 정부의 정책에 저항해야 합니다. 구체적인 실천 방안으로는 최소한 양보해서 취학 전 자녀를 둔 엄마들은 지금 당장 맞벌이를 중지해야 합니다. 다른 일을 중단하고 집에서 어린 자녀를 보육하는 데 올인해야 합니다. 다른 부모들에게도 맡기지 말아야 합니다. 유아기관에도 위탁하지 말아야 합니다. 힘들어도 친히 보육해야 합니다.

 

남편이 없거나 남편이 병들어 가정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가정이 아닌 이상 영유아를 가진 엄마들은 자녀 보육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른 신자의 자세이며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고 자녀를 사랑하는 자세입니다.

 

어린 자녀들을 돈으로 보육하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엄마는 무능한 자입니다. 국가에서 영유아들에게 무상으로 보육을 시켜준다고 해도 성경사상에 맞지 않으므로 거부해야 합니다. 국가는 영유아 보육비를 지원할 것 같으면 가정에서 보육하는 엄마들에게도 지급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 엄마들은 가정에서 보육함에도 정부로부터 보육비를 받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이에 흔들리지 말고 친히 가정에서 어린 자녀들을 보육해야 합니다. 그게 성경적입니다. 지원금 몇 십만 원 때문에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책무와 자세를 팔아서는 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심각하게 고민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의 대세와 자신의 편리와 성경에 반하는 정부 정책을 따를 것인지 아니면 고생하며 손해 보며 성경사상을 따를 것인지를 결단해야 합니다. 바라기는 하나님과 성경의 편에 서는 자들이 많이 나오기를 바랍니다.

 

신앙생활이든지 일반생활이든지 시대를 초월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은 좁은 길을 가는 것이고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고생길입니다. 어느 시대나 좁은 길과 십자가의 길로 가는 자들은 많지 않습니다. 주로 시대와 대세를 따르고 편한 길로 갑니다. 허나 그 길은 당장은 편하고 좋을지 몰라도 종국에 가서는 행복의 길도 생명의 길도 아닙니다. 인생의 끝에 불행하고 후회합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사는 고난의 길은 당장은 쑥처럼 써도 나중은 영생이고 행복이고 생명입니다.

 

그리스도인 엄마들이여! 힘들고 고생스러워도 성경 사상에 맞게 친히 자녀들을 보육하시기 바랍니다. 최소한 영유아기 때만이라도 다른 보육기관에 맡기지 말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인 엄마들은 비그리스도인 엄마들과는 다른 선택과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