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wall)과 다리(bridge)
장귀복 목사/새일산교회
올해가 불경기라고 하지만, 그래도 길거리와 교회들의 성탄 장식은 빛을 발
하면서 잔잔하게 성탄절이 다가옴을 알리는 듯합니다. 얼마 전 어느 기독교
신문에서 ‘성탄절 회복 운동’을 전개하는 어느 목사의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
다. 성탄절 트리 장식과 카드 보내기 등 전통적인 성탄 분위기들이 절약 혹
은 카드 보내지 않기 운동 등에 의해 소강상태에 들어가 있는데, 그러다보니
성탄절을 일반인에게 빼앗기는 분위기이고 왠지 기독교인이 소외되는 느낌이
니 예전처럼 교회와 성도들이 성탄절 분위기를 띄우자는 내용의 글이었습니
다. 그리고 기독교 시민 단체와 일부 교단에서는 ‘성탄절 하면 떠오르는 산타
클로스 캐릭터 대신 성경적인 동방박사 캐릭터를 사용하자’는 운동을 전개하
고 있다고 합니니다.
그러나 여기서 생각해 봐야 할 일이 있다고 봅니다. 교회가 성탄 장식을 잘
해 놓았다고 그것 때문에 예수를 믿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멋있는 성탄 트
리가 거리와 교회들에 세워지고, 캐럴이 엄청나게 방송을 타고, 산타 대신 동
방박사 캐릭터가 교회마다 거리마다 넘쳐난다고 해서 그것이 복음 증거에 얼
마나 효과가 있을까요? 더욱이 많은 기독교인들이 모이는 부활절 연합예배
때 엄청난 수자의 기독교인들이 모였다고 해서, 그 소식을 듣고 예수를 믿기
로 작정할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교회 차량에 교회 이름을 써서 거리를 누빈
다고 그것을 보고 안 믿는 사람이 예수를 믿는 경우는 또 얼마나 될까요? 물
론 그런 것들의 긍정적인 면들을 부정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교회에서
행해지는 많은 일들이 교회 밖의 사람들에게는 거의 별로 영향을 주지 못한다
는 것을 말하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아기 예수로 오신 이유는 담을 헐기 위해서입니다. “그
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엡
2:14,16). 주님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담을 헐고, 우리와 우리 사이의 담
을 헐기 위해 오셨습니다. 따라서 주님을 따르는 우리 신앙인들은 무엇보다
담을 허무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탄절은 ‘담 허는 날’이 되었
으면 합니다. 서로 간에 높은 담이 쌓여 있는데, 그 담을 헐기 위한 일과 상
관없는 많은 일들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작금의 한국 사회를 볼 때, 같은 민족임에도 너무 대립과 갈등의 담이 높
이 세워져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회만이 아닙니다. 교계와 교회 내에도,
심지어 교인들 간에도 많은 담들이 쌓여져 있습니다. 그 한가운데서 우리는
담을 허무는 운동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안타까운 것은 기독교가 담을 헐기
보다 담을 세우는 일에 일조를 하는 듯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본질적
인 진리의 문제에 대해서는 높이 담을 쌓아야 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세상의
일이나 비본질적인 일들에 대해서는 담을 허무는 삶을 지향해야 합니다. 그래
서 성탄절이 되면 교회마다 담을 허무는 운동을 했으면 합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담을 허무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리를 놓는 삶
을 살았으면 합니다. 담을 허는 것이 수동적이라면 다리를 놓는 것은 적극적
인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막힌 담을 허시되, 그 일을 적극적으로
다
리를 놓는 삶을 통해 이루어가셨습니다. 그 당시 세리, 열심당, 죄인, 창기
와 같은 사람들은 담으로 둘러싸여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
의 담을 허시고 그들에게 다리를 놓으셨습니다. 그 다리는 곧 주님을 믿고 영
접하는 길로 이어졌습니다.
담을 허무는 삶은 다리를 놓는 삶으로 이어지고 실행되어야 합니다. 담만
헐고 다리는 놓지 않는다면 무의미합니다. 특히 성탄절을 맞아 교회와 성도
가 힘쓸 일은 담을 헐고 다리를 놓는 삶인 줄 압니다. 그러나 기독교 내에도
얼마나 많은 담이 존재하는지요. 교단끼리, 교회끼리, 교인끼리 비본질적인
문제임에도 높은 담을 쌓아놓고 있는 경우가 너무도 많은 것 같습니다.
먼저 우리 안의 담을 허뭅시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담을 허물고 다리를 놓
는 삶을 삽시다. 이것이 성탄절을 지키는 본질적인 자세라고 봅니다. 분명 신
앙인과 교회들이 담을 헐고 다리를 놓는 삶을 산다면, 세상은 교회에 감동하
고 교회에 발을 들여놓을 것입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 5:9). 금번 성탄절, 그 어느
해
보다도 주변을 살피며 ‘담을 허물고 다리를 놓는 운동’이 일어났으면 합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