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패미니즘을 경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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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미니즘을 경계한다

 

현대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페미니즘은 오랜 역사 속에서 형성된 남성 중심의 억압적인 구조, 곧 인류의 타락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남성의 성차별에 반대하며 여성의 평등을 주장하려는 이들의 저항 심리에는 여전히 갈등과 대립이라는 전제가 숨어있다.

 

알다시피 페미니즘은 힘의 논리로 좌우되어 왔던 타락한 생태계가 그 출발점이다. 그러다보니 페미니즘은 언제나 억압과 차별에 대한 저항이 그 기조를 이룰 수밖에 없다.

 

하지만 바울 사도가 에베소서를 통해 그리스도와 교회의 하나 됨에서 보여주듯이 본래 남녀의 관계는 대립과 갈등의 관계가 아니었다. 오히려 남녀 관계는 에덴동산에서 하와를 향한 아담의 절절한 사랑고백에 기초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된 남녀 관계의 원형 또한 남녀가 서로 상보적인 사랑의 관계임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런 차원에서 남녀 관계는 사랑 안에서 질서를 이루는 한 몸이다. 따라서 남녀의 관계에서 사랑이 결여된다면 남성의 억압적인 성차별만큼이나 여성의 평등을 위한 투쟁도 폭력적일 수밖에 없다. 이것은 인류의 타락이 가져다 준 왜곡된 작용에 대한 또 다른 극단적인 반작용이다.

 

이런 이유에서 사랑에 기초한 동반자 의식이 결여된 평등을 위한 노력은 여전히 갈등과 대립의 양상을 띨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사회뿐만 아니라 교회 안에서 여전히 자행되고 있는 성차별과 이에 따른 억압적 구조를 보고 있자면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최초 창조의 원리에 따르면 남과 여는 하나님 나라를 공동으로 상속받을 동반자로 부름을 받았다. 그리고 종말에 있을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된 남녀 또한 마찬가지이다. 사랑에 기초한 남자와 여자의 진정한 하나 됨이야말로 하나님 나라를 위한 하나님의 형상됨의 기초이다. 이것이 남녀의 질서와 조화, 평등의 문제 역시 저항과 투쟁이 아니라 사랑에 기초해야 하는 이유이다.

 

이제 교회 안에서는, 그리고 기독 신자들의 가정에서는 더 이상 억압적인 성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혹시라도 이에 맞선 폭력적인 저항과 투쟁 또한 버려야 한다. 남과 여는 하나님 나라를 향한 부르심에 진정한 하나 됨을 위하여 지음을 받았기 때문이다.

 

남녀는 하나님 나라를 공동으로 상속받을 동반자로 부름을 받았다. 곧 남과 여는 함께 걸어가야 할 공동의 상속자임을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이다.